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랜 세월 애매한 것에 접근하지 않도록 배워왔기 때문에 고정관념에 매어왔다. 애매한 태도나 말들은 용납되지 않았고, 오로지 ‘흑이냐, 백이냐. 분명히 해라.’ 하고 강요를 받으며, 답안지에도 확실한 답 하나 만을 골라 넣도록 훈련을 받아왔다.

그래서 자신이 빠져있는 고정의 틀에 테두리를 그어놓고 약간만 벗어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살아왔다. 그러나 고정관념에서 조금만 벗어난다면 애매한 전제나 답이 확실한 논리를 바탕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바닷물은 가장 깨끗하면서 또한 가장 더럽다.’ 라고 전제했을 때  어떤 사람은 눈살을 찌푸리며 이렇게 빈정거릴 것이다.

‘깨끗하면서 더럽다니? 그런 애매한 답이 어디 있어. 깨끗한지 더러운지 확실하게 결론을 내.’
그런데 이런 논리는 어떨까? ‘바닷물은 물고기가 마실 수 있어서 생명의 원천이 되지만, 사람은 마실 수 없기 때문에 파괴적인 것일 뿐이다.’

바닷물은 당연히 깨끗함과 더러움을 동시에 갖는 양면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보는 바닷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림으로서 가능한 생각일 것이다. 고정관념을 깨면 시야는 단연코 넓어진다.

옛날에는 여자가 바지를 입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또한 마차의 천막 덮개와 같이 무겁고 투박한 천으로는 옷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 하나의 고정관념이었고, 이런 상식들이 깨지리라고 예측한 사람도 없었다.

여자는 영원히 치마를 입는 존재이며, 천막천은 오로지 천막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것으로 생각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막으로 만든 청바지는 최정상의 의복으로 자리 잡고, 바지를 입은 여자는 당연한 것으로 되어버렸다.

발명역사에서 찾을 수 있는 ‘깨어진 고정관념’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그뿐, 정작 자신은 고정관념에 젖어 헤어 나오려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특별한 사람들이니까 그런 기발한 생각을 해냈지. 난 너무 평범해서…’

‘나는 공부도 못했고, 머리도 굳어서.’
문제는 나이나 학력이 아니라, ‘매사에 옳다, 그르다.’ 라는 사고방식에 젖어 그것에서 스스로 빠져 나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큰 장애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고정관념을 알게 모르게 깨고 있고, 깰 능력을 갖고 있다. 송곳이 아닌 볼펜으로 종이에 구멍을 뚫었거나, 가로로 줄이 쳐진 공책을 세워서 써 보고, 도장에 인주 대신 빨간 잉크나 루즈를 발라 사용하는 예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무의식적으로도 이렇게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데 스스로 노력을 한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겠는가. 망설이지 말고 과감히 고정관념을 버려라. 고정관념은 우리를 자꾸 주저앉게 하고 뒤에서 윗도리를 잡아 다닐 것이다. 무거운 짐을 벗고 가볍게 빠져나가 발명의 세계로 다가서자.

왕연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장 겸임 U1대 발명특허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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