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세트테이프 발명가 루 오텐스

1962년 발명하여 1963년 베를린 라디오 전자전시회에서 첫선. 1980~1990년대 대중음악 시장의 급속 팽창에 핵심적인 역할. 1천억 개 이상 판매. 직무발명(*종업원-법인의 임원 또는 공무원이 그 직무에 관하여 발명한 것)으로 엔지니어에서 이사까지 승진하여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쥠. 1986년 필립스 은퇴 후에는 네덜란드 물류관리협회장 역임 등 각종 화제의 수식어가 붙은 발명가.

과연 그 발명품과 그 발명가는 누구일까? 네덜란드 가전업체인 필립스의 엔지니어로 카세트테이프를 발명한 루 오텐스(Lou Ottens)가 그다. 그는 지난 3월 10일 고향 다위젤에서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오텐스는 어린 소년 시절부터 발명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나치가 네덜란드를 지배하고 있을 때 나치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의 방송을 듣기 위해 직접 라디오를 만들었고, 독일군의 전파 감시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부서진 폐품 안테나를 수리하여 사용하는 지혜를 발휘하기도 했다.

또 적지 않은 발명가들이 소년 소녀 시절에 그러했듯이 고장 난 각종 제품들을 척척 고쳐내는 재주를 갖고 있어 마을에서는 천재 소년으로 불리 우기도 했다. 그러나 오텐스는 늘 긴장하고 조심해야 했다. 독일군의 감시 대문이었다.

오텐스가 발명가로서의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필립스에 입사한 이후부터였다.

제품개발팀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던 오텐스에게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좀 더 작게 만들어 휴대가 가능하고, 좀 더 음질이 좋아진다면 틀림없이 히트할 것이다.”

이 같은 확신이 선 오텐스는 당시 대형 릴 테이프를 축소해 보기도 결심했고, 결심과 동시에 도전했다.

오텐스의 목표는 의외로 간단했다.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휴대가 가능한 작은 저장 매체를 만드는 것이 전부였고 자신감도 넘쳤다. 당시만 해도 누구도 하지 않은 생각이었고,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자신감이 넘치는 오텐스의 연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결과는 성공.

1963년 베르린 라디오 전자전시회에서 최초로 선보인 콤팩트형 카세트테이프는 공개되기가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처음부터 대박은 아니었다.

초창기 제품은 음질이 신통치 않아 녹취록 같은 업무용과 연구용으로 쓰였다. 대박은 전자기술의 발달로 음질이 크게 개선됨과 동시에 자동차 등에 널리 보급되면서부터였다.

이후 소니의 워크맨이 등장하면서 휴대용 음악 저장 매체로 날개를 달게 되었다. 필립스는 돈방석에 앉게 되었고 오텐스의 명성은 순식간에 전 세계에 알려졌다.

오텐스는 카세트테이프를 발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카세트테이프를 신속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필립스에 자신의 발명품을 무료로 라이선스하도록 설득하기도 했다. 덕분에 이후 누구나 만들 수 있었고, 더욱 빨리 그리고 더욱 널리 보급될 수 있었다.

전 세계 언론의 인터뷰도 쇄도하였다. 그때마다 그는 ‘그동안 선보인 제품들은 제가 아닌 제 팀의 동료들이 만든 것입니다.’라며 모든 공을 동료들에게 돌려 겸손한 인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코텐스의 발명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필립스의 각종 기존 제품도 그의 손을 거치면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신제품이 되어 소비자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오텐스는 콤팩트디스크(CD) 발명에도 참여했다. 필립스와 소니는 CD를 공동발명해 1982년부터 출시했다. CD는 2천억 개 이상이 판매되었다.

직무발명가로서 명성을 떨친 오텐스에게 후회는 단 한 가지였다. 카세트테이프 발명 50주년 기념 타임지 인터뷰에서 ‘필립스가 아니라 소니에서 워크맨을 발명한 것’이 가장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왕연중(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장/前유원대학교 발명특허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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