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개인발명가들이 발명진흥에 기여한 공적은 실로 크다 할 수 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산업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발명에 뛰어들어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쌓아올린 산업재산권(특허-실용신안-디자인-상표의 총칭) 출원 세계 4위라는 금자탑의 초석이 된 공적은 우리나라 발명역사에 영원히 기록되어 후손에게 전해져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개인발명가 역사를 살펴보면 선조들의 발명은 당연 세계 최고였고,  그 열기는 일제시대에도 해방 후에도 선진국에 비해 부족함이 없었다. 이분들이 흘린 땀이 결실을 맺어 우리나라는 남녀노소 모두가 발명에 뛰어드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분들이 피운 불씨가 화산처럼 타오르게 되었고, 이분들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풍요로운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분들이 하나 둘 역사의 뒷장으로 사라져 모든 사람들에게서 잊어지고 있다.

필자가 1983년 ‘외길 집념의 승리-발명으로 성공한 사람들-’ 이라는 책을 쓸 때도 이분들의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이 같은 현상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뿌리 없는 나무가 있을 수 없고, 뿌리가 보존되지 않는 나무는 성장할 수 없듯이 세상사 모든 것은 뿌리가 중요한 것이다. 발명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필자는 일찍 세상을 떠나신 개인발명가들은 만난 적이 없지만 1980년대 이후 세상을 떠나신 분들은 직접 만나기도 했고, 세상을 떠나셨을 때 조문을 다녀온 적도 있다. 지난해와 금년 초에는 개인발명가로 기업화에 성공하여 금탑산업훈장까지 받으신 개인발명가가 세상을 떠나 조문을 다녀온 적이 있다. 또 다른 분들도 계셨지만 소식을 접하지 못하고 나중에야 알게 되어 무척 안타까웠다.

이때마다 느낀 것은 고인이 되신 개인발명가들이 세상에 남긴 공적에 비해 가시는 길이 너무 초라했고, 너무 빨리 잊어지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필자는 연초에 몇몇 개인발명가 발명관련 단체를 방문 또는 업무담당자를 만났다. 국고지원을 받지 못하는 관계로 운영비가 부족하여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런데도 업무 담당자는 여러 가지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이때 필자는 사업의 성공가능성 여부를 나름대로 확실하게 말씀드렸다. 부정적인 측면으로 밖에 말씀드릴 수 없음이 죄송하고 안타까웠다.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면서는 앞으로 서둘러 꼭 해야 할 일을 나중에 제안하겠다고 약속했다.

바로 그 제안을 하고자한다. 발명관련 단체들이 서둘러 해야 할 일은 세상을 떠나신 개인발명가들의 추모 사업을 하는 것이다.  어느 사이 90대와 80대 개인발명가들도 많다. 병석에 계시는 분들도 있다. 120세까지 건강하게 사시기를 기원하면서 개인발명가들, 즉 발명관련 단체 회원들이 앞장서기를 바란다. 그때 다수의 분들이 뜻을 함께 하리라 믿는다. 가칭 ‘개인발명가추모사업회’를 서둘러 설립해야 할 것이다.

왕연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장 겸임 U1대 발명특허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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