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리직원이 법인의 자금을 횡령하여 해외로 출국하려한다는 것보다 그 빈도수가 훨씬 많이 일어나는 이야기는 법인의 대표자가 법인의 자금을 횡령하여 일어나는 분란이다.

회사의 규모가 작을수록 법인의 돈과 대표자 개인의 돈의 구별이 모호하기도 하고, 법인의 돈이라는 것이 명확하다 하더라도 최고 실권자인 대표자의 전횡을 막기 어려운 경우가 존재할 것이다.

이렇게 대표자의 횡령 등 법인에 대한 불법행위는 경리직원의 횡령보다도 법으로도 단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가령 경리직원이 횡령을 했다면 법인 대표자가 이를 알게 된 날 곧바로 그 경리직원을 횡령으로 고소하고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다.

대표자가 횡령을 했다면 대표자 본인 스스로 자수할리 만무하고, 회사 내부에서도 대표자를 해임하니 마니 하면서 시간은 흘러 대표자 책임을 묻는 시간이 길어지고 자칫 잘못하면 대표자의 면책을 가져올 수 있다

불법행위(횡령도 이에 포함)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민법 제766조). 통상 법인의 경우 법인의 대표자가 ‘안 날’을 의미한다.

그러나 법인의 대표자가 스스로 법인에 대하여 횡령 등 불법행위를 한 경우, 법인의 대표자가 침묵하고 있다고 한다면 3년이라는 시간은 쉬이 흘러가 버릴 것이다.

대법원은 대표자가 법인에 대한 불법행위를 한 경우 법인과 대표자의 이익은 상반되므로 법인의 대표자가 그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하리라고 기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도 대표권도 부인된다고 할 것이어서, 법인의 대표자가 손해 및 가해자를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적어도 법인의 이익을 정당하게 보전할 권한을 가진 다른 대표자, 임원 또는 사원이나 직원 등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이를 안 때에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판시하였다.

또한 대법원은 법인의 대표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피보전권리로 하여, 법인이 채권자 취소권을 행사하는 경우에, 취소원인을 안 날로부터 1년, 법률행위 있을 날로부터 5년 내에 소를 제기해야 하는 제척기간이 있는데, 그 ‘취소원인을 안 날’을 판단할 때에도 불법행위를 한 대표자가 아닌 다른 대표자, 임원 등이 안 때라고 하여 같은 논리를 취하고 있다.

결국 법인의 대표자가 법인에 대한 불법행위를 한 경우, 법조문을 기계적으로 해석한다면 법인 대표자가 면책될 가능성이 높아져, 법원은 실질적으로 법인(회사)이 대표자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알게 되었을 때라는 기준을 설정해주고 있는 것이다.

정헌수 변호사
새연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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