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諸葛亮)과 사마의(司馬懿)

이번에는 세 가지 해결안 중에서 첫째인 스스로 해결되도록 하는 것에 대하여 전쟁사를 살펴보자. 즉 적이 스스로 알아서 물러가게 하는 것이다. 제갈공명과 사마의는 마지막까지 명승부를 펼친다.

제갈공명의 공성전을 돌이켜보자. 학창의와 거문고를 이용한 전사는 너무나 유명하다. 위나라 사마의가 가정(街亭)의 전투에서 제갈량의 당부를 무시하고 자만했던 마속의 군사들을 쳐부수고 15만의 대군과 함께 밤을 새워 서성(西城)으로 달려온다. 사마의가 필생의 라이벌인 제갈량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한편, 변변한 장수 하나 남아있지 않고 2500여명의 병사들만 있는 서성에서는 문신과 백성들이 공포에 떨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면전을 펼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제갈공명의 지략이 발휘된다. 그런데 사마의는 성문이 보이는 곳에 이르러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촉나라의 깃발은 온데 간데 없고 마치 자신을 환영이라도 하듯 활짝 열어젖힌 성문, 바닥을 쓸고 물을 뿌리며 태연한 백성들의 한가로운 모습이 보였다. 성 위의 망루에는 학창의(鶴氅衣)를 입은 제갈량이 지그시 미소를 띠며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제갈공명은 어떻게 하면 사마의가 스스로 물러가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마의의 머릿 속에 들어가 역지사지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사마의에게 커다란 함정이 있다는 것을 믿도록 하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이러한 현장 상황에 대해서 사마의는 물론 병사들도 일순간 넋을 잃고 말았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함정이나 계략이 있을 거라고 확신한 사마의는 전군에 철수명령을 내리고 회군을 하게 된다. 이 전투에 대해 후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석자 거문고로 대군을 이겼다.” 제갈량은 거문고 연주로 15만의 대군을 물리친 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사마의는 내가 평생에 위험한 짓을 통해 희롱한 바가 없는 사람임을 알고 복병이 있을까 의심하여 퇴각한 것이다. 내가 너무 궁핍하여 부득이 이 계책을 썼다.”

죽은 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쫓았다. 제갈량이 마지막 쓴 전략이 위계였다. 그 계략이란 자신이 살아있는 것처럼 꾸미는 것이다. 간밤에 천문을 읽던 사마의는 공명의 대장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그 죽음을 직감한다. 그리고 다음날 촉한군을 공격하러 총 출격을 한다. 하지만 퇴각하는 촉한군을 추격하던 사마의는 평상시 같은 모습을 한 공명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의심이 생긴 중달은, 공명이 천문을 조작하여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것으로 생각하고 촉한군 추격을 중지한다. 덕분에 촉한군은 공명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퇴각하여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세상에 가장 이상적인 시스템은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스스로 문제가 해결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김영기 박사
국제기업기술가치평가사 / 국제TRIZ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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