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떠난 출사 여행


카메라를 개비하겠다고 벼른 지 1년, 드디어 새 카메라를 장만했다. 인화해봐야 알겠지만, 역시 새거라 때깔도 다르고, 셔터를 누르는 느낌도 경쾌하다. 나도 나지만, 원님 덕에 나발 분다고. 아이들이 때 아닌 횡재를 했다. 전에 쓰던 카메라는 큰딸에게, 큰딸이 쓰던 똑딱이는 작은딸에게 차례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가족 중 아마추어 사진작가가 셋이나 나왔는데 이대로 있을쏘냐. 온 가족 출사 여행을 떠났다.

 

애들에게 카메라를 넘겨줬다고 하니, 과하지 않느냐고 말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중고로 팔아봤자 몇 푼 못 받을 것 같고, 괜히 헐값에 처분하느니 차라리 애들이 잘 사용하면 그게 더 가치 있는 물건이 될 것 같은 생각에 눈 질끈 감았다. 때 아닌 카메라 선물에 횡재한 건 아이들. 완전히 들떠 자기들도 블로그를 만들겠다고 각오가 야무지다. 대뜸 컴퓨터랑 가까워질 궁리부터 하는 게 마땅치 않았지만, 나름의 효과도 있을 것 같아 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결과야 어찌될지 모르지만, 여행에 임하는 자세 하나는 확실히 달라진 게 보인다. 엄마 아빠가 펴주는 멍석에 얌전히 올라앉는 수동적 여행이 아니라, 사진 찍는 재미에 빠져 누구보다 능동적인 여행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초등학생에게 카메라, 분에 넘치는 선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도 귀한 걸 알아서일까. 덜렁댈 것 같던 아이들이 카메라만큼은 신주단지 모시듯 꼼꼼히 챙긴다. 믿고 값비싼 물건을 선뜻 내준 엄마 마음을 아는 모양이다.  

낙동강 상류 농촌
강원도 태백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은 예천, 문경, 상주를 돌아 부산 을숙도를 거쳐 바다로 흘러간다. 남한에서 제일 긴 물줄기라는 낙동강. 그중에서도 상주 경천대(敬天臺)에서 바라보는 강의 풍경은 낙동강 1천300리 물길에서도 으뜸이다. 사실 새 카메라를 구입한 뒤 첫 출사 여행지로 경천대를 정한 이유는 요전에 본 낙동강 풍경 사진에 반했기 때문이다. 사진을 통해 바라본 낙동강이 그렇게 평화로워 보일 수 없었다. 넓은 모래밭, 기암절벽을 끼고 굽이쳐 흐르는 강물, 주변으로 난 울창한 노송 숲이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강의 이미지 그대로다.

멋진 한 컷을 위해 힘든 줄도 모르고 경천대 전망대까지 올라갔다. 전망대로 가는 길 양옆에는 이곳 직원들이 직접 쌓아 올렸다는 돌담이 운치 있다. 이곳 주민들 말이, 경천대는 특히 설경이 아름다워 겨울이면 카메라를 들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돌담 위로 소복이 쌓인 눈, 낙동강 위에 살포시 얹힌 눈이 아름다운 곳이라는데. 아뿔싸. 전망대 꼭대기까지 오르니 한창 부푼 가슴이 한순간에 아쉬움으로 변한다.

눈앞에 펼쳐진 낙동강은 공사 중이었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인 낙동강. 그 현장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포클레인을 살짝 빼고 아쉬운 대로 찰칵. 워낙 민감한 정치 사안이므로, 더 이상 언급은 패스하기로.

상주, 자전거 탄 풍경
상주 사람에게 상주에서 제일 유명한 게 뭐냐고 물어보면, 아마도 곶감과 자전거라 말할 것이다. 과연 거리마다 눈에 띄는 것이 감나무와 자전거 조형물이다. 지형상 평탄한 곳에 시가지가 형성도어 자전거를 타기 좋은 환경이라고. 때문에 상주에 가면 꼭 들러볼 곳 중 하나가 바로 자전거박물관이다. 

 

자전거박물관은 자전거 도시의 명성에 걸맞은 공간이다. 최초의 자전거부터 현대의 자전거, 이색 자전거 등 자전거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고, 나무 바퀴 자전거, 바퀴의 크기와 수도 제각각인 자전거 등 은근히 볼거리가 많다. 자전거에 취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지루한 줄 모르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명소다.

