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박상규·박준영
펴낸곳 후마니타스
1만5천 원
범죄 수사에서 때로 자백은 어떤 증거보다 강력하다. 같은 죄도 자백을 하면 감안해서 형량이 감소되기도 한다. 간혹 자신이 짓지도 않은 죄를 인정하는 경우가 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우리나라는 3심제. 항소와 상고를 통해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다. 돈이 없으면 나라에서 국선 변호인을 선임해준다. ‘그런데 왜 범인이 아니면서도 죄를 인정했을까?’ ‘왜 항소와 상고를 포기했을까?’

<지연된 정의>는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을 통해 질문에 답한다. 이 책에 담긴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 치사 사건, 익산 약촌 오거리 택시 기사 사건, 완도 무기수 김신혜 사건은 공통점이 있다.

사건의 범인으로 몰린 사람들은 모두 보호자나 변호인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다. 경찰은 법과 원칙을 어긴 수사를 했다. 검찰은 경찰의 위법 수사를 전혀 통제하지 못하고 심지어 진범임이 유력해 보이는 피의자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풀어주기도 했다.

국선 변호인은 허위 자백을 유도하거나 강요했고 법원은 사건 기록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유죄를 선고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이들의 허위 자백은 어떻게 나왔을까?’라는 의문에 집중했고 삼례 사건과 익산 사건에서 누명을 쓴 이들은 재심을 거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책은 이 사건들을 맡아 진행한 박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가 함께 활동하면서 만난 재심 사건들의 기록이다. 지은이들은 경찰, 검찰 수사 기록, 공판 기록, 재심 기록을 읽고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복잡한 퍼즐을 맞춰나갔고, 그 과정을 르포( 다큐멘터리 수법으로 현실의 사건과 사실을 충실하게 묘사하고 기록하는 문학 형식)로 엮어 냈다.

박 변호사는 억울한 피해자들이 장애가 있거나 사건 당시 미성년이었기 때문에 안쓰러운 마음으로 변호한 것이 아니다. 그는 법에 따라 제대로 수사하고 판결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에 대한 경찰과 사법부의 책임을 묻고 ‘법’에 근거해 선량한 시민을 지키고자 했다. 

“법이 정한 바대로, 이 사건 피고인들이 존엄한 인간으로 대우를 받았나요? 행복추구권은 보장받았나요? 이들이 법 앞에 평등했나요? 오히려 역차별을 받지는 않았나요? 국가는 장애가 있거나 미성년자였던 이들, 그리고 이들의 가정을 어떻게 보호했나요?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 검사, 그리고 재판을 했던 판사는 이들에 대한 책임을 진 사실이 있나요?”   박준영 변호사의 ‘삼례 나라슈퍼 강도 치사 사건’ 최종 변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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