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영사기 시대를 연 사람은 일본의 목공이었던 사카키 히데노브였다. 919년 어느 화창한 여름날이었다. 목공소 주인은 사진기를 만지고 있었다. 사카키는 그 앞을 지나가다 사진기에 눈이 멈추었다.

 

“사카키, 이 사진기에 관심이 많은가 보구나. 이리 들어오너라.” 사카키는 몹시 기뻐하며 아주 즐겁게 사진기에 대해 배웠다. 그는 총명하고 진지해서 주인이 놀랄 정도로 빠르게 이해했다.

‘사진기란 것은 정말 신기해. 아주 섬세하기도 하고. 이것을 내가 직접 만들 수는 없을까?’ 사카키의 열정은 사진기를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어느새 그것은 그의 소중한 꿈이 되었다.

‘지금 당장은 사진기를 만들지 못하니 먼저 사진 용구를 제작 해보자.’이렇게 다짐하고는 각종 사진 용구를 시중에 내다 팔았다. 1921년에는 사카키 상회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사진 용구 제조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날로 번창하였지만 사카키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내가 사진업을 하면서 쌓은 이 기술을 이용하면 더 독창적인 사업을 할 수 있는 거야.’ 그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다짐하며 새로운 기술 개발에 힘을 쏟았다. 바로 이때를 맞추어 무성영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새로운 기술을 애타게 기다리던 사카키로서는 정말 좋은 기회였다.

‘영사기라, 정말 좋군,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이용하는 것도 좋겠어.’ 생각이 이에 이르자 사카키에게는 기막히 사업계획이 떠올랐다.

‘그래 맞아! 어느 장소에서도 상영할 수 있도록 작은 영사기를 만드는 거야.’ 그는 명쾌하게 결정하고 일을 추진해나갔다. 여러 가지 사전 지식과 사진기에 대한 기술을 터득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카키는 자신 있게 사업을 진행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1926년에 소형영사기를 생산하는데 성공하였다.

사카키가 만든 35밀리 영사기는 당시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었다. 그의 영사기는 세계 각국으로 팔려 나갔고, 그의 기업은 소형 영사기 제조업체로 명성을 날렸다.

사카키는 스물아홉 살의 젊은 나이로 일본에서 알아주는 기업인으로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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