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치킨집이 점점 어려워졌다. 치킨 사업은 이미 포화된 상태였다든가, 입지 선정을 잘못했다든가, 프랜차이즈 선택을 잘못했다는 등 치킨집 사업주의 판단, 선택, 운영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들이 들린다. 주변 사람 그 누구도 치킨을 사가는 소비자 탓을 하지 않았다.

어느 대부업체가 빌려준 돈을 회수하지 못했다. 대부업체의 판단, 선택, 운영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빌려간 사람이 돈을 갚지 않는다며 사기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렸다. 실제로 대부업체는 여럿 빌려간 사람을 사기죄로 처벌하기를 원했고, 그 중 몇 몇 사람은 사기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치킨집이나 대부업체나 둘 다 타인으로부터 이익을 얻고자 하는 사업이다. 사람들은 사업이 잘 되면 사업주의 공으로, 사업이 망하면 사업주의 탓으로 돌린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사업에 대해서도 이자를 잘 받아서 수익이 나면 사업주의 공으로 돌린다. 그러나 원금까지 떼이는 상황이 오면 사업주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그 사업주 사업의 소비자였던 빌린 사람의 도덕적 해이와 사기죄의 형사 책임이 부각된다.

‘빌린 돈은 갚아야 한다.’는 도덕적·법적인 전제가 대부업체가 이자 수익을 얻고자 빌려준 행위에 대한 대부업체 스스로의 탓을 희석시킨다.

대부업체는 원금이 보장된다는 것을 전제로 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다. 떼일 수도 있다는 위험을 알고 있고, 그것을 감내하기에 고율의 이자 수익이 정당화되는 것이다.

치킨집과 대부업체를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사업의 위험이 실현되었을 때, 그 책임의 주체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존재한다는 것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빌린 돈은 갚아야 한다.’는 도덕적·법적인 전제가 금융‘사업’을 다른 사업과는 다르게 바라보게 한다.

금융사업의 위험이 실현되었을 때(빌려준 사람의 입장에서 돈이 떼이는 위험), 돈을 빌려간 사람의 책임이 없다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여느 다른 사업과 같이 사업주인 빌려준 사람의 책임도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업주 사업의 예견되는 위험 실현이라는 관점까지 더해서 바라본다면, 이자는 갚지 않아도 되고 원금만 갚게 되거나, 원금의 일부만 갚게 되거나, 원금을 전혀 갚지 않아도 면책이 되는 회생·파산 제도의 정당성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금융 위험의 부담을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어느 정도 분배해보려는 법적 제도인 것이다.

일부러 채무를 지고 떼먹으려고 했던 사람이 아니고 채무로 인하여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받고 있다면, 법에서 마련해준 숨 쉴 공간인 회생·파산 제도를 떳떳하게 활용해보길 바란다.

정헌수 변호사
새연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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