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과 실망 사이 싹튼 가족愛

“얘들아, 토요일에 어디 갈까?”

주말에는 무작정 나들이를 가야 한다는 아빠의 지론 때문에 우리 가족은 꿀맛 같은 늦잠을 포기하고 집을 나섰다.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도로를 달리는데, 딸아이가 ‘인천 월미도’에 가고 싶단다. 지난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된 것을  눈여겨봤나 보다. 어디로 가고 싶기보다 무엇을 먹고 싶은 딸아이의 속내를 눈치 챈 아빠, 차이나타운의 자장면과 신포시장의 닭강정을 나들이 공약으로 내세웠으니….

한데 무작정 밀어붙인 나들이다 보니 목적지가 정해졌어도 대략 난감이다. 인천이 누구네 집 앞마당도 아니고, 월미도를 중심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막막하다. 인천에 사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물으니 “인천에 뭐 볼 것 있다고 이 궂은 날 집을 나섰냐?”는 실망스러운 답변이 돌아온다. 서울 토박이인 우리 가족에게 서울은 늘 친근해 무심한 것과 같은 맥락이리라. 하지만 리포터를 제외한 남편과 아이들에게는 첫 인천 나들이니 그들에게 인천은 제주도나 경주와 버금가는 설레는 여행지다.

“엄마, TV에서 보니 월미도 가서 놀이기구도 타고 근처 전망대에 올라가 바다도 보더라고요.” 

그래, 정확도 99.9퍼센트를 자랑하는 내비게이션이 있는데 무엇을 망설이랴? 일단 월미도로 Go~Go! 서울 촌놈들의 인천 나들이는 그렇게 시작됐다.

 

인천항을 한눈에 - 월미전망대

새벽부터 집을 나선 탓인지 우리 가족은 오전 9시도 못 돼 인천 월미도에 도착했다.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썰렁함에 당황하면서 차를 타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월미공원’이라는 푯말이 눈에 띈다. 이른 아침 출발했기에 공원 매점에서 인스턴트 우동이라도 먹을 생각에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웬걸. 매점의 문은 굳게 닫혔다.

“엄마 저 위에 배가 있어요.”

아들 성욱이가 공원 언덕을 재빨리 오르니 커다란 경비함 한 척이 위풍당당하게 우리 가족을 맞는다. 알고 보니 근대 열강의 세력들과 각축을 벌인 항쟁의 유물이다. 원래 월미공원은 50여 년간 군부대 주둔으로 시민의 출입이 제한되던 곳. 2001년 공원화를 시작해 2010년 6월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는데, 근현대사를 상징하는 조형물과 유물들이 야외 공원 곳곳에 전시되었다. 하지만 넓은 공원을 알차게 보려면 공원에 대한 정보가 필요할 터. 마침 공원사업소가 눈에 띈다. 주말이라 문이 닫히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사무실에 들어섰는데, 당직을 서는 직원이 놀란 눈으로 우리 가족을 맞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사무실 안락한 소파로 우리를 이끈 직원은 따뜻한 차를 건네며 월미공원의 이모저모를 친절히 설명해줬다. 일부러 서울에서 왔다면 ‘월미전망대’에 꼭 올라야 한다는 당부도 함께 말이다.

 
월미전망대는 월미산을 품은 월미공원에 자리한 곳. 해발 108미터, 산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언덕이지만 정상에 올라야 전망대를 만날 수 있다. 월미전망대로 가는 코스는 지리산 둘레길처럼 길이 잘 닦여 있었다. 천천히 전망대에 오르는데 산길 곳곳에 월미산의 생태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아이들의 발길을 잡는다. 딱따구리도, 직박구리도 산다는 설명에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월미산 숲을 바라본다. 그렇게 20여 분 올랐을까? 귀가 떨어질 것 같은 맹추위는 사라지고 외투 안은 열기가 후끈하다. 뜻하지 않은 늦겨울 산행에 신난 아이들… 언덕길을 달음박질하며 빨리 오르기 시합을 하는데, 갑자기 두 아이의 탄성이 들려온다.

“와~ 정상이다!”

“엄마, 바다가 보여요. 어! 전망대도 있네?”

성으로 둘러싸인 정상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월미전망대에 올라보니 서해가 한눈에 펼쳐진다. 역사와 산행, 바다까지 품어 안은 월미공원은 여행지에 만난 의외의 감동이다.

월미 문화의 거리, 낭만은 없다? 가족애는 있다!

월미전망대에서 먼발치로 바다를 보긴 했지만, 월미도는 분명 섬이었으니 지척에서 바다를 만나는 게 우선. 하지만 대학 시절 경험한 월미도 앞바다는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았다. 시퍼런 물결과 모래밭을 꿈꾸는 아이들이 실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잡다한 생각을 안고 월미산을 내려오니 자연스럽게 월미 문화의 거리와 맞닥뜨린다.