전시실을 돌고 나면 직접 자전거를 빌려 타고 인근을 한 바퀴 돌아볼 수도 있다. 성인용, 아동용, 2인승 등 다양한 자전거 중 마음에 드는 종류로 골라 탈 수 있고, 대여료도 무료다.

우리 남편은 앞바퀴가 커다란 옛날 스타일 자전거를, 아이들은 자기들 수준에 딱 맞는 자전거를 빌려 탔다. 이제 그만 가자고 재촉해도 몇 바퀴를 더 돌았다. 추운 줄도 모르고.

상주에는 곶감이 익어가네

 
상주를 흔히 삼백(三白)의 고장이라 부른다. 쌀, 누에, 곶감 3가지 하얀 특산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이중 뭐니뭐니해도 상주의 대표 특산물은 곶감이다. 전국 생산량의 60퍼센트가 이곳에서 나올 정도다. 가는 곳마다 감나무가 보이고, 시내 길거리에도 감나무마다 빨간 감이 주렁주렁 달렸다. 감은 흔히 납작한 반시, 종 모양의 큼직한 대봉시, 둥시가 있는데, 이중 둥시는 크기와 모양이 반시와 대봉시의 중간쯤이라 생각하면 된다. 맛이 떫지만, 껍질 깎아 말리면 단맛이 더해지고 하얀 분이 생겨 최상의 곶감이 된다.

상주의 곶감 농가들은 2층짜리 곶감 건조 창고를 만들어 바람이 잘 통하는 2층에 곶감을 줄줄이 걸어 말리는데, 주황빛 고운 곶감이 줄줄이 매달린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농촌은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날씨에 매우 민감하다. 우리가 들른 한 농가에서는 올해 곶감 작황이 예년에 훨씬 못 미친다고 속상해했다.

하룻밤 새 기온이 뚝 떨어져, 감을 따기도 전에 얼었다고 한다. 해서 곶감 수확량도 작년에 못 미치고, 곶감도 까맣게 말라 최상품으로 팔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먹어보니 곶감은 곶감. 호랑이도 울고 갈 만큼 달콤한 그 맛이 두고두고 생각난다. 

상주에 가면 갈비탕을 먹어야
남들은 모르는 정보를 나 혼자 알 때의 기분이란. 아마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하나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며 불고 싶은 마음, 다른 하나는 아무한테도 가르쳐주지 않고 나 혼자만 꽁꽁 숨겨두고 싶은 마음. 상주에서 맛본 갈비탕은 여행기를 위한 오지랖만 아니라면, 더 이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상주 토박이에게 상주 맛집을 한 곳 알려달라고 했더니, 상주축협에서 운영하는 명실상감 한우 홍보 테마타운을 알려준다. 꼭 11시 반 전에 가서 줄을 서야 한다는 신신당부와 함께. 미리 가서 줄 서라는 당부를 대충 흘려들었다면 갈비탕 국물 맛도 못 볼 뻔했다.

 
넉넉잡아 간다고 30분이나 일찍 갔는데도, 문 앞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11시 30분이 되자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와르르 식당 안으로 밀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자리를 잡지 못한 손님은 대기표를 받아든다.

식당 오픈 시간인 11시 30분에 왔어도 자리가 없어 대기표를 받아 든 손님이 몇십 명이다. 잠시 후 대단한 갈비탕 등장. 유치하지만 들어 있는 고깃덩이부터 세어봤다. 실한 갈비가 무려 다섯 덩이. 해서 가격 은 8천 원. 고기만으로 보면 그 비싼 한우가 왕갈비 1인분어치는 족히 들어간 것 같은데, 가격이 정말 싸다.

 
홍보 차원에서 평일은 하루에 170그릇, 주말엔 200그릇만 한정 판매한다고 하니, 이렇게 줄지어 갈비탕을 먹는 상황이 백번 이해가 간다. 어중간한 고기 한두 덩이가 고작인 일반 갈비탕과는 비교하지 마시라.

갈비를 한 대 잡고 뜯는 순간 일찍 와서 줄 선 보람, 여기에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우리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을 제치고 갈비탕을 손에 넣었다는 유치한 우월감이 더해져 맛을 배가시키니, 참 희한한 경험이다.

‘상주에 갈 일이 있으면 갈비탕을 먹어라’가 아니라, 이제는 갈비탕 먹으러 상주 가게 생겼다. 

미즈내일 강현정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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