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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7개월 몸으로 금메달 목에 건 사격 김윤미 선수

지난 아시안게임 기간 동안 광저우에서 날아온 소식들은 바쁘고 지친 일상을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큰절로 가슴을 뭉클하게 한 장미란 선수와 아버지, 4차원 소녀 정다래 선수, 끝까지 다친 선수를 배려한 왕기춘 선수의 금보다 값진 은메달…. 모든 선수들의 땀과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진 아시안게임. 그중 유난히 가슴을 뜨겁게 만든 선수가 있다. 임신 7개월의 몸으로 금메달 두 개를 거머쥔 사격의 김윤미 선수.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아줌마라서 혼자가 아닌 둘이 얻은 성과에 백배 감동했는지도 몰랐다.

▲ 사격 금메달리스트 김윤미선수
‘인생 뭐 있냐고 인생 뭐 있다고 저마다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기죽지 않아 굴하지 않아 쿨하잖아. Right now, Right now….’

김윤미 선수를 만나기 위해 이 노래만 몇 번을 들었는지 최소한 경로당 버전으로 부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아시안게임을 끝내고 돌아와 쉬고 있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김윤미 선수는 시합을 위해 창원에 내려가 있었다. 통화 대신 컬러링 ‘Right now’만 몇 번을 반복해 듣고는 그를 만나기 힘들겠다 포기하려는 순간, ‘한번만 더’ 전화를 걸었는데 저편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찌나 예쁘고 살랑살랑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지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임산부를 괴롭히는 게 아닌가 싶어 미안했지만, 휴식을 위해 신혼집으로 이동한다는 김윤미 선수를 만나기 위해 청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뱃속의 오복이가 용기 줬어요”
좋은 성적을 내고 돌아온 우리 선수들의 귀국 장면은 가슴 찡한 감동이었다. 특히 남편의 품에 안겨 와락 눈물을 쏟는 김윤미 선수를 보고 많은 분들이 따라 울었으리라. 그 눈물은 여자라서, 엄마라서 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임신 7개월이면 육아휴직에 들어가거나 하던 일도 쉬엄쉬엄 하는 게 보통 사람들의 생각일 텐데 역시 금메달리스트는 달랐다. 김윤미 선수의 미니홈피 메인에 띄워진 ‘죽을 만큼 노력할 수 없다면 아무것도 바라지 마라’는 문구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사격은 오랜 시간 서 있어야 하는 운동이고,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힘든 운동이라는 게 김 선수의 설명. 임신 3개월 때 대표팀에 선발돼 합숙소 생활을 시작했다.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걱정해주셨어요. 하지만 임신했다고 포기하기는 싫었어요. 엄마보다는 선수로서 욕심이 앞섰던 것 같아요. 그 점에서 아이에게 많이 미안해요. 하지만 의사 선생님께서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호흡과 명상이 오히려 태아에게 좋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 말에 용기를 냈죠.”

김 선수는 주변 선수들에게 폐가 될까 많이 조심스러웠다. 실적에 대한 부담도 컸다. 자신 때문에 다른 선수가 메달을 딸 수 있는 기회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선수 자격에 임산부를 제한하는 규정은 없다. 다른 국내외 대회에서도 임신한 선수가 출전하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다. 하지만 김 선수처럼 임신 7개월에 2관왕 수상 기록을 낸 경우는 처음이다. 남편이 지어준 태명 ‘오복이’가 정말 복을 가져온 것이다.

특히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중국 언론은 카메라를 종종 김 선수의 배에 비추며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자국 선수만큼이나 관심과 응원을 보내준 것이 고맙고도 궁금했다.

“중국에서 관심을 가져준 쪽은 아내들보다는 남편들이었던 것 같아요. 중국에서는 여자들이 임신하면 정말 꼼짝을 안 한답니다. 한 중국인 기자의 아내도 임신 7개월인데, 아내가 임신 후로는 정말 꼼짝을 안 하더랍니다. 보다 못한 기자가 제 경기 장면을 보여줬더니 아내가 그때부터 조금씩 움직이더래요.”

저출산이 세계적인 추세다 보니 임산부들이 조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몸을 쓰지 않으면 오히려 산모와 아기의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직장에서도 임산부라고 해서 너무 몸을 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김 선수의 생각이다. 오히려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회사에서도 기혼자나 임산부를 기피할 이유가 없지 않겠냐고 말한다.

