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시간은 꽤 흘렀지만 필자가 명작 드라마라고 생각하는 ‘장밋빛 인생’(KBS 2005년작)에서, 부인인 최진실이 남편 손현주의 불륜녀 조은숙을 찾아가서 조은숙과 한바탕 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데 최진실은 남편인 손현주와는 싸움을 하지 않았다. 본인과의 약속을 저버리고(결혼이라는 약속의 정조의무 위반) 가장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은 남편이 아닌가? 남편의 머리를 쥐어뜯고 나서 그래도 화가 안 풀리니 불륜녀의 머리를 뜯어야 되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드라마를 보면 왜 남편의 머리를 뜯기보다는 불륜녀의 머리를 뜯는 것일까?

실제 당해보지 않고서는 불륜녀에 대한 감정을 헤아릴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만... 불륜녀의 잘못보다 더 큰 것은 배우자의 잘못이고 화를 푸는 상대방도 불륜녀가 아닌 배우자여야 한다고 당시에는 생각했었다.

당시에는 남편의 정조의무 위반행위는 불륜녀의 위반행위가 아니라 남편만의 행위라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법은 불륜녀가 ‘남편과 공동하여’ 남편의 정조의무 위반행위를 한 것이고(공동불법행위), 그로 인하여 부인의 정신적 고통에 대해서도 불륜녀는 남편과 ‘함께’ 위자료 지급을 전부 책임지라고 한다(부진정연대채무). 

가령 부인의 고통을 위자료 1,000만원이라고 한다면, 남편은 1,000만원을 지급해야할 의무가 있고, 불륜녀도 1,000만원을 지급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둘 한테서 2,000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둘에게 합쳐서 받든 누구한테 받든 간에 1,000만원을 받으라는 것이다. 남편과 불륜녀 사이에 1,000만원을 어떻게 분담할지에 대해서는 둘의 문제이고 부인은 피해자니까 전부를 받으라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만 더 상정해보자. ‘애 아빠니까.’ ‘그래도 그 동안 산 정 때문에,..’ 갖가지 이유로 남편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남편에게는 1,000만원을 받지 않겠다고 하고 쿨 하게 헤어지거나, 다시 이전으로 되돌리려 하며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불륜녀가 지급해야할 1,000만원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법적으로는 남편에게 채무를 ‘면제’해준 것인데, 부진정연대채무의 경우 남편에게 면제 해 준 것이 불륜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므로, 불륜녀는 여전히 1,000만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드라마 속에서 남편이 아닌 불륜녀의 머리를 뜯는 장면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비록 현실에서 불륜녀의 머리를 뜯을 수는 없지만(불륜녀의 머리를 뜯으면 폭행죄나 상해죄가 될 것이다), 불륜녀의 돈은 뜯을 수 있는 것이다.

정헌수 변호사
새연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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