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공단이 수출산업단지로 지정된 지 50년이 된다. 국가 수출산업의 10%를 차지하며, 섬유·가발·봉제 공장들이 빼곡했던 과거의 모습은 사라지고, 구로공단이라는 이름은 디지털 단지의 젊은이들에게도 생경한 이름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은 구로공단 50년, 산단공 50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구로공단, 과연 우리는 무엇을 기념해야 할까?

 구로공단의 주인공들을 찾아서 
1964년, 황무지나 다름없던 구로동과 가리봉동 일대에 크고 작은 공장들이 하나둘씩 들어서기 시작했다. 먼지로 가득한 공장 안에선 시골에서 갓 상경한 언니, 오빠들이 밤낮없이 기계를 돌렸다.

그들 노동자들이 처한 환경은 열악했다. 1977년 구로공단에서 일하는 여공들의 50% 이상은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했고, 대부분이 가난한 농촌 집에서 상경한 15~17세의 소녀들이었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봉제공장 특유의 먼지와 소음으로 뒤 덮인 공장에서 일하고, 한 평 넘 짓 한 방에서 서너명이 함께 지내는 생활이었다.  우리는 앞에서 산업역군이라 부르면서, 뒤에서는 공순이, 공돌이라 부르며, 그들의 일탈을 가십거리 주간지 기사로 만들던 사회였다.

구로공단의 역사의 주인공은 바로 공순이, 공돌이로 불리던, 근로자들일 것이다.

또 다른 주인공들이 있다. 변변한 기술도 자본도 없이, 몇 십원의 임가공 마진을 보며, 일구어온 기업들, 유류파동이다 IMF다 고비 고비마다, 목숨을 걸고 기업을 일구어온 수많은 중소기업인들이 그들이다.

구로동에 공단을 세운다기에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하고 땅을 내주어야 했던, 지역주민들. 애국심 하나로 조국에 투자하겠다 하던 재일동포 기업인들, 억압 받는 노동자의 삶속으로 뛰어들었던 수많은 민주투사들과 그들을 가르치던 야학교사까지, 아니, 구로동에 사는 것 자체가 불편하고, 창피했던 그 시절의 우리들까지, 구로공단은 대한민국 역사의 중심부였다.   

구로공단의 역사를 잊어버리자? 
우리가 단순히 남루하고 누추한 그 시절의 모습을 들여다 보며, “그땐 그랬지” 라는 추억거리나 글을 펼치는 것은 진정한 기념사업이 아니다. 대한민국 산업화의 주인공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군 그들에게 합당한 대우가 아니다.

우리는 신난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이들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세웠다. 우리의 전쟁터에서, 이국의 전쟁터에서, 구라파의 컴컴한 지하 동굴에서, 숨이 턱턱 막히는 막장에서, 말도 안 통하는 덩치 큰 서구인들의 수발을 들면서, 많은 이들의 피땀으로 일구어온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의 역사의 한 장에서 구로공단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장대한 산업화, 민주화 역사의 장이다. 구로공단의 근로자와 기업인, 구로동 사람들의 역사를 묻어 두고 대통령 기념관이다, 유명인을 추모한다 하는 것은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하는 일이다.
        
50주년 기념사업, 구로공단 역사 조명의 시작
구로공단 50주년 기념사업은 G밸리의 근로자와 기업인, 지역주민이 앞장서는 기념행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로공단의 역사, 그 속에 담긴 정신과 문화, 그리고 미래로 이어질 구로공단의 산업화, 민주화 역사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시작이 되어야 한다.

단순한 1회성 기념행사가 아니라, 수많은 민주화 기념관, 통치 기념관에 앞서 제대로 된 한국 현대사, 산업화의 역사를 기리는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장이 되기 바란다.

유 지 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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