인내와 노력 위에 쌓은 금메달
‘임산부 선수’라는 것 외에 김윤미 선수의 메달 소식이 더욱 주목을 끈 것은 유력한 금메달 후보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사격이 효자 종목으로 떠오른 데는 김 선수의 활약이 단단히 한몫을 했다. 김 선수는 제천 의림여중 시절, 처음 총을 잡았다. 그 후 2007년 국가대표로 발탁까지 10년 세월이 걸렸을 만큼 선수로서는 늦깎이에 속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했지만 본선 21위에 그치는 실적으로 주목 받지 못 했다. 피나는 노력으로 비교적 좋은 성적을 보유했지만 유독 국제 대회에서는 지나치게 긴장한 나머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모든 대회가 그렇듯 메달을 딴 선수에게는 좋지만, 노메달인 선수에 대한 냉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예요. 메달은 못 땄지만 열심히 노력한 부분만큼은 인정하고 격려해주면 좋겠는데, 현실은 실적만 원하더라고요.”

유독 금메달리스트에게 쏟아지는 찬사가 때로는 서럽기도 했다. 언젠가 은메달을 따고 서럽게 우는 선수를 보고 외국 기자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 적이 있었다. ‘일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이란 개그는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김윤미 선수에게도 힘든 시절이 있었다. 중학생 시절 좋아하는 선배가 사격을 하는 모습을 보고 반해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자신이 원해서 시작한 선수 생활이지만 사춘기에는 가출을 감행했을 만큼 방황도 했다. 잘 풀리지 않는 경기 실적에 남모르게 눈물도 훔쳤을 터.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더라고요. 사격 외에 다른 할 줄 아는 게 있었더라면 아마 사격을 그만뒀을지도 몰라요. 다른 재주가 없는 게 오히려 잘된 거죠?”

 
김 선수는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 소녀였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작은 일에 울고 웃는 평범한 소녀. 하지만 선수 생활을 하고부터는 힘들고 생각이 많아지면 그냥 자버린다. 자고 나면 생각이 정리되고 점점 단순화되는 자신을 느낀다고. 고도로 집중해야 하는 사격의 묘미가 거기 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선수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서른 살까지만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금메달을 따고 나니 욕심이 생기네요. 미니홈피에 누리꾼들이 오복이 동생 가져서 런던올림픽에 도전해보라고 응원해주시네요. 하하.”

“진짜 아내가 되고 싶어요”
김윤미 선수는 작년 12월 결혼한 새내기부부다. 곧 결혼 1주년이 다가온다. 하지만 남편과 한 공간에서 생활한 시간은 많지 않다. 합숙 훈련을 해야 하는 선수 생활이 계속되다 보니 지금도 연애하는 기분이라고. 하지만 남편에게는 아내로서 많은 부분이 미안하다.

“남편한테 해준 게 없어서 미안해요. 맛있는 반찬도 해주고 싶고, 보통 주부들이 하는 일들을 해주고 싶어요. 선수 생활이 끝나면 ‘진짜 아내’가 되고 싶어요.”

김 선수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은 김 선수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선배 중에는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선수 생활을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3월 출산을 앞둔 김 선수는 자신을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출산하면 아기를 시부모님이 돌봐주시기로 했기 때문. 김 선수의 남편은 유난히 아기 욕심이 많다. 아이가 11명은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럼 매년 한 명씩 출산해야 하잖아요. 그건 너무 힘들 것 같고요. 4명 정도는 계획하고 있어요.”

세상에 이런 애국지사가 있다니! 요즘 젊은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사고방식이 정말 생산적(?)이다. 아이도 사격 선수가 되면 어떻겠느냐고 묻자 김 선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이는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어요. 사격은 비인기 종목일 뿐 아니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고, 힘이 많이 드는 운동이라 권하고 싶지 않아요.”

그의 말에 비인기 종목의 설움, 노메달의 설움을 겪을지도 모를 다른 선수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명언 제조기 김제동이 했다는 말이 오버랩 됐다.

"메달의 색깔은 다르지만 그들이 흘린 땀의 색깔은 모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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