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은 기쁨과 슬픔이 어우러진 ‘한편의 드라마’…‘조화’가 가장 중요

최근 바둑팬들은 즐겁다. 중국의 거센 황사돌풍에 밀려 기를 펴지 못하던 한국바둑이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끝난 LG배와 백령배 세계바둑대회에서 한국은 각각 4명, 5명의 선수를 8강에 올리며 뚜렷한 회복 조짐을 보였다. 여기에는 유창혁 (48)바둑국가대표 감독의 역할이 컸다는 게 중론이다. 유 감독을 한국기원에서 만나 국가대표팀 수장으로서의 속내를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 반갑습니다.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요즘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한국기원에 나오고 있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국가대표 선수들과 함께 바둑 트레이닝을 합니다. 대국을 하며 실전감각을 키우기도 하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신수 등을 연구하기도 하죠. 대국 있는 날만 나왔던 이전과 달리 매일매일 나오는 타이트한 단체생활에 저나 선수들도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것 같습니다.”

● 중국 바둑의 성장세가 최근 무서운데요.
“중국바둑은 ‘타도 한국’을 목표로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습니다. 최근 들어 그 결실이 나타나고 있는 거지요. 사실 바둑환경만 놓고 보면 부러운 점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영재’나 ‘천재’로 불릴만한 어린이들이 중국에는 엄청나게 많습니다. 한국 중국의 바둑실력을 봤을 때 정상급에선 큰 차이가 없지만 밑으로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입니다.”

● 국가대표 감독을 맡으신 것은 본인의 뜻이었나요?
“더 이상 방치하다간 중국바둑에 영원히 밀리겠다는 위기감이 저를 나서게 만들었습니다. 주위 분들의 권유도 있었지만 저 자신부터 더 나이를 먹기 전에 한국바둑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을 담당하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어린 선수들이 잘 따라와줘 지금까지는 국가대표 훈련이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감독을 맡은 이후 한국팀의 성적이 좋아졌습니다.
“네. 지난 6월 있었던 LG배에선 박정환, 김지석, 최철한, 박영훈 등 4명의 선수가 8강에 진출한 데 이어 7월달에 열린 백령배에서도 5명(박정환, 김지석, 최철한, 안국현, 진시영)의 우리 선수가 8강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불과 얼마전 8강 자리에 한명의 한국선수도 진출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쾌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국가대표 단체 생활을 하며 선수들이 아무래도 정신적·기술적으로 안정감을 찾은 것 같습니다.”

● 국가대표 훈련은 어떤 방식으로 합니까?
“선수들끼리 실전 대국도 하지만 이보다는 공동연구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자기 혼자서 하는 공부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선수와 감독,코치진들이 모여 함께 연구를 하면 자기가 미처 보지 못한 수들을 보게 됩니다. 이 때문에 국가대표와 같은 단체생활을 하는 것이지요. 자기 관리가 어려운 어린 선수들은 단체생활을 통해 규율을 익힐 수 있다는 점도 이점입니다.”

● 바둑이 강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단순해져야 합니다. 바둑을 조금이라도 더 강하게 만들고 나아가 타이틀을 딸 수 있기 위해서는 다른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고 바둑에만 몰두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아무래도 어린 선수들이 30~40대 선수들보다 훨씬 유리합니다. 나이를 먹다 보면 바둑 외에 신경써야 할 것들이 늘어나게 마련이죠. 기억력도 떨어지게 되면서 실수도 예전보다 많이 나오게 되고요.”

●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들에게도 팁을 주신다면?
“1분이라도 생각하고 두라는 것입니다. 아마추어들의 대국을 보면 거의 생각을 하지 않고 손따라 두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는 발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비록 많은 수를 볼 수는 없다 하더라도 3~4수 앞까지는 수읽기를 해보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게 쌓이고 쌓이면 어느 순간 ‘하수’소리를 듣지 않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 현재 한국바둑계에 최고 유망주는 누구라고 보십니까?
“(웃으며)조금 곤란한 질문인데요, 유망주로 꼽힌 기사는 기분이 좋겠지만 반대로 꼽히지 않은 기사는 기분이 상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굳이 얘기하자면 최근 많은 바둑팬들에게 관심을 모으고 있는 신민준, 신진서 선수를 꼽을 수 있겠지요.”

● 그렇다면 현존 세계 바둑 최강자는 누구입니까?
“글쎄요, 지금은 최강자가 존재하지 않는 춘추전국시대가 아닌가 합니다. 최근 세계대회 우승자를 보면 한 선수가 독점한 것이 아니라 돌아가면서 나눠먹은 걸 알 수 있습니다. 절대강자가 없다는 말이죠.한국에서 꼽아보자면 박정환, 김지석, 이세돌 9단 이 세 사람을 타이틀 획득에 가장 근접한 강자라고 할 수 있겠죠. 이 셋을 위협하는 기사로는 최철한 9단을 들 수 있겠는데 그 외에는 뚜렷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 바둑을 뭐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요?
“음(한참 고민). 어려운 질문입니다. 일찍이 오청원 선생께서는 ‘바둑은 조화’라고 말씀하셨는데요 많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바둑은 ‘한편의 드라마’가 아닌가 싶습니다. 짧게는 한시간,길게는 서너시간 이어지는 바둑 한판 속에는 기쁨과 슬픔, 희망과 탄식, 웃음과 눈물, 보람과 후회 등 우리가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이 포함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후회 없는 인생을 보내기 위해선 조화가 필요하듯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조화가 아닌가 싶어요.”

김재창 기자 changs@gamta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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