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개그 멘토는 ‘4차원 공주’ 엄마”

요즘 가부장적인 남자들의 행태에 “기가 맥히고 코가 맥힌다, 그죠?”라며 시원스레 호통을 쳐대는 아줌마가 인기다. 주인공은 <개그콘서트> ‘두분토론’ 코너에서 여당당 대표로 활약 중인 코미디언 김영희씨. 오늘도 찰랑거리는 단발머리에 뿔테 안경을 걸치고 위풍당당 무대에 오르는 그녀에게 ‘진짜’ 아줌마가 데이트를 신청했다.

 

일주일의 총합은 수요일 단 7분!

당최 눈동자를 마주치지 않았다. 꽤나 시끄러운 수다를 기대한 리포터로서는 당혹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슬쩍 인사를 건네고 슬그머니 의자에 앉더니 휴대폰을 바라보는 연속 동작까지, 첫 대면에 언니 동생 운운하는 진짜 아줌마와는 너무나 달랐다. 개그맨은 두 부류, 그러니까 무대에서처럼 외향적인 사람과 정반대인 사람으로 나뉜다더니, 그녀는 100퍼센트 후자에 속했다. 그것도 ‘낯가림’이 심한 경상도 아가씨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개그하는 친구를 따라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어요. 대학로 극단부터 OBS, MBC 개그맨 공채 시험에 줄줄이 응시했죠. 모두 합격했지만 무대에 설 기회가 없었어요. 선배들 뒤에서 박수만 치다가 마지막으로 도전한 것이 KBS 공채 시험이에요.”

무작정 상경한 지방 아가씨가 뒤늦게 각 방송사의 공채 시험에 줄줄이 합격했으니 개그맨의 끼는 다분했던 모양. 무대와 인연이 닿지 않아 방송국 유랑 생활을 3년간 지속했을 뿐이다. 다행히 KBS에 합격한 뒤로는 운이 시원하게 트였다.

합격과 동시에  KBS-2TV <개그콘서트>의 신생 코너 ‘두분토론’에 주인공으로 합류할 수 있었으니까. 원래 그녀의 역할은 주인공 뒤에서 선거송을 부르는 아줌마에 불과했다. 운이 제대로 따랐던지, 시험에서 “~한다, 그죠?”라는 말투를 기억해낸 김석현 감독이 과감히 그녀를 앞에 내세웠다. 3년 만에 무명 생활을 청산하고 코미디 신인상까지 거머쥐었으니 요즘 그녀의 발걸음은 하늘을 날 듯 가벼울 것 같았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아직도 녹화 당일에는 두려움이 80퍼센트예요. 코너가 인기를 얻으면서 사람들의 기대치도 높아졌으니까요. 세분토론만 돼도 덜할 텐데 코너 자체가 두분토론인지라 선배가 앞에서 터뜨리면 나도 뭔가 해야 한다는 부담이 커요.”

신인상의 영광도 1일 천하로 끝났다. 다음 날부터 개그 수험생 생활로 ‘컴백’했다. 지난해 6월부터 그녀의 일상은 매일같이 방송국에 모여 아이디어를 내고 대본을 짜고 수정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셈하자면 일주일의 총합은 <개그콘서트>를 녹화하는 수요일, 그것도 코너가 무대에 오르는 7분 남짓 동안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렇게 32주가 지나자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그녀의 프로필이 뜨고 자신의 배너 광고가 실렸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말했다. “요즘 떴대?”

“40세 아줌마 연기, 4차원 엄마에게서 배우죠”

종종 중년의 아줌마로 오해 받는 그녀의 실제 나이는 29세. 결혼도 하지 않은 아가씨가 어쩌면 그렇게 아줌마들의 속내를 시원하게 대변하는지 의아했다. 아줌마들의 생생한 이야기는 그녀보다 끼가 출중한 엄마, 57년생 권인숙 여사에게서 나왔다. 실제로 독특한 그녀의 말투나 대사, 아이디어의 일부는 엄마에게서 뽑아낸 삶의 조각이었다.

“성격이 정말 특이해요. 4차원 공주랄까. 저와 달리 꽤 미인이신데 일상생활에서 항상 교양을 추구하는 편이에요. 친구도 아무나 사귀지 않고 아파트 반상회도 나가지 않고 외로운 공주생활을 고수하시죠. 인터뷰할 때 엄마 말투에서 개그 소재를 땄다고 하면 호통부터 치세요. 내가 언제 그렇게 무식하게 말했느냐면서. 개그 근성이 저보다 한 수 위예요.”(웃음)

시간을 거스르면 엄마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우르르 쏟아진다. 남동생의 달력 사건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세 살 아래 남동생이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야한 달력을 보고 (충격으로) 울음을 터뜨린 아들을 목격한 엄마의 처방전은 정말이지 독특했다. 야동 채널에 가입, 거실에서 24시간 야한 프로그램을 틀어놓았다. 남동생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TV 화면을 등지고 화장실로 뛰어가기 바빴다.

