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폭발적인 야구 붐을 일으킨 씨앗 중의 하나는 ‘연식 야구공.’ 12세 소년 스즈카 에이치는 이 발명으로 백만장자의 홈런을 날렸다.

 

1916년 봄 일본 동경의 마루야마공원. 벌써 몇 달째 병석에 누워있던 에이치는 따스한 봄을 맞아 아버지의 부축을 받으며 모처럼 공원 산책에 나섰다.  얼마만의 외출이던가. 에이치는 집밖으로 나온 것만으로도 한없이 즐거웠다.

공원을 또래 소년들의 야구경기로 떠나갈듯 요란했다. 당시 일본에는 미국에서 막 전파된 야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공원이든 골목이든 가리지 않고 작은 공터만 있으면 어린이들의 연식야구경기가 벌어지곤 했다.

에이치는 한 시간이 넘도록 경기를 구경하고 있었다. 당시 사용되던 공은 ‘연식정구공.’ 그러다보니 아무리 힘껏 배트를 휘둘러도 공은 좀처럼 시원하게 날아가지 못했다.

휙 솟아올랐다가도 약간의 바람만 불어도 거꾸로 날아가는 촌극이 종종 벌어졌다. 이를 지켜본 에이치는 무척 안타 까왔다.

‘공이 힘차게 날아가면 더 없이 즐거울 텐데.’ 에이치는 친구들을 위해 보다 좋은 공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몸이 아파 학교에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충분한 연구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 불행 중 다행. 그는 틈난 있으면 아픈 것도 잊고 공을 만지작거리며 깊은 생각에 빠져들곤 했다.

어느 덧 두 달이 지나 여름이 되고 그날따라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외출을 서두르던 아버지가 발이 비에 젖는 것을 피하려고 고무장화를 꺼내들었다. 고무장화의 두껍고 들쭉날쭉한 바닥이 에이치의 눈에 들어왔다. 그토록 원했던 착상이 얻어지는 순간이었다.

‘거죽에 들쭉날쭉한 얕은 흠이 패인 고무공!’  아들의 생각에 감탄한 아버지는 서둘러 특허출원을 마치고 곧바로 생산에 착수했다.

생산기구는 고무를 녹이는 가열기와 금형 하나가 전부였고 공장은 헛간, 공원은 가족. 이렇게 나온 연식야구공은 수그러들 줄 모르는 야구 붐을 타고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몇 년 후 에이치 집안은 자연스레 백만장자 대열에 낄 수 있었다. 정확히 어느 정도의 양이 팔렸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지금도 일본인들은 이것이 일본이 야구왕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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