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문화 유적을 찾아 떠난 가족 여행

새만금방조제가 개통되었다는 뉴스를 본 남편이 “우리 저기 가자!”고 말했지만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다. 남편은 주말이면 나들이 가기를 좋아하는데 지난 몇 달 동안 일에 쫓겨 하숙생처럼 지냈다. 그러던 남편이 추운데도 “무조건 가자”고 통보하더니, 합당한 명분을 찾아 나열했다. “새만금방조제는 바다 위를 달리는 거야.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군산에 근대 문화유산도 있어서 애 데리고 가면 공부도 될 걸? 그리고 군산에….” 한겨울 우리 가족의 군산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픈 역사 근대 문화유산으로 승화되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군산에서 우리가 처음 찾아간 곳은 월명동. 군산 월명동은 일제강점기 흔적이 많은 곳이다. 월명동에는 낮은 2층 건물과 나무 문이 있는 일본식 가옥이 있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듯하다.

영화 <타짜>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군산 신흥동 (구) 일본식 가옥은 일반인이 거주하다가 10년 전 군산시에 임대했다. 에도시대 야시키 양식으로 지어진 2층 건물. 방은 모두 10칸으로 다다미가 깔렸는데, 쉽게 지나치는 벽면까지 수납 공간으로 활용한 것이 놀랍다. 복도를 걸어갈 때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삐걱대는 나무 소리가 을씨년스러웠다. 소나무와 바위가 조화를 이룬 아담한 정원을 둘러볼 때 마침 눈이 내려 분위기는 최고였다.

다음 목적지는 동국사.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로 민족시인 고은이 출가한 절이다. 정면에서 건물만을 보고 있으면 일본에 온 것으로 착각할 정도다. 건물에 사용한 삼나무는 전량 일본에서 들여왔고, 화려한 단청이 없어 소박하다. 법당과 연결된 건물(‘요사채’라고 불린다)을 통해 들어가는 방법도 특이했다.

옛 군산세관은 새로 지어 옮긴 현재의 군산세관과 인접해 있다. 군산세관 정문을 지나면 출입구가 보인다. 건물은 유럽 양식으로 모든 건축자재는 수입해 지었다고 한다. 외벽을 장식한 붉은 벽돌은 벨기에에서 들여온 것이라고.

 
실내에는 군산세관의 변천 과정을 사진으로 전시했다. 그중 일본으로 보내기 위해 세관 입구에 쌀가마니를 잔뜩 쌓아둔 사진 앞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마침 옆에 있던 딸아이가 한마디한다. “먹을 것도 부족했을 텐데 저 많은 쌀을 세관에 바치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을까?”

군산세관에서 약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쌀을 일본으로 수송하기 위한 부잔교(일명 ‘뜬다리’)가 있다. 수탈한 쌀을 반출하기 위한 시설인데, 밀물이면 뜨고 썰물이면 가라앉아 배를 접안하기 쉽다. 해망굴은 월명동에서 항구로 편리하게 물품을 운반하기 위해 뚫었다. 길이 131미터로 사람만 통행할 수 있다.

이곳 또한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근대문화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지정되었지만 당시 조선인으로 살면서 겪어야 했던 서러움과 아픔이 남아 있는 듯해 마음이 무거웠다. 

군산에서 부안까지 연결된 새만금방조제

 
진포해양테마공원(064-445-4472)은 최초로 화약을 만들어 해전에 승리한 최무선 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곳이다. 임무를 다한 함선과 장갑차, 수송기, 전투기 등을 전시했는데 내부 관람도 가능하다. 회색 위봉함은 2006년 퇴역한 군함으로, 우리나라 해전의 역사와 최무선 장군의 활약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했다. 또 해병들이 생활하던 침상과 사물함, 식당 등을 볼 수 있다. 광고에 등장해 관심을 끌었던 철길마을도 군산에 있다. 군산 이마트 맞은편인 경암동은 3년  전만 해도 기차가 다니던 곳이다. 기차 맨 앞에 승무원이 서서 깃발을 흔들며 건물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했다는데. 화물 수송을 위해 군산화물터미널에서 제지 회사까지 연결되는 총 4킬로미터 철길이란다. 놀라운 사실은 한쪽 팔만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인데, 철길 주변이 실제 주거지라는 것이다. 우연히 만난 한 할아버지는 기차가 다닐 때는 승무원 신호에 맞춰 열었던 문을 닫았는데, 요새는 철길을 보러 오는 관광객 때문에 닫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에 카메라를 들고 사진 찍기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기차도 다니지 않는 철길을 왜 아직 철거하지 않고 그냥 두었을까 궁금했다. 아마 새로운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계획이 있지 않을까? 

