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청과 한국발명진흥회가 중심이 되어 초-중-고-대에서 발명교육을 시작한지도 32년이 되었다. 사람으로 치면 소년기와 청년기를 지나 장년기로 접어들었다. 1983년 신문기자에서 한국발명특허협회(현, 한국발명진흥회)로 직장을 옮겨 ‘월간 발명특허’를 제작하게 된 필자는 깜짝 놀랐다.

당시 한국발명진흥회는 창립 10주년을 맞았고, 특허청은 특허국에서 승격한지 6년을 맞이하는 해였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특허에 관한 자료는 부족하기 이를 데 없었고, 발명에 관한 자료는 아예 전무했다.

특허청과 한국발명진흥회 자료실을 샅샅이 뒤져봐도 발명에 관한 자료는 찾아볼 수가 없었고, 겨우 일본 등 발명선진국에서 발간한 도서 몇 권이 전부였다.

1983년 10월 18일은 한국발명진흥회 창립 10주년으로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그 행사의 일환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발명가의 성공사례와 기업의 특허관리 성공사례를 소개하는 도서발간을 계획했다. 그리고 그해 7월 그 업무는 필자에게 맡겨졌다. 이때 탄생한 도서가 ‘외길 집념의 승리-발명으로 성공한 사람들’이었고, 이 도서는 당시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발명교육은 이때부터 계획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발명교육의 자료가 전무하고 예산과 인력 또한 부족하다보니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4년 뒤인 1987년에야 시작될 수 있었다. 당시 필자는 초-중用과 고-대用 교재집필에 참여했고, 특허청과 한국발명진흥회의 끈질긴 노력은 발명교육의 전성시대를 여는 계기를 마련했다.

특허청과 한국발명진흥회의 발명교육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한국학교발명협회를 중심으로 학교발명교육에 박차를 가함과 동시에 한국여성발명협회를 중심으로 여성들의 발명교육에도 발 벗고 나섰다. 어디 그뿐인가 특허청 산하에 국제특허연수원을 설립한데 이어 발명교육센터를 설립하여 기업-일반인-발명가-교사 -학생 등 전 국민의 발명교육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특히 전국 교육지원청과 함께 발명교실(현, 발명교육센터)을, 전국 주요 상공회의소 등에 지식재산센터를 설립하고, 주요 도시에 지식재산도시를 지정하는 등 특허청과 한국발명진흥회의 발명교육은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주요 특수고등학교와 대학 그리고 대학원에서 정규 교육과정으로 발명교육이 자리 잡게도 하였다. 이밖에도 수없이 많으나 지면관계상 생략함이 안타깝다.

어느 덧 발명교육 1세대들은 요즘 날씨처럼 머리에 서리가 내리고, 이마에는 주름이 늘고 있다. 그래도 행복하단다. 지난해 우리나라 산업재산권(특허-실용신안-디자인-상표의 총칭) 출원이 457,960건에 이르고, 이중 여성의 출원건수가 36,734건, 학생의 출원건수가  3,524건이나 되기 때문이다.

이 보다 더 행복한 것은 전 국민이 ‘나도 발명가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쳐있는 것이란다.


왕연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장   유원대 발명특허학과 협력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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