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제비츠의 전략

클라우제비츠(Carl Phillip Gottlieb von Clausewitz, 1780년 7월 1일 ~ 1831년 11월 16일)는 손자와 더불어 시대를 초월한 전략가로 꼽힌다. 전쟁론(ON WAR)의 저자이며, 나폴레옹 시대의 탁월한 전략가 중 한명이자 서양 최초의 군사 사상가이자 철학자라 불리는 인물이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선 상에 있다.’,‘전쟁은 우연하고 불확실한 안개 속에 있는 것과 같다.’라는 말은 전쟁의 본질을 꿰뚫는 말이다.

그는 프랑스 혁명 시기에 나폴레옹 전쟁에 종군하고, 1806년 예나 전투에서 나폴레옹군을 저지하다가 사로잡혀, 파리에서 포로생활을 하기도 했다. 1812년 보로디노 전투 이후 나폴레옹이 몰락하는 한 주축을 담당하였다. 이후 그는 프로이센 왕이 귀국을 허락해 사관학교 교장, 육군대학 교장과 포병감 등을 지내고, 프로이센 왕국의 장군이자 군사 이론가로서 프로이센 군대의 근대화와 제도 확립에 공헌하였다. [전쟁론] 등의 저서를 통해 적의 모든 영토·재산·주민을 공격 대상으로 하는 전면전 개념을 주창했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1전쟁의 본질, 2전쟁의 이론, 3일반적인 전략, 4참전, 5군사력, 6방어, 7공격, 8전쟁 계획으로 구성되어 있다. 클라우제비츠의 대표적인 전략을 들면 다음과 같다. 1)전쟁계획의 일환으로 피아의 전투력과 상황을 비교하고 평가하라(일본 2차대전 패인). 2)속전속결의 원칙을 세워라(미국 배트남전 패인). 3)전력상 불리한 위치에 있다면 최대한 결전을 미루어 한계공격정점을 기다려라(나폴레옹군 러시아전 패인). 4)중심을 깨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전력을, 동시에 집중시켜서 단숨에 깨뜨려라. 5)전문가의 손에 맡겨라.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에 정치가가 간섭하는 것을 경계했다. 6)적의 허를 노려서 격파하라(허를 찌르는 공격). 7)마찰을 극복하라. 클라우제비츠는 절대전쟁을 현실전쟁으로 만드는 것이 마찰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마찰을 극복하기 위해 군사적 천재가 되기를 요구했다. 통찰력과 혜안을 갖춘 고도의 지적 능력, 용기와 결단력, 침착성, 강인함, 지구력, 자제력, 지형감각을 모두 갖출 것을 요구했다.

트리즈 측면에서 바라보자. 문제의 본질, 시스템적 사고, 자원의 활용 극대화, 이상적 해결안, 모순의 극복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또한 시간과 공간과 관계를 어떻게 활용하고 거시적인 시각과 동시에 미시적인 시각에서 전쟁을 어떻게 이해하고 수행할 것인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 다루었던 제갈량, 칭기즈칸, 이순신, 손자, 넬슨, 롬멜, 클라우제비츠 등 희대의 전략가들은 공통점이 있다. 전쟁의 본질을 이해하고, 철학과 시스템적 사고와 자원의 활용을 통하여 궁극적인 승리에 도달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과 개인에게도 시사하는 바카 크다. 여기서 병법 총론을 마치고, 다음부터는 각론으로 넘어가고자 한다.

김영기 박사
국제기업기술가치평가사 / 국제TRIZ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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