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산모의 파란만장 질병 보고서

 

선배들 말이 맞았다. 아이는 신이 선사한 선물, 인생 최고의 역작이다. 하지만 늦은 나이에 임신과 출산을 겪자 몸에 무리가 따랐다. 갑자기 병원 문턱이 가깝게 느껴졌고, 낯설던 보험증권들이 눈물겹게 반가웠다. 이제부터 36세에 자연분만 하고 10개월 남짓 지난 리포터의 파란만장 질병 보고서를 공개한다. 늦은 나이에 출산을 계획하고 있거나 주변에 고령 산모가 있다면 유비무환의 계기로 삼으시길. 하나같이 출산과 함께 덜컥 찾아올 수 있는, 생각보다 흔한 질환이다.

거사는 증거를 남기나니, 치질

 
대부분 출산 뒤에 치질을 겪는다더니 리포터도 예외가 아니었다. 평소 과일을 좋아하고 걷기를 사랑하기에 치질에 대해서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마음대로 되던가. 산모들의 ‘국민병’에 덜미가 잡히고야 말았다.

치질은 항문 점막이 부풀거나 치핵이 빠져나오는 질환이다. 고기를 선호하는 식생활이나 잘못된 배변 습관이 주된 원인. 특히 임신과 출산을 겪은 여자들에게 치질은 아주 ‘가까운’ 질환이다.

임신을 하면 황체호르몬이 많이 분비되고 태아가 장을 누르면서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는다. 여기에 철분제까지 복용하니 화장실 가기가 편치 않을 수밖에. 화룡점정은 출산이다. 항문에 인생 최대의 힘을 가하면서 치질이 심해지게 마련이다. 임신과 출산으로 생긴 치질은 보통 4주가 지나면 좋아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Doctor say  임신 기간과 출산 후, 뜨거운 물에 엉덩이를 담그는 좌욕을 생활화한다. 미즈메디병원 외과 윤민영 전문의는 “좌욕은 항문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해당 부위의 괄약근을 이완시켜 혈액순환이 잘 되도록 돕는다. 다만 원칙을 지켜야 한다. 물의 온도는 40~42도, 시간은 5분 이내가 적당하며 배변 후에 시행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주의할 사항은 항문 건조증이다. 좌욕을 하고 자주 비누로 씻거나 드라이어로 말리면 항문의 정상균까지 소멸시킬 수 있다.

밤중 수유에 심신이 지치니, 대상포진

 
출산 후 100일까지는 산모의 심신이 가장 지치는 시기다. 아기는 (엄마 생각에) 이유 없이 울어대지, 계속 안고 있어야지, 시시때때로 수유해야지, 무엇보다 작은 핏덩이가 어찌 될까 온몸에 불안 세포가 증가해 신경에 날이 선다. 이렇게 엄마의 심신 배터리가 방전되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병마가 대상포진이다. 리포터 역시 갓 3개월을 넘기면서 갑자기 엉덩이가 가려웠다. ‘모기에 물렸나?’ 싶은 생각에 물파스를 연거푸 발랐지만 환부만 늘어날 뿐이었다.

대상포진은 어린 시절의 수두 바이러스가 뇌나 척수의 신경절에 잠복했다가 면역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활동을 재기, 신경을 망가뜨리는 질환이다. 보통 가슴, 복부, 옆구리 등에 수포가 생기는데 시간이 갈수록 띠를 두르며 환부가 늘어나는 게 특징이다. 문제는 신경을 타고 퍼져 ‘살을 에는 듯한’ 고통이 따른다는 것. 얼굴에 물집이 생겨 눈으로 번지면 실명에 이를 수도 있다.

의찬신경통증클리닉 은종신 원장은 “최근 과로나 스트레스, 불규칙한 생활이 늘면서 젊은 사람들도 대상포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임산부나 산모는 아이가 생기면서 호르몬에 변화가 오고, 몸의 균형이 깨지면서 면역력이 약해져 병을 부르기 쉽다”고 설명했다.