드디어 벼르던 새만금방조제로 가는 길은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했다. 군산에서 야미도와 신시도를 거쳐 부안까지 연결되는 무려 33.9킬로미터. 곳곳에 전망대를 겸한 쉼터가 있기 때문에 주차하고 마음 편하게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우리처럼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며 기념사진을 찍는 가족들이 많다. 섬과 섬 사이를 연결한 길 위에 서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했다.

새만금방조제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신시광장에 가면 신시도 배수갑문을 좀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군산의 끝자락인 신시도 배수갑문. 이곳을 지나면 부안으로 이어지는데, 방조제 중간에 위치한 배수갑문은 담수호의 수량과 홍수량을 조절하기 위해 설치되었다고 한다. 방조제는 완성되었지만 아직 부분적으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짬뽕 4대 천왕? 가장 오래된 빵집!

 
군산에 왔는데 기다리면서까지 짬뽕을 먹느냐는 핀잔에 남편은 “짬뽕4대 천왕 중 한 가지를 맛볼 기회”라고 설득한다. 영화배우도 아닌 음식에 4대 천왕이라는 이름을 붙인 짬뽕이 얼마나 맛있을까 벼르며 찾아간 곳은 복성루(064-445-8412). 점심시간이 지났지만 예상대로 줄을 서야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순서만 기다리는데 뒤쪽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와, 이레 기다리다가 맛없으면 정말 우울한데….”

15분가량 기다린 뒤 자리를 잡았다. 메뉴에는 일반 중국음식점과 동일한데 테이블마다 온통 짬뽕이다. 잠시 기다리니 양은 대접에 가득 담긴 짬뽕이 나왔다. 물론 딸아이 때문에 자장면도 주문했다. 붉은 국물은 비슷한데 면 위에 해물 대신 곱게 채썰어 양념했다는 돼지고기가 한 움큼 올라앉아 있다. 가격은 5천500원. 담백한 고기와 쫄깃한 면, 진한 국물이 맛이 지금까지 먹던 것과 사뭇 달랐다. 그뿐이랴 바닥에 숨어 있는 꼬막도 많아 가격 대비 만족스러웠다.

군산 월명동은 일제강점기의 번화가. 이곳에서 지금까지 운영하는 빵집이 바로 ‘이성당’(064-445-2772)이다. 대형 빵집에 밀려 개인이 운영하는 곳은 점차 자취를 감춰가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라는 문구를 당당히 쓸 수 있을 만큼 맛에도 자부심이 있을 터. 매장에 들어가니 일반 빵과 쿠키, 먹음직스러운 케이크까지 다양했고 매장 뒤에는 테이블도 10여 개 있다. 이곳은 2006년부터 쌀가루로 빵을 만들었는데 그 맛이 훌륭해 전국에서 주문이 들어올 정도란다. 그중 대표 빵은 쌀가루로 만든 단팥빵. 진열되면 순식간에 동이 날 정도라고 한다. 서울로 출발을 앞둔 우리가 빵집에 간 시간은 오후 4시. 오후 6시에 새로운 빵이 나온다고는 했지만 시간이 넉넉지 않은 여행객에게는 긴 시간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간식으로 빵과 쿠키만 구입했다. 특히 겉모양은 곰보빵과 흡사한 메론빵은 바삭, 고소, 달콤한 맛이 오랫동안 입 안에 남았다. 생각해보니 전통을 지키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맛을 개발한 것이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한 비결이었다.

언제부턴가 이름 모를 애매한 병명 앞에는 ‘스트레스성’이라는 접두사가 붙는다.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은 여행을 준비하면서 느끼는 설렘도 일종의 스트레스라고 한다. 이런 스트레스라면 24시간 꼭 붙어 있어도 마냥 반가울 텐데. 

미즈내일 최은영 리포터 solc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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