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에 녹색 생명의 씨앗을 뿌리다

출산 중 산모 사망률 세계 최고, 어린이 네명 중 한 명이 영양실조로 사망. 오랜 전쟁과 빈곤에 시달리는 아프가니스탄의 암울한 현실을 나타내는 통계 수치들이다.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이곳에서 녹색 나눔 혁명을 일으키는 한국인이 있어 화제다. ‘콩 전도사’로 통하는 재미 동포 권순영 박사가 그 주인공. 2003년부터 7년간 폐허가 된 아프가니스탄에 콩을 심도록 하는 ‘희망의 콩 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단백질 공급원인 콩을 섭취하도록 해 영양 결핍으로 죽어가는 산모와 아이들의 수를 줄이겠다는 것. 세계적으로 유명한 식품 회사인 네슬레 임원직을 박차고, 생명의 씨앗을 건네는 콩 전도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권순영 박사의 따뜻한 나눔 이야기.

아프간에서 만난 참담한 현실, 콩 심기 운동에 나서다

 ▲16세 어머니와 영양실조에 걸린 아기
“처음 아프가니스탄에 갔을 때 큰 충격을 받았죠. 한 병동에서 영양실조에 걸린 아기를 돌보는 열여섯 살짜리 소녀에게 ‘이 아이 엄마는 어디에 있니’라고 물었더니, 놀랍게도 자기가 엄마래요. 그 아이도 출산 시 죽을 고비를 넘겼더라고요. 15~16세 소녀들이 미처 인생을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다니, 마음이 아팠죠. 게다가 운 좋게 살아남은 아기들도 다섯 살이 되기 전에 네 명 중 한 명이 영양실조로 사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우연히 방문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난 가슴 아픈 현실. 권순영(62) 박사는 고통 받는 여성과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식품영양학자라는 본인의 특기를 살려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다방면으로 모색하다 발견한 것이 바로 콩이다.

“영양실조의 주요 원인은 단백질 결핍입니다. 단백질 공급원으로는 크게 네 가지(육류, 우유,달걀, 콩)가 있는데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한 것이 식물성단백질 공급원인 콩이었죠. 콩 씨앗 1톤(약 300만 원)으로 콩 40톤 정도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이는 1만여 가구(1가구 6인 가족 기준)가 3개월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죠.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약 90퍼센트가 농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작정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권순영 박사. 안면도 없는 그에게 처음부터 호의적이지 않는 건 당연했다. 권 박사에게 돌아온 건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뿐이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콩을 심으라니 수긍하기 힘들 수밖에. 아프가니스탄은 세계 최대 아편 생산국이라는 오명을 얻을 정도로 양귀비 농사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권순영 박사의 끊임없는 설득과 열정에 아프가니스탄 정부도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에게 끊임없이 구호물자를 받는 형식이 아닌, 콩 농사를 지어 스스로 재건할 수 있다는 점도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한몫했다. 마침내 2004년 콩이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자랄 수 있는 지 확인하기 위해 시험 재배에 들어갔다. 

“2004년 발크 주에서 콩 시험 재배가 성공했습니다. 이듬해에는 아프가니스탄 농축산부에서 먼저 함께 콩 재배를 하자고 제안을 했어요. 총 34개 주 가운데 12개 주가 콩 시험 재배에 참여, 다행히 작황이 성공적이었죠. 성공 사례가 알려지자 여성복지부, 보건사회부, 농축산부 등 여러 정부 부처들이 적극적으로 우호의 손길을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아프가니스탄 전 지역에서 콩을 재배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죠.”

 

“잘나가는 임원? 죽어가는 생명을 생각해보세요”

권순영 박사는 2003년 비영리단체인 NEI를 설립한 이래 아프가니스탄에서 콩 씨앗 무료 지원, 콩 농사 기술 교육, 콩 음식 문화 전파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카불 등지의 난민수용소와 가난한 지역의 초등학생들에게 두유와 콩 난(아프가니스탄에서 먹는 빵의 일종) 급식 사업을 한다. 발크, 카불, 바닥샨 등에 두유 생산 시설도 세웠다. 농가 소득 보존을 통한 콩 재배 활성화를 위해 콩 수확물 구입도 보장해준다.

하지만 이때 반드시 고수하는 원칙이 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콩 씨앗은 한 번만 지원한다는 것. 이후에는 농사를 지은 뒤 나온 콩 씨앗으로 재배를 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요즘에야 후원자들도 많아져 그나마 숨통이 트였지만, 처음에는 대부분 권 박사 자비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고. 휴가 기간인 5주 역시 모두 아프가니스탄에서 희망의 콩 심기 운동을 벌이는 데 썼다. 권순영 박사는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모두 힘들었지만, 마음만큼은 정말 풍요로웠다고 회고한다.

“제 딴에는 할 수 있는 걸 다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어요. 20여 년간 일해온 네슬레를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했죠. 가족 등 주위의 만류가 심했지만, 결단을 내리기는 의외로 쉬웠어요. 아내는 ‘한 개인이 어떻게 국가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제발 정신 좀 차려라’고 말한 적도 있죠. 하지만 저는 인생에는 경제적인 가치로만 따질 수 없는 ‘무엇’이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당장 굶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일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요? 저에겐 아프가니스탄 현장에서 만난 산모와 아이들을 외면하는 게 더 힘들었어요.”

안전상의 문제 때문에라도 아프가니스탄 행을 극구 만류하던 가족도 차츰 변해갔다. 행여 테러를 당할까 늘 마음 졸이던 아내도 이젠 든든한 지원자 역할을 자처한다고. 답답한 마음에 남편을 따라나선 아프가니스탄에서 산모와 아이들의 현실을 본 뒤에는 180도 달라졌단다. 권순영 박사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건 물론, 자원봉사자로 현장에서 뛰고 있다.

나눌수록 커지는 나눔의 마술

권순영 박사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다고 말했다. 올해 아프가니스탄의 콩 생산량은 2천 톤. 2017년까지 연간 30만 톤을 생산하는 게 목표다. 이렇게 되면 3천만 명이 넘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영양실조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또한 더 많은 여성과 어린이들이 두유 급식을 받을 수 있도록 보다 많은 지역에 두유 생산 시설 등 콩 가공 공장을 설립할 계획이다. 주 3회, 3개월간 두유 급식을 실시한 결과 어린이와 여성들의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권 박사는 힘주어 말했다.

“콩을 본 적도 없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대상으로 희망의 콩 심기 운동을 벌인다고 했을 때 무모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삶에서 작은 선을 행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 아닐까요? 힘들지만 이 일을 하면서 세상이 참 아름답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예전에는 남을 위해 주머니에서 100달러 나가는 게 힘들었거든요. 타인을 위해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의 것을 내놓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세상이 참 따듯하다고 느낍니다.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돕겠다고 나섰지만, 오히려 제가 더 힘을 받을 때가 많다니까요.”

콩 전도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권순영 박사. 그는 나눌수록 커지는 나눔의 마술을 체득한 지 오래다. 앞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행복을 느끼는 게 그의 바람이다.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평온과 안녕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타인의 고통과 상처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나눔의 시작이다.  
 

미즈내일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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