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봉원이 50억의 빚을 지고 사망하여 배우자인 박미선과 그의 두 자녀가 상속을 받는 상황이라면, 박미선과 두 자녀 중 한 명은 상속을 포기하고 두 자녀 중 남은 1명이 한정승인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한 이유는? 이와는 달리 배우자인 박미선이 한정승인을 하고 두 자녀가 상속포기를 했다면?

최근에 신문기사에도 장식이 되었던 대법원 판례가 하나 있다. 사안은 피상속인(사망자)에게는 배우자 A와 두 자녀 B, C가 있었으며, B에게는 D와 E 자녀(피상속인의 손자녀)가 있었고, C에게도 F 자녀가 있었다.

배우자 A는 한정승인하였고, B와 C는 상속을 포기하였다. 남편의 빚을 배우자만이 책임지겠다는 의도 하에 배우자 A만 한정승인을 하고 자녀 B와 C는 상속을 포기한 것이다.

대법원은 ‘상속을 포기한 자는 상속개시된 때부터 상속인이 아니었던 것과 같은 지위에 놓이게 되므로,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한 경우에는 배우자와 피상속인의 손자녀 또는 직계존속이 공동으로 상속인이 되고, 피상속인의 손자녀와 직계존속이 존재하지 아니하면 배우자가 단독으로 상속인이 된다.’(대법원 2015. 5. 14. 선고 2013다48852판결 참조)고 하였다.

즉 자녀인 B와 C 모두 상속을 포기하였다면, 그 상속포기자의 후순위 상속인이었던 손자녀인 D, E, F가 배우자인 A와 공동상속인이 된 것이고, 손자녀인 D, E, F가 별도로 상속포기를 하지 않았다면 D, E, F가 피상속인의 상속인으로서 피상속인의 채무에 대하여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해보자면 상속은 혈연으로 가는 상속과 배우자에게로 가는 두 가지 방향의 상속이 있는데, 혈연으로 가는 상속의 우선 순위자(보통은 자녀)가 상속을 포기한 경우 그 후순위 상속인인 다른 혈연자가 상속인이 되는 것이므로 그 후순위 상속인까지(4촌이내의 혈족까지) 상속포기를 해야 상속채무에 대한 위험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반면 배우자에게로의 상속은 후순위 배우자가 없기 때문에 배우자가 상속포기를 하면 끝나는 것이다.
간명한 상속포기 대신 복잡한 한정승인을 하는 이유가 상속인이 될 것이라고 예상 못했던 후순위 상속인이 피해를 입을 우려 때문이라 했다(지난 번 칼럼).

위 사안의 경우 그 우려 때문에 혈연상속자인 자녀는 상속포기를 하고 배우자(박미선)가 한정승인까지는 했는데, 애먼 후순위 혈연자인 손자녀가 상속인이 되어 불똥이 튀었다. 배우자는 상속포기를 하고 배우자가 아닌 자녀 중 1명이 한정승인을 하였다면 후순위 혈연 상속인인 손자녀에게 상속될 이유가 없으므로 문제될 것이 없었을 것이다.

정헌수 변호사
새연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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