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의 고전인 《관씨지리지몽》을 보면 “음택에서 명당이란 제왕이 오제(五帝)를 영접하는 곳이 아니라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라고 했다.  중국 하(夏)나라 때는 세실(世室), 상(商)나라 때는 중옥(重屋)이라 했다. 명(明)나라에 와서야 지금처럼 명당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명당은 제왕과 제후들이 의식을 행사하던 곳이었다. 이것이 후에 풍수사들에 의해 차용, 사용된 것이다.
명당은 혈과는 달리 혈 앞에 물이 모이는 곳을 가리킨다. 집의 마당에 해당된다. 풍수명사로 알려진 당나라 때의 양구빈은 “부귀빈천은 물에 달려 있으며, 물은 재물을 주관하고 산은 사람을 주관한다”고 했다. 물이 재물과 관련이 깊다는 것이다.
따라서 물이 땅으로 들어오는 것은 재물이 들어오는 것이며, 물이 땅에서 빠지는 것은 재물이 빠지는 것으로 본다. 사람은 재물이 많이 들어오기를 바라고 조금만 빠지길 바란다. 그래서 마당이 한 쪽으로 기울거나 경사지면 재물 손해가 있는 것으로 본다.
명당에도 크고 작음이 있다. 부지에 가까운 명당이 더 좋은 것으로 본다.
어느날 강원도 횡성에 있는 촌가를 방문했다. 이 집은 남편이 떠난 후 아주머니 홀로 살고 있는 집이었다. 남편 제사가 있는 날, 제사상을 차리기 위해 딸과 며느리들이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집을 둘러보고 혹시 다치거나 아픈 사람이 없는 지를 물어보고 재물이 점점 나가고 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처음에는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얘기를 했다.
집 구조를 보면 산자락에 집을 짓다 보니 뒷마당에 매우 살기 등등한 바윗돌이 대청마루와 큰 방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마당은 아래 사랑채 때문에 매우 좁았다. 사랑채가 없다면 경관이 매우 좋은 곳이었다. 남향집이기 때문에 북쪽에 몇 개의 험악한 바위가 집을 마주보고 있다. 북쪽은 풍수적으로 둘째 자식을 뜻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 집안 둘째가 머리는 총명했지만 외국 유학중 암때문에 세상을 등졌다.
원래 이 집안은 큰 부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논밭을 하나씩 팔아치워 얼마 남지 않았다. 주인 말로는 앞에 사랑채를 지은 이후 계속 재물이 모이지 않고 빠진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들딸들이 앞의 사랑채를 없애고 마당이 넓고 빛이 잘 들어오도록 하려고 했지만 어머니의 반대 때문에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도 수술해 무릎에 철심을 넣었다고 한다.
 
이 사례를 볼 때 생활공간 구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은 건물을 지을 때 도로에 가까이 세우고 뒤에 주차장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도로가 좁을 경우에는 건물 앞부분에 여유 공간을 두는 것이 좋다. 전통가옥을 보면 앞마당이 뒷마당보다 넓게 만들어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식당이나 사무실도 마찬가지로 명당의 공간이 필요하다. 부족한 점은 채워가며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풍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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