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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발명이야기] 증기 압력솥
이환선 기자  |  wslee1679@dv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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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9  15: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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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왕연중 / 그림 김민재

- 압력솥의 역사는 333년
전기밥솥이 70여년의 역사를 가진데 비해 증기 압력솥의 역사는 333년이나 된다. 전기밥솥은 밥이 주식인 동양의 일부 나라에서만 필요하지만 압력솥은 그 용도가 다양하고 특히 끓는점이 높아 잘 익지 않는 음식을 조리하기가 쉬울 뿐만 아니라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열이 음식물로 전달되어 더 빨리 요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일찍 발명되었다 할 수 있다.

압력솥은 증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압력이 높아져 요리시간을 줄일 수 있고 요리 과정에서 쉽게 파괴되는 비타민이나 무기질의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고 연료도 줄일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발명가는 물리학자인 데니스 파팽. 수학자이자 발명가이기도 했던 파팽은 증기기관의 개척자이기도 했다. 1647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1693년부터 파리에서 크리스티안 하위언스와 함께 일하면서 진공을 통해 동력을 얻는 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675년 영국으로 거처를 옮겨 1676년부터 1679년까지 영국의 화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로버트 보일의 조수로 일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런던에 있는 영국 최고의 자연과학학회인 로열 소사이어티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로열 소사이어티는 자연에 관한 지식을 보급하는 런던 왕립학회로 그곳을 출입할 수 있다는 것은 파팽에게 큰 기회이자 행운이었다. 파팽은 이때부터 액체 또는 고체로부터 증발하거나 승화하여 생긴 기체, 즉 증기에 관해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1679년 압력솥을 발명하게 되었다.

- 음식물 조리의 혁신 가져와
파팽의 증기 압력솥 발명에는 보일의 힘도 컸다. 보일도 파팽도 증기기관 전문가였고, 파팽이 증기기관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보일의 영향이 컸다. 증기 압력솥의 원리를 확립하고 보일에게 자문을 구했을 때 큰 힘을 실어준 것도 보일이었다.

파팽의 압력솥 원리는 증기가 새어나가지 않게 하는 뚜껑을 만들고 찜통 내부에 압력을 주어 물의 비등점을 높이는 것으로 조리의 혁신을 가져왔다.

1680년 12월 8일 로열 소사이어티의 평의회 모임에서 증기 압력솥에 대해 설명했고, 참석자들은 연구보고서 발행을 권장했다. 당시에는 연구보고서 발행이 요즘 특허권과 같은 효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증기 압력솥의 원리와 도면 그리고 조리방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파팽은 직접 조리를 하며 증기 압력솥을 홍보하기도 했다. 이 공로로 파팽은 후일 왕립학회의 임시 실험 관리자로 임명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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