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길쭉한 초상화엔 왜 눈동자가 없을까

 
학창 시절 미술 교과서에서 처음 접한 얼굴이 긴 여인은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나를 쏘아보는 듯한 시선에서 섬뜩함까지 느낀 이유는 가느다랗고 찢어진 눈매에 눈동자마저 없었기 때문이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모딜리아니의 작품과 제대로 대면했다. 예전의 잔상이 선입관으로 남은 상태에서 그의 작품을 만났으나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무서움보다 슬픔과 몽환적인 느낌을 받았다. 모딜리아니의 일관된 소재는 ‘인물’이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길쭉한 얼굴, 아몬드형 눈, 가늘고 뾰족한 코에 작고 빨간 입술, 둥글고 처진 어깨에 다소곳이 모은 두 손. 정형화된 인물 묘사를 통해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생전에 “내가 추구하는 것은 사실이나 허구가 아닌 무의식이다”라고 말했다. 모델을 화폭에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교감을 원했다는데, 작품 속 인물은 눈동자가 없는 눈으로 깊은 내면의 세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가 작품을 통해 표현한 인물은 가족, 아내, 후원자, 예술적 교감을 나눈 동료, 길에서 만난 소년 등 다양하다.

모딜리아니는 “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 때 당신의 눈동자를 그릴 것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그래서인지 몇 작품에는 선명한 눈동자가 담겼다.

모딜리아니는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고 35세로 생을 마친 불운의 화가다. 돈을 벌기 위해 인물화를 택했지만 작품을 사는 사람이 없어 궁핍했고, 조각가로서 성공을 꿈꿨지만 건강이 발목을 잡아 그만두어야 했다.

1917년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개인전을 열지만, 누드화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철거 명령을 받으며 작가로서 인정받을 기회를 놓쳤고 3년 뒤 뇌수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14년이라는 짧은 화가 생활 때문인지 그 수가 적고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졌다. 이번 전시회는 1898~1920년에 작업한 유화와 종이 작품으로 구성되었고 진품 70여 점을 모았다.

국내 최초 회고전인 만큼 그의 작품 세계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누드 작품 중 최고 걸작으로 여겨지는 ‘머리를 푼 채 누워 있는 여인의 누드’와 마지막까지 사랑한 아내를 그린 ‘앉아 있는 잔느 에뷔테른느’도 만날 수 있다.

그의 삶과 사랑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작품을 감상한다면 화가로서 고뇌와 내면의 깊이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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