Doctor say  예방과 치료는 면역력을 높이기 위한 휴식. 해당 부위에 연고를 바르면서 항바이러스제를 1~2주 복용하지만 휴식이 가장 중요하다. 다시 말해 영양분을 듬뿍 섭취하면서 푹 쉬라는 얘기다. 산모라면 자궁이 원래의 크기로 수축하는 단계, 즉 출산 후 6~8주까지는 만사 제쳐놓고 쉬어야 한다. 몸을 혹사했다가 대상포진에 걸리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임신 초기 3개월까지는 태아의 기형을 유발할 수 있어 약 복용이 어려운데다, 출산 후에는 모유 수유를 어쩔 수 없이 중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육아 정보 찾기에 목을 매니, 시력 저하

늦은 나이에 임신을 하자 <30대에 낳은 아이가 똑똑하다>는 책을 읽으며(아니 위안을 받으며) 잘 키워보리라,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때부터 카페에서 선배들이 추천하는 각종 육아서적의 리스트를 작성해 책을 파기 시작했다. 여기에 인터넷에서 떠도는 육아 정보와 출산 준비물까지 챙겨 보느라 컴퓨터 앞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하루를 분노의 검색질(?)로 시작해서 마무리하는 날이 잦아졌다. 그래서인지 어느 날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남편을 찾았다. “여보, 안경 어딨어? 신문이 안 보여!”

출산을 겪으면서 시력이 나빠졌다고 호소하는 주부들이 많지만, 전문가들은 출산과 시력의 상관관계는 없다고 조언한다. 다만 고령 산모의 경우 노산과 노안이 겹치면서 근거리 시력 저하가 가속될 수는 있다. 즉 노안이 빨리 시작되는 35세에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시력이 ‘훨씬’ 나빠졌다고 느끼는 케이스다. 리포터처럼 말이다. 때문에 고령 산모라면 (특히 출산 용품 고를 때) 분노의 검색질을 하기보다 심신을 편하게 놓아주는 자세가 먼저다.

Doctor say  고령 산모라면 안과적 합병증을 불러올 수 있는 임신성 고혈압을 조심해야 한다. 별다른 원인 없이 몸이 붓거나 단백뇨가 나타난다면 병원에 갈 것. 건양의대 김안과병원 유영주 교수는 “임신성 고혈압은 시각 계통에 영향을 미쳐 시야가 흐려 보이거나 어둠 속에서 빛이 보이는 현상, 암점이 맺히는 증상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이는 고혈압에 의해 망막 혈관이 영향을 받아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문제는 출산 후 대부분 사라지지만, 심한 경우 영구적으로 시력을 잃기도 한다.

아기를 자주 안으니, 허리 디스크

 
갓 낳았을 때 3.5킬로그램에 불과하던 아기는 금세 살이 붙어 9킬로그램이 넘었다. 이 무렵부터 허리에 무리가 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느 날부턴가 오른쪽 허리에서 ‘찌르르’ 전율이 흘렀다. 다리도 가끔 저렸다. 아뿔사, 급성 허리 디스크였다.

알다시피 척추뼈 사이에는 체중과 외부 충격을 흡수하는 디스크가 있다. 문제는 외부 충격이나 압박, 퇴행성으로 인해 디스크가 튀어나오면서 신경을 건드릴 수 있다는 사실. 특히 뼈가 약해진 상태에서 아기를 자주 안거나 집안일을 하는 고령 산모들은 허리에 무리가 가기 쉽다. 리포터는 평소 자세가 좋지 않은데다, 매일같이 아기를 안고 한 시간씩 산책을 즐긴 것이 화근이었다.

은종신 원장은 “허리에 가장 좋지 않은 요인은 체중 증가다. 임산부는 복부에 살이 붙으면서 S자였던 척추에 무리가 따르기 시작한다. 출산 후에는 앞으로 숙여서 아기를 안는 일이 잦아지면서 척추 건강에 빨간 불이 켜진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임신과 출산으로 생긴 급성 디스크는 아이를 낳고 두 달 남짓 지나면 열에 여덟은 자연히 낫는다. 문제는 나머지 20퍼센트다.

Doctor say  허리 건강의 핵심은 바른 자세다. 체중 증가와 출산을 겪어야 하는 고령 산모라면 더욱이 자기 자세를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은종신 원장은 “50킬로그램의 주부라면 디스크에 가해지는 중량은 서 있을 때 50, 앉아 있을 때 100, 앉아서 앞으로 숙이면 140 수준이다. 가장 안 좋은 자세는 구부려서 물건을 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책상에 앉아서 목을 빼고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아기를 번쩍 안는 행위 등은 모두 척추 질환을 부르는 나쁜 자세에 속한다. 운동도 빠뜨릴 수 없는 묘약. 몸의 면역력 향상은 기본이요, 염증이 난 디스크를 자가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걷기, 수영, 헬스가 대표적이다.

미즈내일 박지현 리포터 true100@empal.com | 도움말 유영주 교수(건양의대 김안과병원) | 윤민영 전문의(미즈메디병원 외과)·은종신 원장(의찬신경통증클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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