“곰국 사건도 빠질 수 없죠. 언젠가는 엄마가 매일 곰국만 해줘서 남동생과 살짝 하수구에 버렸어요. 그날 저녁 밥상이 이상하더라구요. 아빠 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데 남동생과 제 밥은 축축했죠. 하수구에 버린 밥알을 죄다 씻어서 다시 올린 거였어요. 아프리카 아이들은 굶어 죽는다며 입 안에 넣고 삼키는 것까지 확인하셨죠.(웃음)”

어른이 되기까지 이어진 숱한 ‘남매 잔혹사’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이제 개그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물론 이러한 사건에 대해 권인숙 여사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단다). 최근에는 딸을 보살피겠다는 핑계(?)로 상경한 엄마가 예능계까지 넘보고 있다며 손사래를 쳤다. 장동민 부자를 운운하며 개그우먼 모녀로 예능계에서 활약하자는 눈치를 넌지시 준다면서.

“남자냐고요? 동네슈퍼 갈 때도 치마만 입는 걸요!”

아줌마 역할을 태연하게 연기하지만 ‘인간’ 김영희에게서 아줌마 ‘다움’을 찾기란 쉽지 않다. 코미디언이 되면서 바지를 구입했을 정도로 옷장에는 베이비 돌 드레스가 가득하다. 동네 슈퍼에 갈 때도 치마를 챙겨 입으니 ‘천생 여자’란 수식어가 딱 들어맞는다. 그래서일까. 개그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개그성과 여성성 사이에서 혼란을 겪기도 했다.

“자꾸 못생겼대요. 전 잘 모르겠거든요. 솔직히 예쁜 건 아닌데 못생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선배들은 그러죠. 넌 평소에는 정말 솔직한데 외모에 대해서는 왜 그렇지 못하냐구. 저보고 김영철 동생이냐, 여자 서세원이냐고 하는 시청자도 있어요. 심지어 포털 사이트에 김영희 남자 아니냐는 질문을 남긴 분도 있더라고요.(웃음)”

개그우먼에게는 사라지지 않는 고질(?)이 있다. 얼굴에 커다란 점이나 일자 눈썹은 그만 붙이고 싶다는 소망에서 비롯된 ‘배우병’이다. 선배 조혜련이 그랬고, 김미려가 그랬다. 아마도 개그우먼들에게서 여성성을 쉽게 앗아가는 사회 풍토 탓일 게다. 인터뷰할 때도 상황은 비슷하단다. 자신은 평범한 모습으로 나가고 싶은데, 나중에 기사를 확인하면 죄다 눈을 뒤집거나 귀에 손가락을 넣은 사진들 뿐이었다(그래서인지 촬영을 시작하자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이상한(?) 포즈를 연속해서 취했다). 예쁘게, 아니 평범하게 보이기조차 쉽지 않은 존재인 것 같아 한때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제가 네일 케어하는 거 정말 좋아하거든요. 서랍에 매니큐어만 70개가 넘어요. 지난번 모 프로그램에서 맨발로 촬영하는 컷이 있었는데, 그때 선배들이 제 발을 보고 빵 터졌어요. 예쁜 여자들이 하는 건 다 하고 다닌다고. ‘두분토론’에서는 안 어울리니까 할 수 없이 페디큐어 한 상태였거든요.(웃음)”

그녀의 꿈은 여성성 찾기보다 훨씬 파이가 크다. 가장 끌리는 부분은 영화감독. 영상제작을 전공해서인지 개그맨의 시선으로 독특한 영화를 제작하고 싶단다. 여유가 되면 일본을 여행하고 싶다(이제까지 해외여행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면서).

“일본에서는 연예인 중에서 개그우먼을 가장 우대한대요. 도전하는 영역도 다양해서 영화감독도 하고 드라마에도 출연하죠. 그래서인지 일본에 가서 그런 분위기를 한껏 느끼고 싶어요.”

아쉬움이 있다면 작년부터 지금까지 고독한 싱글이라는 사실. 지금이라도 남자친구만 생긴다면 베이비 돌 드레스를 입고 분홍색 매니큐어를 바르고 경상도 아가씨의 필살기 애교를 부릴 텐데 말이다. 천생 여자인 그녀에게 고독한 싱글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맥히고 코가 맥히는’ 현실이다.  

미즈내일 박지현 리포터 true100@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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