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진 빚 아내가 갚아야 할까? 옛말에 부부는 ‘일심동체’라서 그래야 할까? 부부가 일심동체라고 누가 그랬을까, 맞는 말이긴 할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전에 법전을 뒤져보자.
‘부부의 일방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중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은 그 특유재산으로 한다.’ ‘부부의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 분명하지 아니한 재산은 부부의 공유로 추정한다.’ ‘부부는 그 특유재산을 각자 관리, 사용, 수익한다.’라고 법전에 기재되어 있다(민법 제830조, 제831조).
법은 분명히 부부의 재산이 구분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고, 누구 것인지 아리송한 재산에 대해서만 공유로 추정한다고 하였다. 답은 나오지 않았는가? 부부의 재산이 구분된다면 빚도 구분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법전에 또 이런 것도 적혀있다. ‘부부의 일방이 일상의 가사에 관하여 제3자와 법률행위를 한 때에는 다른 일방은 이로 인한 채무에 대하여 연대책임이 있다. 그러나 이미 제3자에 대하여 다른 일방의 책임 없음을 명시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민법 제832조).
대법원은 위 ‘일상의 가사’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법률행위의 종류·성질 등 객관적 사정과 함께 가사처리자의 주관적 의사와 목적, 부부의 사회적 지위·직업·재산·수입능력 등 현실적 생활상태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였다(대법원 1999. 3. 9. 98다46877 판결 참조).
조금 더 쉽게 풀어보면,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부부공동체로서의 자금으로 사용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면(이를테면 가족의 생활비 등) 부부가 함께 책임을 지라는 말이다.
법원은 부부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필수적인 주거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주택구입자금의 차용이라면 부부가 함께 책임을 져야 하며(주거목적이 아닌 투자목적이거나, 필수적인 주거 공간이 아닌 대규모주택 매수대금을 차용하는 것은 일상가사의 범위를 벗어난다),
남편의 진급시험 준비비용을 위하여 처가 돈을 빌린 것도 결국 부부생활을 함께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므로 일상가사 행위에 해당하여 함께 책임을 지라고 하였다.
반면에, 처가 자가용차를 구입하기 위하여 타인으로부터 빌린 행위는 일상 가사로 볼 수 없다고 하였고, 남편의 사업상의 채무에 대해서도 일상가사로 볼 수는 없다 하였으며, 처의 계금채무에 대해서도 일상가사의 채무로 보지 않았다.
결국 법은 원칙적으로 남편이 진 빚은 남편이, 아내가 진 빚은 아내가 갚으라고 하되, 일상 가사를 위한 채무라면, 부부공동생활을 위한 채무라면, 부부가 함께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남편이 진 빚 아내가 갚아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