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가족 나들이

 

얼마 전부터 읽기 시작한 <초등 역사 퀴즈 동화> 속 고인돌에 유독 관심을 보이던 아들 녀석의 궁금증이 강화 여행의 발단이었다.

“너, 옛날 사람들이 고인돌을 어떻게 옮겼는지 알아? 얼마나 크고 무거운데.” 누나의 한 마디에 더욱 고인돌에 집착하는 아들. 다행히 집에서 한 시간 달리면 고인돌의 고장 강화에 닿을 수 있으니 폭설에 한파까지 덮친다는 무시무시한 일기예보를 뒤로하고 4인 가족, 용감하게 집을 나섰다.

지붕 없는 박물관, 강화읍… 남문과 마주하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강화 읍내 초입에 위치한 강화산성의 ‘남문’. 강화산성은 몽골의 침입 때 실권자인 최우가 1232년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1234년 왕궁, 관아 시설과 함께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했다고. 성은 흙으로 쌓았으며 내성, 중성, 외성으로 구성되었고 내성은 약 1천200미터로 지금 강화성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북문, 동문, 서문, 남문 이렇게 지어진 강화산성 중 남문을 찾은 이유는 하나. 남문에는 정식 명칭인 ‘안파루(晏波樓)’라는 편액이 달려 있는데 김종필 전 자민련  대표가 글을 썼다는 기록 때문이다. 한데 막상 남문을 둘러보니 안쪽과 바깥쪽 둘 중 어느 하나를 썼는지, 아니면 둘 다 썼는지 아리송하다.

남편과 편액을 보며 진지한 대화를 하는데 순간 돌아보니 아이들이 온데간데없다. 천도한 고려의 산성이니 편액이니 심각한 내용에는 관심 없다는 듯 성곽 뒤편에서 눈싸움에 한창이다. 슬슬 겨울 여행의 참맛을 느끼기 시작한 ‘난지형’ 가족. 아이들의 웃음을 뒤로하고 남편과 아무도 밟지 않은 성곽 길에 올랐다. 소원이 이뤄진다는 옛 이야기에 이끌려….

고인돌은 괴어놓은 돌이다? 

한눈에 후딱 보면 10분도 충분하거늘, 우리 가족은 무려 한 시간 동안 남문에서 강화의 겨울을 만끽했다. 서울에서 볼 수 없는 눈 쌓인 풍경에 푹 빠져 눈밭에 구르고 무릎까지 빠지는 산성의 눈길을 걷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

“엄마, 고인돌은 언제 봐요?” 눈밭을 벗어나 차에 앉자 그제야 고인돌이 생각난 모양이다. 15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고인돌공원. 하점리 고인돌유적지를 중심으로 지난해 ‘고인돌공원’이라는 이름을 걸고 새롭게 단장되었다고. 그래서일까… 공원 입구에 잘 정돈된 관광 안내소가 눈에 띈다. 고인돌에 대한 궁금증이 가득한 아들을 위해 정보를 얻는 것이 우선이다.

안내 책자라도 받을 심산이었는데 뜻밖에 문화재해설가가 근무 중이다. 어디든 가면 홍보 책자를 집어드는 아들, 역시나 인사 꾸벅하고 안내소를 나서려는데 문화재해설가 아저씨가 아들을 부른다.

“너, 고인돌이 무슨 뜻인지 알아?”

멋쩍어하는 아들을 향해 해설가 아저씨는 손에 든 대걸레 끝자락 손잡이에 턱을 괸다. “이렇게 턱을 괴고 있는 것처럼 고인돌도 돌 위에 돌을 괴어 얹었다는 데서 괴인돌이 고인돌로 불리는 거야.”

리포터도 난생처음 듣는 얘기. 알아들었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는 아들의 표정이다. 분명한 것은 해설가 아저씨에 대한 경계를 풀고 다양한 질문을 쏟아내는 것. 아들의 질문에서 비롯된 이런저런 이야기들, 중학교 입학을 앞둔 딸은 수첩에 해설가 아저씨의 설명을 빼곡히 적는다.

‘지석묘는 일본식 표현, 영국에는 돌멘, 순수 우리말은 고인돌.’

관광 안내소에서 뜻밖의 수확을 얻은 우리 가족. 드디어 공원 안으로 발을 들이고 고인돌을 만나는 순간이다. 간밤 내린 폭설로 길의 경계가 허물어진 공원 여기저기로 아이들이 내달리기 시작한다.

