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왕연중 | 그림 김민재 만화가

구약성서에 목욕에 관한 기록
사람들을 질병으로부터 해방시킨 발명 중에 하나인 목욕탕. 목욕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다. 구약성서에도 목욕에 관한 기록이 있으며, 고대 이집트 건축물의 유적에는 특수한 목욕탕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동물은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목욕을 한다. 사람도 목욕탕이 발명되기 전 까지는 야외에서 목욕을 했다. 동물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었고, 그래서 아무 곳에서나 목욕을 하지는 않았고, 가능한 깨끗한 물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목욕탕을 처음 설치한 것은 이집트 미노스왕이 지중해의 크레타섬에 있는 코노소스궁전에 설치한 것이었고, 찬물이 아닌 따뜻한 온수를 사용한 것은 기원전 315년 부터였다. 또 공중목욕탕을 처음 만든 사람은 기원전 344년경 스파르타인들이었고, 이것이 로마의 목욕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목욕탕이 건축문화로 자리 잡은 것은 화장실과 수도가 발명되면서 부터였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영국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9세기 초 영국에는 실내 목욕탕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신라시대부터 목욕
우리나라의 목욕탕 문화도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기록상으로는 신라 시조인 박혁거세가 야외에서 목욕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이 그 이전부터 목욕은 생활의 일부였을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경주 안압지에서는 석조욕조도 출토되었다.

신라시대에는 절에서는 공중목욕탕과 수세식 변소의 혼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때 일부 상류사회 가정에서도 목욕탕과 수세식 변소가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시대들어 목욕에 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불교의식의 하나인 목욕재개가 중시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의 목욕문화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중시되고, 과학화되었다. 즉, 단순히 몸을 싣는 것을 벗어나 목욕물에 각종 피부에 좋은 첨가물을 넣어 사치스런 목욕을 즐기게 되었다.

당시 목욕물에 첨가한 것은 어린이는 피부를 희게 하기 위해 복숭아 꽃, 어른과 여자는 난초 삶은 난탕에 목욕함으로서 피부를 희고 부드럽게 하였다. 특히 혼례를 앞둔 규수는 난탕을 비롯해 인삼달인 인삼탕, 창포탕, 복숭아 잎 탕, 마늘 탕 등을 이용했다. 상류사회 가정에는 목욕탕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탕은 1924년 평양에서 만들어 졌으며, 서울에는 1925년에 처음 만들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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