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각계각층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지난해 말 또는 연초에 1년 일정의 3분의 1 이상이 확정되어 출강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1월 하순에 들이닥친 코로나 19로 모든 일정이 줄줄이 연기되거나 취소되었고 추가 일정은 아예 거론도 되지 않았다.

모든 강의가 다수를 대상으로 대면으로 계획되어 있다 보니 속수무책이었다. 봄부터 여름까지 코로나 19가 종식되거나 안정되기만을 기다릴 수박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가을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더이상 미룰 수 없어 추석 연휴가 끝나기가 무섭게 출강에 나섰다.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코로나 19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손 소독을 하고 마스크를 쓰는 것으로 하루일과가 시작된다. 지방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것이 버스이든 열차이든 수많은 사람이 밀폐된 공간에서 긴 시간을 함께해야 함으로 불안의 연속이다. 회사 측도 철저히 관리하지만 스스로 조심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택시도 예외가 예외가 아니다.

식당에 갔다. 큰 식당에서는 입구에서 체온을 체크하고, 방문기록을 남기고, 한 자리씩 건너 앉아 식사를 한다.  그러나 지방에서는 대부분 식당 규모가 작다보니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숙소를 찾았다. 호텔과 고급 모텔은 비교적 깨끗하고 위생관리가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지방에는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강의실을 찾았다. 언제 소독을 했는지 소독약 냄새가 나는 곳도 있다. 다수의 수강생들이 마스크를 쓰고 기다리고 있다. 책상 위에는 앞과 옆면을 가린 투명 칸막이가 되어 있다. 휴대용 소독약을 가지고 있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강사도 마스크를 쓰고 강의를 한다. 필자의 경우 대부분 한곳에서 2~3시간의 강의를 함으로 강의가 끝나면 마스크를 바꿔 쓰고 다음 일정을 시작한다. 쓰고 난 마스크를 버릴 곳이 없어 포장하여 가방 속에 넣는다. 담당자와 차로도 한잔 마시려면 잠시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데 서로가 불안하다.

지방을 찾았으니 시간을 내어 인근에 있는 명소 산책에 나섰다. 때로는 안전거리를 지키기가 쉽지가 않다. 마주 오는 사람과의 안전거리를 지키기는 더더욱 어렵다. 이밖에도 하는 일의 종류에 따라 느끼는 불편과 불안은 수없이 많다.

그런데 필자의 강의는 어떤 주제가 주어 저도 약방의 감초처럼 발명은 ‘좀 더 아름답게, 좀 더 편리하게’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코로나 19시대에 사는 기업인의 사명은 분명해졌다.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느끼는 불편을 해결하는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 사용해왔던 모든 물건을 코로나 19시대에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선하는 것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영업방법도 코로나 19시대에 맞게 바꾸지 않으면 애써 생산한 물건의 제값도 받기 어려울 수 있다. 중소기업인은 더더욱 그렇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코로나 19가 종식되면 또 다른 전염병이 찾아올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말을 흘려듣지 말자.

왕연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장 / 前 유원대 발명특허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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