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손으로 어린 천사의 얼굴을 빚어내다

 

 

“로봇 손이 아무리 정교하더라도 의사 손이 수술 부위를 직접 만지며 느끼는 섬세함을 따라올 수 없다”고 한 사람은 국내에 처음 로봇 수술을 도입한 의대 교수다. 로댕의 조각품 ‘신의 손’을 떠올린다. 대지를 들고 있는 커다란 손 안에 아담과 하와가 조각되었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지만 로댕의 손이 다시 신을 창조했다는 찬사를 듣는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의 손을 ‘신의 손’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예술 그 이상의 외경과 엄숙함이 따르기 때문이리라. 선천성 안면 기형 아이들에게 서울대 소아성형외과 김석화 교수의 손은 미상불 신의 손이다.

가운을 입지 않는 의사

서울대 성형외과 연구실의 ‘더스틴 호프만’을 한눈에 알아봤다.

약간 처진 눈에 웃어서 생긴 보기 좋은 주름, 온화한 표정이 돋보이는 김석화(55) 교수의 별명이 딱 어울린다. 어린이들에게 온화하기로 정평이 난 김 교수는 진료실에서도 평상복 차림이다. 선천성 기형 아이들은 병원을 제 집처럼 드나들어야 하고, 병원에서 겪은 아픈 기억에 흰 가운만 봐도 질색을 하기 때문이다. 그 작은 배려에서 기형으로 태어난 아이와 그 부모들의 고통을 따뜻하게 감싸주실 분이 틀림없다는 확신이 든다.

연구실에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눈에 띈다. 추억이 담긴 액자 몇 개와 후배나 환자들이 보낸 감사의 카드, 수술한 아이들이 보내온 깨알 같은 편지와 성장 사진, 또 하나는  벽에 가장 크게 자리잡은 김수용 감독의 사진이다. <갯마을> <무정> <봄봄>등 문예영화를 비롯해 100여 편을 연출한 김수용 감독은 영화계의 거목이자 산증인으로 김 교수의 부친이다.

“아버지 덕분에 아역 배우로 출연도 했고 집 안엔 영화인들이 늘 드나들었지만, 저에게 예능의 끼는 없었던 것 같아요”라며 웃는 그를 키운 건 교사였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밥상머리 교육이다.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에게도 예의를 지키게  했고, 집에 데려오는 친구들을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그래서일까. 환자와 보호자를 대하는 김 교수의 얼굴에는 온기와 미소가 배어 있다. 주위에서는 김 교수가 선천적 안면 기형 치료를 천직으로 삼은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자들의 눈과 코를 예쁘게 만드는 것이 성형외과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던 시절, 1976년 본과 실습실에서 두개골 안면 기형 수술을 지켜보다 그는 운명처럼 그 길을 택했다. 1990년 뉴욕대학에서 얼굴뼈를 잘라 뼈를 자라게 함으로써 안면 기형을 바로잡는 수술법을 공부한 후 이를 국내에 최초로 도입했고, 안면 기형 수술의 세계적인 권위자가 되었다.

동그란 입과 예쁜 미소를 빚어줄게

오늘도 성형 열풍으로 뜨거운 대한민국. 눈을 더 크게, 코를 좀더 오똑하게, 턱을 갸름하게 만들기 위해 망설임 없이 칼을 댄다. 하지만 그들을 진정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더 예뻐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수술대에 오르는 아이들이 있다. 제대로 숨을 쉬기 위해, 말하기 위해, 듣기 위해 수술을 해야 하는 아이들…. 그들이 바라는 건 ‘보통 사람’ 같은 얼굴이다.

열 달 동안 배속에 품고 있던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손가락과 발가락의 개수를 세어보기도 전에 보통 아이들과는 조금 다르게 생긴 얼굴이 눈에 띈다.

흔히 ‘언청이’라고 불리던 구순열, 입천장이 갈라진 구개열, 두 가지가 함께 있는 구순구개열, 귓불만 있고 다른 부분은 거의 없는 소이증, 얼굴뼈나 머리뼈가 정상적으로 자라지 않는 두개 안면 기형 아이들이다. 안면 기형의 궁금증을 물어봤다.

이런 기형은 왜 생기며 어떻게 예방할 수 있나.

임신 7주까지 태아의 얼굴은 여러 덩이로 나누어졌다가 8~12주에 서서히 붙으면서 얼굴이 형성되는데, 이때 여러 가지 요인으로 정상적으로 붙지 않으면 안면 기형이 된다. 원인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불균형적 영양 결핍, 유전성, 임신 초기의 약물 남용, 음주나 흡연, 스트레스, 내분비 이상 등이 원인 인자로 제시되고 있다.