“엄마, 저기 고인돌!” 그 유명한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과 마주하며 가장 먼저 드는 생각.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저 고인돌을 옮겨놓았을까?” 겨우 농경 생활을 시작한 청동기인들이 만든 돌무덤치고는 장대하고 고귀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흩어진 강화 유물을 한눈에 ‘강화역사박물관’

 
고인돌과 움막, 세계 여러 나라의 고인돌 문화까지 엿볼 수 있었던 고인돌공원.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이 가장 신 난 건 끝이 보이지 않는 눈으로 덮인 공원 언덕을 정신없이 뛰어다닌 일이다. 딸은 아빠와 아들은 엄마와 영화 <러브 스토리>를 촬영하는 낭만을 누렸으니 말이다. 고인돌은 핑계고 난지형 가족은 그간 주저한 겨울 여행을 몹시 기다렸던 게 틀림없다. 그렇게 눈밭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 대가는 생각보다 혹독했다.

손과 얼굴은 꽁꽁 얼고 옷은 눈에 젖어 제대로 추위가 찾아온 것. 몸도 녹이고 강화의 역사를 한눈에 보기 위해 고인돌공원 인근에 위치한 ‘강화역사박물관’(032-930-7076)을 찾았다. 이곳 역시 지난해 새롭게 개관해 예전 강화역사관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시설이 관람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흩어져 있던 강화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는 게 큰 장점.

선사시대부터 고려시대, 근대에 이르는 역사를 동시에 품은 고장은 아마 강화가 유일하지 않을까? 제1공간 ‘고인돌의 땅’부터 제7공간 ‘자연환경의 강화’까지 어느 것 하나 흥미롭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보고 듣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다양성이 잘 버무려져 아이들을 맞았다.

“엄마, 고인돌을 이렇게 날라요.”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바닥에 둥근 통나무를 깔고 거대한 돌을 나르는 장면을 모형으로 보여주니 아들은 쉽게 이해가 가는 모양이다. 그다지 크지 않은 규모지만 강화의 역사만큼은 부족함 없이 아이들 눈높이에 부합되니 학년에 맞춰 두 번 세 번 찾아도 꽤 유익하지 않을까.

전등사에서 여고 시절 추억을 보듬다

 
집에서 준비해온 간단한 도시락으로는 겨울 여행에 필요한 에너지를 보충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나 보다. 늦은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 맛집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지 않은 탓에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지난해 경기도 이천 쌀밥집에서 맛없는 한정식을 먹고 후회 막급했던 일을 생각하니 신중하게 식당을 찾아야 할 터. 오지랖 넓은 남편, 차를 세워 길 가던 아낙을 향해 큰 소리로 묻는다. “가까운 곳에서 가족이 맛있게 식사할 곳 없냐”는 질문에 아낙이 알려준 곳은 국도변의 평범한 가든. 기대 반 의심 반 식당 안으로 들어섰는데 손님들로 가득하다. 김치찌개정식에 생선구이를 주문했는데 차려지는 반찬이 웬만한 한정식 수준이고, 김치찌개는 고급 전골의 모양새로 풍성하기 그지없다. 현지 주민의 추천이 주효했던 선택. 공깃밥을 추가하고 반찬 그릇을 모두 비우고 나가는데 4인 가족의 융숭한 점심치고는 2만6천 원으로 가격도 착하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나서 우리 가족이 찾은 마지막 코스는 ‘전등사’. 아직 돌아볼 곳이 많지만 해가 짧은 겨울임을 감안할 때 하루 코스로 4곳 이상은 무리라는 생각에서다. 사실 강화도 여행은 여러 번 했지만 가족과 함께 전등사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 여고 시절 학력고사를 치르고 친구들과 광란(?)의 여행을 한 추억이 서린 곳이다. 전등사 인근 민박집에서 밤 새워 미래를 얘기하고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에 맞춰 새벽까지 몸을 흔들었다. 그렇게 땀을 흠뻑 쏟고 세수도 않은 채 전등사에 올랐다. 아무 생각 없이 찾은 전등사는 감동이었다. 삼랑성을 지나 숲길 언덕에 소박히 자리한 모습이 그렇고, 눈 쌓인 사찰의 고즈넉함이 스무 살을 맞이한 시험에 지친 처자들의 무딘 감성을 깨웠다.

그리고 20년 뒤… 두 아이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불혹을 넘긴 나이에 찾은 전등사는 변한 것이 없었다. 그때의 차가운 바람도, 조금 자란 나무들도 그저 친근했다. 눈 덮인 겨울의 산사는 아름다워 눈물이 날 지경… 그렇게 연신 셔터를 누르고 카메라에 추억을 담을 때 “우리도 기와에 소원을 쓰자”며 딸아이가 손을 이끈다. 가족 여행은 시작이 그랬던 것처럼 마무리도 아이가 중심이 되는 순간이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길눈 어두운 남편을 위해 서둘러 전등사를 뒤로하고 서울로 오는 차 안. “겨울 여행이 좋아졌다”는 아이들의 소리에 여행이 선사한 선물이 새삼 고마웠다. ‘난지형’ 가족을 ‘한지형’ 가족으로 개조했으니 말이다. 

미즈내일 심정민 리포터 request08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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