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 아침 집을 나서며 아무리 둘러보아도 태극기를 단 집이 눈에 띄지 않는다. 꽉 막힌 고속도로를 두세 시간 달려 간 곳, 6‧4지방선거 후보자 사무실에서야 삼일절 관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삼일절, 삼일정신은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잊혀 진 역사의 한 부분으로만 남아 있다.  
   
잘못된 세계사의 바퀴를 되돌리다
아흔 다섯 해 전, 삼천리 방방곡곡을 뜨겁게 달구었던, 삼일만세 운동이다.

전국에서 200만명이 넘는 조선동포들이 시위에 나섰고, 조선총독부의 공식기록만으로도 7,509명의 참가자가 일제의 잔혹한 진압과정에서 사망하였다.

1919년은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과 아류국가들, 즉 10여개 나라가 세계의 모든 약소국가와 민족들을 스스로 보편적인 선과 인간적인 규범조차 세울 수 없는 무능한 인종으로 보고, 자기들끼리 식민지 나누어 먹기를 하던 시대였다. 이러한 제국주의가 득세하던 시절, 세계사의 바퀴를 바르게 돌리고자 하던 조선동포들의 함성은 전 세계의 약소국가와 식민통치를 받던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새로운 세계질서의 씨앗을 심은 일이었다.

인도의 타고르는 조선의 3∙1운동 소식을 접하고, 당시 아프리카에 있던 아끼던 제자 간디를 불러 소식을 전하고, 인도의 비폭력 무저항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삼일운동은 중국의 국부 손문을 필두로 하여, 중국인들의 잠을 깨우고, 5∙4운동으로 이어졌다. 베트남 언론들이 한민족의 3∙1운동을 격찬하며, 1919년 베트남 독립운동이 더욱 고양되었고, 필리핀 마닐라 대학생들의 독립시위운동으로 이어졌다.

1919년 3월 1일 동아시아의 한반도에서 첫 봉화를 올린 3·1독립운동은 한국민족 자신을 재생시켰을 뿐 아니라, 그 영향이 중국으로, 인도로, 동남아시아로, 필리핀으로, 이집트로 파급되어 약소민족들의 독립운동을 불타오르게 한 것이었다.

3∙1운동의 정신을 이어가는 G밸리 만들기
3∙1운동은 500년 조선왕정을 되살리는 독립운동이 아니었다. 인류의 보편적인 정의와 세계사적인 흐름을 담아,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는 독립운동이었다. 이에 따라 3∙1 운동 한달여 만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졌다.

중소기업이 거대한 시장을 목표로, 집적된 자본과 산업화 시대의 유물인 규모의 경제 등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획일적인 통제와 효율을 내세우는 경영기법은 더더욱 안 된다. 중소기업의 생명과 힘은 창의적이고, 유연한 시장대응과 제품, 무엇보다 중소기업인과 근로자가 함께하는 민주적이고 투명한 경영이 우선되어야 한다. 중소기업의 가장 큰 힘은 사람이다.

3∙1운동은 국내외적으로 가장 암울한 시대, 단 하나의 원군도, 지지자도 없는 상황에서도 한민족의 비전을 제시한 운동이다.

경기침체와 무한 국제경쟁으로 넘쳐나는 제3세계 제품과 기술은 물론이고,  부족한 자금과 일손으로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소기업의 가치는 시장에 있다. 고객이 만족할 성능과 가격이 중소기업의 근본적인 추구점이다. 몇 푼의 정책자금을 빌러, 대기업에 제살깍기식의 하청이 아닌, 시장과 고객이 받아 줄 만한 제품을 만드는 것에 전념해야 한다. 할 수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해야만 하기 때문에 해야 한다.

5년 뒤면 3∙1운동 100주년이다. 가장 암울한 시대, 시대를 앞선 선조들의 위대한 도전이 대한민국의 초석이 되었다. 1세기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었고, 이제 지식산업시대의 리더로 우뚝 서는 대한민국의 중심에  G밸리가 있다. 우리 중소기업인들의 시대를 앞선 도전을 위해서라도, 내년부터는 G밸리 100여 지식산업센터에 태극기가 휘날리는 3∙1절을 만들어 보자.

유 지 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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