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처의 딸을 상습 강간한 오십대 가장을 이십대 아들이 쇠절구로 쳐 죽인 사건이 있었다. 기사는 사건만을 써야 한다. 그러나 소설 속의 문정수 기자는 사건의 사실적 진술과 함께 자신의 생각을 들려준다. 물에 젖은 하루의 일이 끝나는 새벽 기자실에서 문정수는 아버지를 죽인 아들의 눈빛을 생각했다. 고요히 집중된 눈빛이었다. 수사할 수 없고 기소할 수 없는, 취재할 수 없는 그 눈빛은 지금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문정수 기자가 밤늦게 사건 현장 취재를 마치고 노목희의 집을 찾는다. 노목희는 인문학 출판사에서 편집 업무를 배운다. 그녀는 지방대 서양화과를 마치고 미술교사를 했었다. 문정수가 기사로 쓸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노목희가 담담히 들어준다. 그것이 어쩐지 노목희가 알고 있어야 할 이야기인 것처럼 문정수는 느꼈다. 신문에 쓸 수 없는 것들, 쓰지지 않는 것들, 말로 전할 수 없고, 그물로 건질 수 없고, 육하의 틀에 가두어지지 않는 세상의 바닥을 문정수는 때때로 노목희에게 말해주었다. 그 이야기는 지체 없이 전해야 할 전보처럼 다급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전하는 먼지와 불길과 냄새는 노목희에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듯싶었다.
그가 취재해 온 사람들은 인생이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럽다. 소방서 특공조장 박옥출이 백화점에 불을 끄러 갔다가 방열복과 내복 사이로 귀금속을 움켜 넣는 모습을 목격한다. 박옥출은 신장염을 앓고 있다. 그는 퇴직 후에 해망에 내려가서 고철 중개업을 해보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비닐하우스에서 치매초기의 할머니와 살던 소년이 기르던 개에 물려 죽었다. 기자는 소년의 어머니 오금자를 찾아 해망으로 내려간다. 오금자는 식당에서 일했는데 뉴스를 듣고 미친년처럼 눈알이 허옇게 뒤집어져서 잠적한다.
문정수는 박옥출과 오금자를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정수는 쓰여질 수 있는 것과 쓸 수 없는 것에 대해 고민한다. 그것에 대해 노목희는 쓰지마. 그냥 냅둬. 경찰한테도 말하지 말고 데스크한테도 말하지 마. 라고 말해준다. 죽은 사람 보다 산 사람이 더 불쌍한 거라고. 기사를 쓰면 치사해지는 것이고 쓰지 않으면 답답하고 막막한 것이 된다. 막막한 쪽이 치사한 쪽 보다는 견딜 만하기에 노목희는 문정수를 생각해서 쓰지 말라고 한다. 
해망이라는 공간은 바다와 뭍이 닿는 갯가에 위치한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그 지점에 인간들이 물막이 공사를 한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터전과 생계를 박탈하고 거침없이 자연을 거스른다. 인근에 뱀 섬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미군들이 폭격 훈련을 한다. 작가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여기서도 사람들은 생존을 위하여 모질게 살아간다. 그 모진 삶을 밤늦은 시간에, 문정수는 혼자서 중얼거리듯이 노목희에게 말한다. 뱀섬을 부수는 폭격기와 기르던 개에 물려 죽은 소년과 아들의 죽음을 버리는 그 어머니 오금자에 관하여 말했다. 그리고 소방청장 표창은 받은 소방관 박옥출의 업무상 배임과 절도, 해망 매립지의 장어와 민들레, 방조제 도로의 교통사고, 세습 농부 방천석의 잠적에 관하여. 말을 듣는 사람이 없어도 무방할 듯싶었다.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가버린 세상에 관하여 문정수가 더듬거리며 말할 때 노목희는 가끔씩 그랬겠구나...... 잘했어...... 내버려둬......괜찮아...... 괜찮을 거야...... 라고 응답해주었다. 노목희의 응답은 추인이거나 달램처럼 들렸다. 문정수의 말은 듣는 사람이 없어도 무방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듣고서 잘했어, 내버려둬...... 라고 응답해주지 않으면 울음으로 변해버릴 말처럼 들렸다.

작가가 기자생활 동안 겪은 일 소설로 재구성
문정수가 노목희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실제 벌어진 사건에 기반 한 내용들이다. 작가가 27년간의 기자생활을 통해 취재한 사건들을 소설로 재구성했다. 작가는 이 글을 통해 독자에게 위로 받고 싶었나 보다. 문정수가 작가 자신이라면 노목희는 독자가 아니었을까?
작가가 들려준 세상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은 인생의 비애와 참담함을 느낀다. 문정수를 연민하는 노목희의 바람처럼 독자로써 작가에게 바람이 있다면 독자의 몸속 깊은 곳으로 들어와서 거기에서 녹아서 편안해지기를, 아무것도 묻어 있지 않은 몸이 새로운 시간 앞에 다시 서기를 바란다.
이 소설을 기점으로 작가는 “공무도하” 후기에서 말했듯이 맑게 소외된 자리로 가서, 거기서 새로 태어나든지 망하든지 해야 한다. 남은 시간들 흩어지는데 문정수는 어디로 가야 하나. 노목희는 미술공부를 하러 멀리 떠난다고 한다. 문정수는 기자다. 싸움터에서 부는 바람을 온몸으로 감지하는 종군기자다. 싸움이 그치지 않는 이곳에서 문정수는 죽을 때까지 써야 하리라. 그가 연필을 들고 온몸으로 밀어가며 써나가는 언어의 세계가 곧 ‘맑게 소외된 자리’가 아닐까 싶다.    
고형권 기자 vic21pro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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