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새해 소망을 디자인하다.

 

 

새해가 밝았다. 한 학년씩 올라가는 아이들, 한 살씩 나이 드는 부부. 어제 같은 오늘로 새해를 맞이하기 싫어,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 경주 여행을 계획했다. 중학생 때 수학여행 이후 처음. 이번엔 온 가족이 수학여행을 떠난 셈이다. 여행을 마치고 올라오는 길. 다음엔 경주 남산 트레킹을 해봐야지 궁리하는 걸 보니, 경주! 앞으로 몇 번은 더 갈 것 같다.

추억은 기차를 타고~

 
교과과정이 개편되어 올해는 초등학교 5학년 사회에서 역사를 다룬다고 한다. 그래선지 5학년을 앞둔 우리 딸 친구들 가정에선 겨울방학을 맞아 요즘 강화도로, 경주로 여행하느라 바쁘다. 우리 가족 역시 새해맞이 여행을 계획하면서 굳이 경주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번엔 자가용 대신 기차를, 콘도 대신 호텔을 예약했다. 명분은 거창하게 에코 투어를 표방했지만, 경주의 특성상 쉬는 여행이 아니라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하는 여행인 만큼 밥 걱정, 운전 걱정은 잠시 내려놓자는 계산이었다.

우리 애들에게 기차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리포터 어린 시절에는 방학이면 기차 타고 버스 타고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다닌 추억이 많은데, 요즘은 어딜 가도 자가용이다. 위험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어디를 가든 엄마가 차로 데려다주고, 공부하느라 힘들다는 핑계로 웬만한 일은 엄마가 다 알아서 해주다 보니 우리 때보다 영어는 더 잘할지 몰라도 요즘 애들, 할 줄 아는 게 너무 없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기차 안에서 가족이 오순도순 간식 먹는 재미를 우리 애들은 모르고 사는구나 생각하니 그렇 게 안타까울 수가 없었다. 기차로 여행하면 자가용보다 귀찮은 면이 많다. 운전을 안 하는 건 편할지 몰라도, 역까지 가야 하는 번거로움에 비용도 은근히 많이 든다.

여행지에 내려서 여기저기 다니려면 그 불편함도 만만찮다. 하지만 기차 여행이 주는 그 달콤한 추억을 그 무엇에 비교할까.

기차표를 예약하고, 우리 가족은 그야말로 수학여행을 앞둔 학생처럼 들떠 있었다. 간식 보따리를 들고 기차에 오를 때의 그 기분이란. 서울에서 신경주역까지 KTX로 두 시간 남짓. 자동차로 움직였으면 차 안에서 유행가나 들었을 테지만, 기차에 무릎을 마주 대고 앉아 두 시간을 오롯이 대화할 수 있어 좋았다. 새해에 하고 싶은 일, 갖고 싶은 것, 친해지고 싶은 친구, 계획하는 일을 돌아가면서 말했다. 마음에 담고 있을 땐 막연한 꿈에 불과한 일도 입으로 내뱉는 순간 계획이 되는 법. 아이들과 마주앉아 나눈 대화는 곧 우리 가족의 새해 소망이 되었다.

