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축구화는 발목까지 보호
축구화는 축구의 종주국인 영국에서 탄생했다. 영국의 왕 헨리8세의 지시에 따라 왕실의 의상관리인이 발명하였다. 당시 축구화는 두꺼운 가죽으로 길게 만들어 발목까지 보호할 수 있었던 것이 특징이었다.

1900년대는 기존의 축구화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40년대에서 1960년대 축구화의 특징은 다양한 디자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 축구화가 경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축구화로 거듭난 시기이기도 하다. 당시 남아프리카 사람에 의해 제작된 축구화는 무척 가볍고 유연했다.

축구화의 역사에서 아디다스의 역사는 곧 축구화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수많은 명품을 탄생시켰으며, 아디 다즐러가 발명한 축구화는 그중의 으뜸이었다. 아디 다즐러는 장시간 발로 뛰는 축구는 축구화가 승부를 좌우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이러한 확신은 곧바로 베른 올림픽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아디 다즐러가 선보인 축구화는 잔디와 날씨 상태에 관계없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어 선수들에게 더 없이 좋았다. 스터드는 잔디와 날씨 상태에 따라 바꿔 달 수 있도록 했고, 재료는 무거운 쇠 대신 가벼운 고무나 플라스틱으로 바꾸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다즐러 형제의 발명
상황이 이렇다보니 1966년 월드컵 결승에서는 75%의 선수가 아디다스의 축구화를 신을 정도였다. 이에 따라 아디다스 축구화는 순식간에 세계적인 명품이 될 수 있었다. 여세를 몰아 1970년대에는 코파 문디알을 선보였다. 재료는 캥거루 가죽이었다. 캥거루 가죽은 인간의 피부와 가장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데서 시도한 것이다. 아디 다즐러의 시도는 적중했다. 무엇보다 공을 찰 때 터치 감이 좋아 선풍적인 인기였다.

아디 다즐러의 활발한 연구에 뒤질세라 아디 다즐러의 형 루돌프 다즐러 또한 활발한 활동을 했다. 루돌프 다즐러도 시야를 세계로 돌렸고, 그 일환으로 브라질의 펠레를 후원했다. 이때 푸마 축구화 킹 모델을 발명해내는데 성공했다. 킹 모델은 현대 축구화의 초석으로 평가되고 있다.

요즘은 ‘꿈은 이루어 진다’는 말이 현대축구화를 두고 한 말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최초로 시도된 로토사의 끈 없는 슬립온 형식의 축구화 그라비티시리즈, 축구화 최초로 인조가죽을 이용해 경량성의 극대화 시킨 나이키의 머큐리얼 베이퍼시리즈 등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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