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식 주치의제도 “우리도 할 수 있다”

 
온 국민 주치의 제도
고병수 지음
시대의 창.
1만3500원

 

주치의제도 도입을 둘러싼 논란은 한국 의료 분야의 가장 해묵은 논쟁 중 하나다.

지난 20년 동안 정부 차원에서도 주치의제도를 연구한 바 있고,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적인 보건의료 단체들뿐 아니라 대한가정의학회를 중심으로 의사 단체에서도 주치의제도를 주장해왔는데, 이러한 노력들이 공론화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제자리만 맴돌고 있다.

이제 다시 주치의제도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 됐다. 상급종합병원이 블랙홀처럼 감기나 수술환자를 가리지 않고 빨아들여 동네 의원들이 무너지고, 환자들 사이에선 ‘1시간 대기 3분진료’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있고, 1조3000억원에 달하는 건강보험 재정적자 기록 등 더 이상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를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런 시점에 현직 의사인 고병수씨가 쓴 ‘온 국민 주치의제도’는 한국식 주치의제도에 대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처지가 유사한 프랑스 사례는 깊이 있게 검토해볼만하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의료 현실 = 프랑스는 우리나라처럼 전문의가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아무 병원이나 원하는 대로 찾아가도록 돼 있었는데, 최근 의료개혁을 통해 주치의제도를 도입했다.

프랑스도 의료전달체계의 문제, 날로 증가하는 의료비용의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1998년 보건의료 개혁의 핵심으로 주치의제도 도입을 시도했다. 건강보험공단과 프랑스 일반의협회와의 협약을 통해 시작됐다. 이때 주치의제도를 '의뢰의제도'라고 불렀다.

주치의 자격은 일반의로 한정했고, 자발적 참여를 원하는 환자에 대해서 제도를 시행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낮은 인식도와 전문의들의 반대에 부딪치며 제도는 정착되지 못했다. 10% 일반의와 1% 환자만이 참여하는 저조한 기록을 남겼다. 프랑스는 전문의 비율이 높은 데 일반의만 참여할 수 있도록 제한한데다가, 의사들 입장에서는 이득이 없어 보였기 때문에 참여가 저조했다. 국민들도 바뀌는 제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어떤 이득이 있는지 몰라서 참여율이 낮았다.

저자는 “결국 주치의 제도를 시행하는데 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의료인의 동의를 확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1998년 실패 2005년엔 성공 = 프랑스는 2004년 입법을 통해 2005년부터 다시 주치의제도를 시행했다. 이번에는 명칭도 ‘의뢰의 제도’에서 ‘선호의사 제도’로 바꿨다.

우선 갖가지 매체를 통해 국민들에게 주치의제도의 장점과 이점을 충분히 홍보했다.

그런 뒤 2005년 1월부터 몇 달동안 건강보험공단은 가입자 모두에게 주치의 신고양식을 보내 원하는 경우 주치의를 지정하고 건강보험 공단에 신고 서류를 보내도록 했다.

그 뒤로는 정부도 놀랄 만큼 상당히 신속하게 진행됐다. 주치의제도를 시작한 2005년 5월에 16세 이상 건보 가입자 중 65%가 등록했고, 2006년엔 80%가 주치의 등록을 했다. 2009년 1월엔 85%에 달했다. 등록하지 않은 나머지 15%는 의료기관 이용 실적이 거의 없는 가정이라고 하니 사실상 온 국민이 주치의제도를 따르고 있는 셈이다.

2005년에는 1998년과 달리 건보공단이 일반의협회가 아닌 전체 의사협회와 협약을 맺었다. 협약은 2005년 1월에 체결했으며 5년간 유효하다. 협약이 만료되면 내용을 조정할 예정인데 제도 자체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계약에 따르면 주치의는 문지기 역할을 한다. 주치의와 계약을 맺는 환자가 전문의나 종합병원의 진료를 받으려면 주치의의 진료의뢰를 통해야 한다. 이를 거치지 않으면 본인 부담을 인상함으로서 경제적 불이익을 당하게 했다. 의사도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주치의로 신고하지 않고 진료해도 되고, 전문의도 주치의 시스템을 원하지 않으면 의뢰 환자를 받지 않아도 된다.

◆프랑스 주치의제도 성공 이유 = 프랑스의 주치의제도 성공이유는 4가지로 꼽힌다. 첫째, 국민들의 참여를 획기적으로 유도했다. 영국이나 다른 나라처럼 강제 가입이 아니라 홍보와 교육으로 공을 들여 자발적 참여를 유도했다. 둘째, 의사들에게는 주치의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았고, 진료 수입을 보장해주었다. 셋째, 전문의가 많고, 자유롭게 병원을 이용했던 이전의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변형을 최소화해 국민들이나 의사들의 혼란을 줄였다. 넷째, 국가가 원하는 건강관리의 지속성, 포괄성, 예방 등의 내용을 담음으로써 국가로서는 주치의제도의 장점을 보장할 수 있었다.

프랑스의 사례는 우리나라도 대화와 합의로 충분히 성공적인 주치의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강제적인 방식이 아니라 국민과 의사들과 국가가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제도의 설계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저자는 말한다. “더 많은 사람이 이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실을 고치려면 더 많은 사람이 구체적인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 책은 이러한 목적의식에 따라 쓴 것이다. 우리네 의료 현실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외국에서 주치의제도가 도입된 과정과 시행 현실과 문제점도 구체적으로,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대안의 방향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내일신문 장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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