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여자1가 혼인을 하여 아이를 낳고 20년 동안 같이 살다가, 남자가 여자2와 바람이 나서 여자2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고 동거를 하며 살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2와 동거한지 10년이 다 되간다.

남자는 여자1에게 100만원 정도의 생활비를 주고 있었다. 여자2는 남자에게 여자1과 이혼을 할 것을 조르고, 남자는 여자1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그러나 여자1은 형식적인 결혼일지라도 유지하기를 원했고, 결국 남자는 여자1과 이혼하기 위하여 하는 수 없이 이혼 재판을 청구한다.

여자1이 바람이 난 남자에게 여자2와 아이까지 낳고 동거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혼 재판을 청구한다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오히려 남자가 여자1에게 이혼을 청구한다면 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여자1에게만 이혼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바라보는 시각이 ‘유책주의’이다. 배우자 중 어느 일방이 동거·부양·협조·정조 등 혼인에 따른 의무에 위반되는 행위를 한 때와 같이 이혼사유가 명백한 경우에 그 상대방 배우자에게만 재판상의 이혼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이 유책주의이다.

이와는 달리 부부 당사자의 책임유무를 묻지 아니하고 혼인을 도저히 계속할 수 없는 객관적 사정인 파탄을 이유로 이혼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파탄주의’이다.

예전에 상대적으로 경제적 능력이 없었던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강제적으로 축출 당하는 이혼을 막기 위하여서라도 유책주의를 유지해왔던 대법원의 입장이 2015년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유효한지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그 결과는 유책주의 7 : 6 파탄주의.

아슬아슬하게 대법원기존의 입장인 ‘유책주의’가 유지되었고, 남자의 이혼 청구는 허락되지 않았다(대법원 2015. 9. 15.선고 2013므568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물론 방귀 뀐 놈이 성내는 이혼 청구였을지라도, ‘한 쪽은 같이 살기 싫다고 하는데’, ‘이미 같이 살고 있지도 않는데’, 이혼은 안 된다, 둘은 혼인 상태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국가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지, ‘파탄주의’적 시각에서의 비판은 대법관 6명의 지지를 얻었고, 앞으로도 계속 힘을 얻을 수 있는 논의이다.

정신적·육체적·경제적으로 결합된 공동체로서의 부부공동생활을 본질로 하는 혼인의 실체가 소멸되었다면, 형식에 불과한 혼인관계를 해소하는 이혼청구가 불허된다는 것은 불합리하고, 쌍방에게 실제로 이행불가능한 부부공동생활 내지는 동거의무 등의 이행을 요구하는 것이 되어 타당하지 아니한 측면이 있다.

상대방이 입은 손해나 상대방 보호에 필요한 사항은 이혼에 따른 배상책임 및 재산분할 등에 충분히 반영하면 될 것이다.

정헌수 변호사
새연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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