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을 돈이 있는데, 증거도 명백한데, 못 받는 경우가 있다. 왜 그럴까?

법에는 ‘소멸시효’라는 것이 있어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권리가 있어도 그에 대한 상대방의 의무는 없어진다. 돈을 안주고 버티는 사람을 법이 보호하는 것이라고 볼 여지도 있을 것 같은데... 천하의 나쁜 놈도 안 붙잡히고 오랜기간이 지나면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하여 법적 처벌을 못하는 것과 같이...

오랜 기간이 지나서 갑자기 돈을 달라고 하면, 비록 심정적으로는 돈을 안 갚는 나쁜 사람일지라도 그 기간 동안 숱한 일들을 겪었을 것이고, 덜컥 돈을 주려면 드라마틱한 삶의 반전을 겪어야 할 수도 있기에 법에서 소멸시효라는 제도를 두어 안 갚은 사람의 삶의 안정성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도망 다니고 숨어 다녔던 범죄자의 삶도 공소시효가 완성되는 오랜 시간 동안 그 시간의 더께만큼의 삶에 대하여 법이 인정하고 법적 처벌로 그 삶에 침해를 가하지 않는 것과 같이, 일정기간 동안 지속된 상태를 법은 보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돈을 떼이지 않으려면 일정기간 동안 돈을 받지 못한 상태를 지속시켜서는 안 된다.
채권의 성격을 고려하여 법은 다르게 그 기간을 정하고 있는데, 1년짜리, 3년짜리, 5년짜리, 10년짜리 채권이 있다. 이 기간 동안 채무자가 그저 알아서 갚겠거니 방치해놓았다면 채권은 휴지가 될 수 있다.

1년짜리 채권으로는 여관의 숙박료, 음식점의 음식료, 옷 대여료 등이 있고, 3년짜리 채권으로는 변호사, 의사의 서비스에 대한 대가, 도급받은 자의 공사채권, 생산자 및 상인이 판매한 상품의 대가, 수공업자 및 제조자의 물건에 대한 대가 등이 있으며, 5년짜리 채권은 당사자 중 한쪽이라도 영업이나 사업을 하면서 생긴 상행위로 인한 채권으로 위 1년, 3년에 해당하지 않는 채권이다. 그 외의 채권은 10년짜리로 보면 된다. 판결을 받거나 재판상 화해, 조정 등이 이루어진 채권 역시 그 소멸시효 기간이 10년으로 늘어난다.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재촉하지 않는 채권자에게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하지 않는다.”라는 법언을 들며, 정말 보호하지 않는다. 내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은 얼마인지, 소멸시효기간이 다 되어가는 채권이 있다면, 서둘러 소송을 하거나 압류·가압류·가처분의 조치를 취해놓아야 한다. 이런 조치 없이 소멸시효기간이 완성되어 버리면, 채권은 죽는다. 죽어가고 있는 채권은 없는지 살펴서, 선의로 갚겠거니 믿어준 것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정헌수 변호사
새연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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