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을 하고 나서, 알고 보니, 배우자는 이미 불치의 병에 걸려 있었다. 애잔한 영화처럼 간호를 하며 남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이도 있을 테고, ‘미리 알았더라면 결혼하지 않았을 텐데’ 하며 다른 방법을 찾으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후자의 사람들에게 법은 ‘혼인취소’를 할 수 있다고 하여 혼인관계를 해소하는 길을 마련해놓고 있다, 이혼은 익숙하지만 혼인취소는 낯선 개념일 텐데, 개략적으로 차이를 구분해보자면 이혼은 혼인생활 중에 문제가 있을 때, 혼인취소는 혼인하는 시점에 이미 문제가 있을 때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혼인취소의 사유로는 미성년자의 혼인, 근친혼, 중혼, 사기강박에 의한 혼인, 악질 등 중대한 사유가 있는 혼인 등이 있다(민법 제816조 참조).

그렇다면 출산 사실을 이야기하지 아니하고 혼인을 하였을 때, 이를 혼인 후에 알게 된 남편은 혼인취소를 할 수 있을까? 민법 제816조 3호에는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때’ 혼인 취소를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출산 사실을 이야기하지 아니한 것이 ‘사기’에 해당하느냐의 논란이다. 민법 제816조 3호의 ‘사기’에는 적극적으로 허위사실을  고지한 경우뿐만 아니라 소극적으로 고지하지 아니하거나 침묵한 경우도 포함된다,

그러나 불고지 또는 침묵의 경우에는 법령, 계약, 관습 또는 조리상 고지의무가 인정되어야 하고, 고지의무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의 연령, 초혼인지 여부, 혼인에 이르게 된 경위와 그때까지 형성된 생활관계의 내용, 당해 사항이 혼인의 의사결정에 미친 영향의 정도, 이에 대한 당사자 또는 제3자의 인식 여부, 당해 사항이 부부가 애정과 신뢰를 형성하는 데 불가결한 것인지, 또는 당사자의 명예 또는 사생활 비밀의 영역에 해당하는지, 상대방이 당해 사항에 관련된 질문을 한 적이 있는지, 상대방이 당사자 또는 제3자에게서 고지 받았거나 알고 있었던 사정의 내용 및 당해 사항과의 관계 등의 구체적개별적 사정과 더불어 혼인에 대한 사회 일반의 인식과 가치관, 혼인의 풍속과 관습, 사회의 도덕관윤리관 및 전통문화까지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6. 2. 18. 선고 2015므654, 661 판결 참조).

무슨 말인가 하면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이야기하지 아니한 것이 문제가 있는 것이라면, 혼인취소를 할 수 있고, 이야기하지 아니한 것이 그럴 수도 있는 사안이라면 혼인취소를 할 수 없다는 것인데… 다음 칼럼에 대법원 판례를 소개하며 물음에 대한 답을 정리해보겠다.   

정헌수 변호사
새연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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