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발명의 달이고, 19일은 발명의 달이다.

발명의 날의 제정은 우리나라가 산업재산권(특허-실용신안-디자인-상표의 총칭) 출원이 세계 4위로 우뚝 서게 하는데 한 몫을 다했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발명의 날은 언제 어떻게 제정되었을까?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발명 진흥을 위한 노력이 가시화되기는 했으나 특허행정 등 발명 기반은 아직 미약하기만 했다.

이에 정부는 발명사상과 과학진흥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연중행사의 하나로 발명의 날을 제정하기로 했다.

1956년 8월 15일 열린 제2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취임사를 통해 발명의 날 제정을 약속하면서 속도가 붙었다. 즉 1957년 2월 22일 제 19차 국무회의에서 세종대왕의 측우기 반포일(1442년 5월 19일)을 발명의 날로 정했다.

우리나라 역사상 저명한 발명이나 발견의 날을 선정하기로 하면서 활자 발명의 날, 측우기 발명의 날,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발명의 날이 후보에 올랐는데, 활자는 만든 날짜와 사람이 밝혀지지 않았고, 측우기는 서양보다 200년이나 앞섰으며 만든 사람도 날짜도 분명하므로 이날을 삼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이었다.

제1회 발명의 날 기념행사는 1957년 5월 20일(19일은 일요일) 상공부, 문교부, 교통부장관을 비롯해 당시 특허국장 등 5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청 광장에서 열렸다. 이날 기념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유시(상공부장관 대독)를 통해 “좋은 발명이 많이 나도록 정부와 민간에서 많이 도와서 우리나라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 다 같이 힘써 줄 것”을 당부했다.

지방에서도 도청 소재지 단위로 기념식을 개최했으며, 전국 각급 학교단위로도 행사를 개최했다. 서울사범대학교 합창단의 발명의 날 노래 합창이 있은 후 가마니 제조기를 발명하여 기업화에 성공한 유재철 등을 비롯한 발명품 기업화 및 우량상표 보유자에 대한 표창장을 수여했다.

이같이 전국적으로 거행된 발명의 날 기념행사는 1959년 제3회 행사까지 계속됐다. 그러나 1960년에는 4·19 혁명으로, 1961년에는 5·16으로 인해 두 해를 거르고, 1962년 제6회 행사부터 1965년 제9회 행사까지는 제3회와 마찬가지로 한국발명협회 주최로 개최됐다.

1966년 제10회 행사부터 1972년 제16회 행사까지는 한국발명협회에서 명칭을 변경한 대한발명협회 주최로 개최됐는데, 1966년 제10회 행사 때는 제1회 과학기술자대회도 함께 개최됐다.     

이후 정부는 1973년 3월 30일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령 제6615호로 제정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의해 발명의 날을 상공의 날에 통합했으나 1994년 3월 발명진흥법이 제정되자 매년 5월 19일에 정부 주도로 발명진흥연차대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이후 1992년 2월 발명진흥법 개정으로 5월 19일이 ‘발명의 날’로 공식 지정되었다.

왕연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장   유원대 발명특허학과 협력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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