우리가 어릴 때는 학교나 이웃에서 언청이 친구들을 종종 보았다. 그런데 요즘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데 수술 덕분인가?

1996년 국내 조사에 따르면 550명 중 한 명꼴로 발생하고, 연간 1천200여 명이 태어난다. 요즘 환자가 줄고 있기는 하지만 환자가 없는 것이 아니라 엄마 배 속에서 죽기 때문이다. 3D 입체 초음파가 발전함에 따라 기형 여부를 쉽게 알 수 있는 구개열과 구순구개열 환자는 급격히 줄어든 반면, 입천장이 갈라진 구순열과 미세 구개열 환자는 별로 줄지 않았다.

잔인한 과학의 아이러니다. 태내에서 발견된 기형으로 태어나지 못하는 아이들… 이 세상에 태어난 구개구순열 아기들이 더욱 고맙고 소중해지는 순간이다. 그런데 구순구개열의 치료는 단순히 갈라진 입술만 꿰매서 되는 것이 아니란다. 입술은 한 차례 수술로 꿰맬 수 있으나, 아이가 성장하면서 잇몸과 치아, 코 등 입술 인접 부위가 변형되기 때문에 성장이 끝날 때까지 치과와 성형외과의 지속적인 상담과 체계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선천적으로 입술이나 입천장이 닫히지 않는 아이들, 갈라진 입술 근육을 이어줄 때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예쁜 입술과 미소를 만들기 어렵다. 김석화 교수의 섬세하고도 치밀한 손길이 그 아이들에게 동그란 입을 만들어준다. 그가 1996년에 후원인들과  만들어 무료 수술 캠페인을 하는 모임도 ‘동그라미회’다.

김민기, 이해인, 임권택, 노영심, 윤석화, 이문세, 배금택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동그라미회를 통해 매년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안면 기형 환자들을 무료 수술로 돕고 있다. 소외나 놀림의 대상이 되기 쉬워 폐쇄적일 수밖에 없는 안면 기형 환자와 보호자가 의료진과 함께 마음을 열고 즐길 수 있도록 매년  휘닉스파크의 협조로 동그라미캠프도 열고 있다. 이 캠프에서 상담과 조언을 하고 어린이 사진교실, 과학교실 등을 통해 아이들의 소질과 정서를 키워준다.

또 흉터나 화상, 안면 수술 받은 아이들을 모아 ‘밝은 얼굴 어린이 사생대회’를 열어 재주 있는 의료진이 심사를 맡아 시상하고, 그림들을 성형외과학회의 달력으로 만들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위축된 아이들이 활발해지고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김 교수가 가장 행복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행복은 전해 듣는 이에게도 금세 전염이 된다.

인간의 한계에 맞서는 위대한 손

“일본의 소비자는 수술 안 한 듯한 수술을 원하는데, 한국인들은 수술 전후를 비교하고 다시 태어난 듯 드라마틱한 수술을 원합니다. 이것은 국민성과도 연관되지요.”

의사의 만족보다는 환자가 만족하는 수술이 최우선이라고 여기기에 그는 환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래서 유헬스(유비쿼터스와 헬스케어가 합쳐진 약어로,  IT를 활용해 언제 어디서 누구나 안전하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건강관리와 의료 서비스의 통칭)에 사명감을 갖고 있다.

“옛날에는 의사들이 집으로 왕진을 다녔지요. 왕진이 IT 시대에는 원격의료로 전환된 것이죠. 지금은 하버드 의대 학생 반 이상이 전문의로 가지 않고 GP(가정의사)를 택합니다. 환자가 아플 때 의사가 방문을 요구하는 시대로 돌아온 거죠. 환자가 환자답게 대접 받을 수 있는 것이 유헬스의 역할입니다.”

이는 고소득층의 요구에도 부응하지만 김 교수는 장애인이나 도서·산간벽지의 환자, 재소자 등 취약 환자에게 서비스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노력하고 있다.

의사라는 직업은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 앞에서도 냉정하게 돌아서는 야속한 존재만은 아니었다. 환자의 가슴 아픈 사연에 귀 기울이고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밤잠 안 자고 고민하며 끊임없는 노력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사람, 인간의 한계와 싸우고 싸우다 ‘신의 손’을 빌려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고독하나 아름다운 존재임을 알았다. 

미즈내일 박미경 리포터 rose45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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