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의 입맛을 사로잡은 김. 한때 ‘검은 종이’라며 김을 먹는 우리나라 유학생들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던 유럽과 미국사람들까지 즐겨 찾는 김.

우리민족 고유의 발명인 김은 언제 누가 어떻게 발명하였을까?
우선 그 명칭의 유래부터 살펴본다. 김은 해의(海衣) 또는 해태(海笞)라고도 부른다. 해의라는 명칭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이라는 고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책에는 광양을 비롯한 46개 고을의 토산품이라 기록되어 있다.

해태라는 명칭은 다산 정약용이 저술한 ‘경세유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산은 이 책에서 김을 광양의 최고 특산물로 꼽고 있다. 참고로 다산이 광양의 특산물로 꼽은 것은 쌀-목화-철기-소금-해태였다.

그렇다면 김은 광양에서 처음 발명되었을까? 김을 처음 채취하고 양식한 곳은 광양과 완도로 알려지고 있다. 광양에 가면 광양이 먼저라고 하고, 완도에 가면 완도가 먼저라며 나름대로의 근거를 제시한다. 그 근거는 전해오는 이야기다. 이야기를 종합하여 정리해보면 광양은 1650년경에 김을 채취했고, 완도는 1820년경 채취한 것으로 정리된다.

해의(海衣) 또는 해태(海笞)를 김이라고 부르게 된 데에는 2가지 숨은 이야기가 있다. 그중 하나는 광양의 김이 왕실에 특산품으로 진상품이 된데서 비롯되었고, 다른 하나는 태안도 김이 하동장에서 팔린 데서 비롯되고 있다.

광양 김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어느 날 임금이 광양에서 진상된 검은 종이처럼 생긴 식품을 먹고, 이 식품의 명칭이 무엇이냐고 신하들에게 물었다. 신하들 중 이 식품의 명칭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신하들은 식품의 명칭은 알 수 없으나 진상한 사람은 전라도의 김여익(1606~1660)이라고 아뢰었다. 바로 이때 임금은 김여익의 성을 따서 김이라고 부르도록 했다.

태안도 김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김 채취와 양식에 처음 성공한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는 김여익은 영암 출생으로 1636년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활동하다가 임금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1640년 고향을 떠나 광양 태안도에 숨어 살며 김을 채취하고 양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여익은 자신이 생산한 김을 하동장에서 팔았는데, 그 맛에 감탄한 사람들이 김여익의 성을 따서 김이라 불렸다. 김여익은 태안도에서 소나무와 밤나무 등을 이용한 김 양식 방법도 발명하여 널리 보급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김의 발명가는 누구일까? 김여익 외에 또 다른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경상남도 하동에 사는 노파가 섬진강에서 김이 붙은 나무토막을 발견하고 대나무를 세워서 양식했다다는 이야기와 약 360년 전에 관찰사가 지방을 순시할 때 그 수행원이 김의 양식 법을 가르쳐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왕연중(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장/유원대학교 IT융합특허학과 협력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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