뚜벅이로 경주 구경~

 
경주 여행의 이동 반경은 첨성대, 대릉원, 계림 등이 모여 있는 황남동 일대와 불국사,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 일대, 숙소가 모여 있는 보문단지, 그 외 문무대왕릉이 있는 감포와 최근 각광 받는 양동마을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다 둘러보려면 시간이 꽤 많이 걸리기 때문에, 초보 경주행이니 만큼 한국사 공부에 도움이 될 만한 유적지 위주로 돌아보기로 했다. 우리 가족의 주요 이동 경로는 숙소가 있는 보문단지에서 나와 황남동 일대를 먼저 둘러보고,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까지 가는 코스다. 모든 이동 수단은 시내버스. 경주는 최근 시내버스를 이용한 관광 인프라를 잘 조성해 유적지까지 다니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황남동 일대  보문단지에서 10번, 11번 시내버스를 타고 황남동에서 내리면 걸어 다닐 만한 거리에 첨성대와 오릉, 대릉원, 경주박물관, 계림 등이 있다. 그중 가장 먼저 눈에 띈 게 첨성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조금 걸어가니 너른 들판 한가운데서 불쑥 만나 놀라웠다. 아이들은 첨성대 규모가 생각했던 것보다 크지 않아, 과연 저기서 어떻게 천체를 관측했을지 의아하다는 반응. 이 일대는 신라 왕경의 중심부로 첨성대뿐만 아니라 월성, 안압지, 계림 등 중요한 사적이 많고, 내물왕릉을 비롯해 신라 고분 수십 기가 완전한 형태로 밀집해 있다. 학자들은 봉토만 없어졌을 뿐, 이 일대 지하에는 많은 고분이 더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대학 때 경주에서 온 친구 말이, 경주 사람들은 어지간해서는 공사를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땅만 파면 뭔가가 자꾸 나오기 때문이라고. 아닌 게 아니라, 첨성대 앞 벌판을 걷다가 큰애가 땅바닥에서 하얀 도자기 조각을 주웠다.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혹시 이것도 신라시대 유물 아닐까 하며 고개를 갸웃한다. 천년 고도에서 정체 불명의 도자기 조각을 주운 아이는 그 사실이 얼마나 신기했을까. 마치 고고학자라도 된 듯, 새삼 역사에 관심을 기울인다. 경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희한한 경험이 아닐까. 한걸음에 걸어서 계림, 오릉 등을 돌아볼 수 있으니 놓치지 말자. 경주는 밤에 더 아름다워진다. 평지라 걷기 힘들지도 않고, 야경이 아름다워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토함산 일대  황남동 일대를 둘러보고 다시 10번이나 11번 시내버스를 타고 20여 분 가면 불국사에 도착한다. 경주는 모든 시내버스 운전기사들이 거의 관광버스 기사처럼 자세히 안내해준다. 어디서 내려야 할지 걱정하지 말고, 승차할 때부터 가고 싶은 곳을 미리 말해두자. 불국사는 아마 대부분의 관광객이 석가탑과 다보탑을 보기 위해 들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치 경쟁하듯 나란히 서 있는 두 보물. 종전 석탑들과는 확연히 다른 양식으로, 이와 비슷한 형태로 제작된 석탑이 거의 없다고 한다. 탑 제작에 얽힌 슬픈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지는데, 새삼 석가탑과 다보탑을 만든 작가들이 무척 창의적인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석굴암에 가는 방법은 두 가지. 불국사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2.2킬로미터를 걸어 올라가는 방법. 또 하나는 버스로 올라가는 방법이다. 대부분 버스를 이용하지만, 날씨가 좋을 때는 등산로로 걸어 올라가는 것도 시도해보고 싶다. 석굴암까지 가는 버스는 불국사 주차장에서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데, 불국사를 돌아보기 전에 시간 안배를 잘해야 착오가 없다. 자칫하면 버스를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석굴암 가는 마지막 버스는 오후 4시 20분에 출발하는데, 요즘 같은 겨울엔 이 버스를 타고 가면 토함산 정상에서 일몰을 볼 수 있다. 토함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주 시내 전경이 고즈넉하다.

4인 가족이라면 동반석이 경제적!

KTX는 예약할 때 취향대로 좌석을 고를 수 있고, 좌석에 따라 요금도 다르다. 가족이 함께 마주보고 앉으려면 동반석을 선택하면 되는데, 동반석은 1인당 요금제가 아니라 4인 1세트 단위로 예약이 가능하다. 아이 두 명 포함 4인 가족이 일반석으로 신경주역까지 갈 때 편도 12만7천800원인 데 비해, 동반석으로 가면 편도 10만6천500원으로 3인 요금과 같다. 왕복으로 따지면 4만2천600원을 아낄 수 있는 셈. 단 마주보고 앉으려면 두 명은 역방향을 감수해야 한다. 멀미에서 자유롭다면 동반석을 이용하는 게 훨씬 경제적이다.

미즈내일 강현정 리포터 sabbun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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