정치권을 중심으로 ‘충청도 핫바지론’이 부활하고 있다. 정부의 세종시 수정 움직임에 대해 충청 출신 정치인은 “돈과 자존심을 바꾸란 말이냐”고 반발하고 있는 것. 세종시 문제와 관련한 충청민심은 ‘자존심’인데, 정부가 ‘기업도시’니 ‘경제도시’니 하면서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충청도 핫바지론’은 지난 1980년대 ‘영호남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국정치에서 충청지역이 무시당하고 있다’며 지역민들의 자존심을 자극해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려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주창했던 논리다.

자유선진당 권선택 의원은 19일 “대전이나 충남북 외곽지역 등은 세종시 문제에 대해 연기지역 주민보다 절박하지 않다”고 전제한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청권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자존심이 걸린 것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핫바지론’은 ‘개평론’으로 한발 더 나갔다.

논산이 고향인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19일 불교방송 ‘김재원의 아침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개평을 얻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며 “(정부가) 연기군에 뭘 퍼부어서 충남 사람들에게 더 주면 되는 일, ‘이걸 갖다가 더 큰 거 줄 텐데 왜들 이러느냐’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기업이나 대학을 유치해 경제적 이득을 주면 된다는 식의 발상이 오히려 충청지역 주민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앞서 충청주민의 자존심 문제를 제기한 것은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다. 박 전 대표는 사석에서 “충청 민심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법대로만 하라’는 것”이라며 “충청에서 요구한 것도 아니고 정치인들이 이랬다저랬다 마음대로 하는 것을 보면서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경제적 접근법’에 대해 지역 내 민심도 우호적이지 않다. 충청지역의 한 언론계 인사는 “정부가 문제의 핵심을 잘못 짚었다”며 “자존심 문제를 경제로 달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접근법”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충청주민들은 김대중정권도 노무현정권도 모두 충청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고 받아들인다”며 “지금 세종시 수정안을 제기하고 있는 이명박정부도 똑같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명박정부가 ‘경제적 셈법’으로만 접근했다가 낭패를 본 것은 한두번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의 ‘쇠고기 파동’. 이명박 대통령은 “더 질 좋고 값싼 쇠고기를 국민에게 먹일 수 있다”고 했지만, 국민은 ‘쇠고기 주권’이라는 자존심 문제로 받아들이면서 ‘촛불시위’로 번졌다.

정부가 기업 등을 유치해 충청지역민심을 되돌리려는 ‘물량공세’가 얼마나 통할지 관심이다.

내일신문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저작권자 © 넥스트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