20년 전 대학 시절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다. 단지 ‘월미랜드’가 ‘월미테마파크’라는 세련된 이름으로 단장을 했다. 그 유명한 90도 각도의 ‘월미도 바이킹’이나 ‘디스코 팡팡’도 그대로. 아이들에게 놀이기구 탈 것을 권했지만, 카페 거리에 늘어선 오락 기구에 눈길이 더 가는 모양이다. 웬만해서는 해보지 못한 두더지 잡기와 펀치 놀이에 아이들과 아빠는 추위도 잊은 채 몰입했다.

“엄마, 이제 바다 보러 가요.”

전망대에서 추위와 맞서며 본 바다는 어떤 바다였기에 또 바다 타령일까? 추위에 콧물이 끊이지 않는 아이들 어깨에 무릎담요를 둘러준 뒤 카페 거리 맞은편 바닷가로 향했다. 크고 작은 바위 위로 철썩거리는 파도….

바위에서 소라를 줍고, 살짝 걸터앉아 바닷물을 만지는 아이들과 아빠의 얼굴은 소박한 행복감이 가득 차 있었다.

색다른 공간, 색다르지 않은 맛! 차이나타운

 

겨울 바다에 취해 있어도 배꼽시계는 어김없이 울린다. 인천 나들이 공약으로 자장면을 내세웠기에 우리 가족은 자연스럽게 ‘차이나타운’으로 이동했다. 한국 속의 중국이라는 명성 그대로 차이나타운은 이국적인 거리임에 틀림없다. 붉은색으로 치장한 강렬함이 그렇고, 중국 전통 의상인 치파오가 거리 곳곳에 걸려 있는 것도 한몫했다.

“엄마, 이왕이면 우리 ‘1박 2일’에서 은지원이 사천자장 먹었던 곳 가요.”

셀 수 없이 많은 음식점 중 옥석을 가릴 만한 기준이 없으니 딸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역시 방송의 힘은 대단했다. 다른 곳과 달리 은지원이 찾아갔던 그곳은 식사를 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 주린 배를 잡고 무려 15분을 기다려서 겨우 자리를 잡은 우리 가족. 은지원이 먹었다는 사천자장은 무려 7천 원. 유독 사천자장만 인쇄되지 않고 손글씨로 가격이 붙은 걸 보니 유명세를 업고 급하게 가격이인상된 듯했다. 자장면과 사천자장, 탕수육, 볶음밥을 시켰는데 양이 너무 적어 실망했다. 서울의 웬만한 중식당과 차별화된 맛도 없으니 색다른 공간의 평범한 맛은 부조화 그 자체. 더욱이 몰려드는 손님들로 친절은 실종된 지 오래.

“엄마, 저 다른 것 또 먹고 싶어요.”

그릇을 깨끗이 비웠지만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아이들. 차이나타운 거리에서 열쇠고리와 팔찌 등을 기념품으로 구입하고, 사람과 차로 가득한 그곳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원조 닭강정, 뭐가 다르지? 신포시장 닭강정

갑자기 하늘에 구멍이 났는지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상태라면 서울로 가는 길은 지옥길이 될 게 분명한 듯. 인천 나들이 공약으로 ‘신포시장 닭강정’이 남았지만 아빠와 엄마 마음은 이미 집으로 향해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닭강정을 먹어야 한다고 아우성. 눈발이 예사롭지 않으니 집에 가져가 먹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신포시장’으로 향했다. 닭강정으로 유명한 신포시장 역시 인도 옆 대로에도 차 한 대 세울 수 없을 만큼 주차된 차로 가득하다. 먹기 위해 줄을 서고 주차 전쟁을 치를 만한 가치가 있는지 회의가 드는 찰나, 남편이 가까스로 인도 옆 도로에 차를 댄다.

“이왕이면 원조 집에서 사와.”

남편의 당부를 뒤로하고 신포시장을 향해 딸과 눈밭을 달렸다. 시장 입구에 도착하니 딸의 긴 탄식이 이어진다. 원조 집 앞, 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선 사람들 때문. 그냥 가기는 아쉽고 기다리자니 기약이 없어 차선으로 찾은 곳은 원조가 아닌 ‘그냥 닭 강정 집.’ 원조라는 타이틀은 없지만 각종 방송에 소개된 집이라는 간판의 내용을 믿고 싶었다. 과감하게 두 마리(한 마리에 1만4천 원)를 주문했는데 바쁜데 카드를 낸다며 주인아주머니가 타박을 한다. 보통 때 같으면 주문을 취소하겠지만 “맛있겠다”를 연발하는 딸아이를 보고 화를 꾹 참고 닭강정 두 마리를 손에 들었다.

살얼음 눈길을 달려 집으로 와 차가운 닭강정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데 맛의 감동은 없다. 배달된 닭강정이 그리울 뿐. 느끼함을 달래려 커피를 마시는데 남편이 “여행은 유명한 곳보다 편안한 곳이 제일”이란다. 아마도 오늘의 인천 나들이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듯. 하지만 오늘 하루를 고스란히 담은 영상을 보며 우리 가족은 감동과 실망 사이에서 활짝 웃는 가족애를 발견할 수 있었으니! 그게 여행의 의미가 아닐는지. 

미즈내일 심정민 리포터 request08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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