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은 벚꽃 피는 봄의 고장이자 판소리의 고장이다. 현존하는 판소리 여섯 마당 중에서 〈춘향가〉 〈흥부가〉 〈변강쇠가〉가 남원을 배경으로 한다. 그래서일까. 남원에 가면 굳이 공연장과 무대가 아니어도 여기저기서 소리꾼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익숙한 사랑가 한 자락이 귓가를 맴돈다.
 
 
남원은 춘향이의 고향이다. 남원 어느 곳을 가나 온통 춘향 이야기다. 남원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인 광한루(廣寒樓)는 조선 세종 때 황희 정승이 광통루(廣通樓)로 지었으나, 세조 때 정인지가 그 수려한 경치에 반해 달나라에 있는 궁전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에서 이름을 따 광한루라고 고쳐 부른 것이 오늘날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에 관심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광한루는 그저 성춘향과 이몽룡이 처음 만나 사랑이 싹튼 장소고, 동글동글 아름다운 오작교(烏鵲橋)는 춘향과 몽룡이 사랑을 주고받으며 건너던 다리라 그들처럼 오순도순 건너면 부부 금슬이 좋아지고 자녀가 복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더 회자되니 말이다. 
 
만인의 연인, 춘향의 도시 남원
 
이왕 돌아보는 김에 춘향의 흔적을 따라 가보자. 광한루원에 가면 광한루를 중심으로 춘향사당, 완월정, 춘향관, 월매집, 춘향 그네가 있고 요천 건너편에는 남원의 명물 ‘춘향테마파크’가 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 세트장을 비롯해 〈춘향전〉을 테마별로 재현한 공간이다. 고증을 거쳐 완성된 동헌, 관아, 내아, 월매집, 부용당, 옥사정을 비롯해 조선 중기 춘향이 살던 남원 고을 곳곳에 〈춘향전〉의 장면을 모형으로 만들어놓았다. 
 
게다가 주말이면 신관 사또 부임 행차를 재현해 떠들썩한 잔치판이 벌어진다. 〈춘향가〉는 또 어떠한가. 판소리의 백미(白眉)이자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극적이며, 완결성이 높은 예술 작품으로 소리가 있는 장소에는 당연히 〈춘향가〉가 불리고, 소설이나 창극 혹은 영화로 수없이 각색되었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 
 
〈춘향가〉의 사랑가 중 한 대목인 이 구절은 누구라도 한번쯤 접했을 것이다. 춘향제 중 미스춘향선발대회를 보노라면 눈앞에 춘향이 여러 명이 왔다 갔다 하니 춘향은 이야기 속 인물이 아니라 실존 인물로만 느껴진다. 
 
 
남원이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여인 
 
춘향의 흔적을 따라 거닐다 보면 광한루를 배경으로 활동한 또 다른 여인이 생각난다. 그 여인은 노래를 아주 잘했다. 특히 〈춘향가〉를 잘 불러 많은 사람들의 박수 속에서 수없이 〈춘향가〉를 부른 여인이다. 그녀의 이름은 이화중선(李花中仙, 1898~1943). 일제강점기의 판소리 명창으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지만, 이제는 사람들에게서 점점 잊히고 있다. 
 
여기서 잊혀가는 여인, 이화중선의 삶을 잠시 돌아보자. 이화중선은 갈빗대 하나가 없는 미숙아로 태어나 이름 없이 ‘이년’이라 불렸다. 세 살이 되던 해 어미를 잃고 친척 집을 전전하다 술집 부엌데기가 되었다. 거기서 어깨너머로 소리를 배웠고, 한량들의 눈에 띄어 잡가꾼(사당패) 김준팔에게 민요를 배우다가 장득진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그러다 남원 권번에 입적해 ‘화중선’이란 이름을 얻었다. 해당화처럼 피 끓듯 붉고 수선화처럼 청초한 꽃이 되라는 의미였다. 화중선은 광한루 앞마당에 살면서 광한루 옆 뜰 저편의 권번으로 출퇴근했다. 한마디로 기생이 된 것이다. 
 
〈춘향가〉를 부른 판소리꾼 이화중선 
 
이화중선은 박색(薄色)이었으나 투명하게 맑은 음색, 높고 어려운 대목도 힘들이지 않고 가뿐하게 넘는 목구성, 거침없는 창법으로 쉬우면서도 아름답고, 고우면서도 단아한 소리를 했다. 인기를 얻던 이화중선은 1928년, 빅타레코드에서 ‘추월만정’ ‘심청이 선인 따라가는데’를 유성기 음반에 취입해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창극 전집 음반 4벌, 독집 유성기 음반 70여 장을 남겼으니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대기록이다. 
 
사람들은 이화중선의 소리가 빈 갈빗대에서 나온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삶은 소리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술집 부엌데기로 배운 소리가 전 재산이니 누구의 부인으로, 누구의 첩으로, 권번의 기생으로 복잡한 인생을 살았고, 기저귀 한 번 갈아주지 않은 의붓어미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생 동안 소리를 했다. 인기가 많아 음반을 많이 팔았고 끝없이 공연을 했지만, 유랑 극단 단원이든 기둥서방이든 가족이든 그녀에게 의지해 생계를 꾸리고 한몫 챙겼다. 그녀에게 부와 호사는 없었다. 한 많은 이화중선은 일본에서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배가 전복되어 익사한다. 항해 중인 연락선 이등실에 누워 있다 조용히 갑판으로 올라가 바다로 뛰어들어 수중고혼(水中孤魂)이 되었다고도 한다. 이때 이화중선의 나이 46세였다. 
 
서정주 시인은 그녀를 두고 ‘하늘 아래서 제일로 서러웠던 노랫소리를 하다가 간 사람’이라고 했다. ‘하늘은 그녀에게 아름다운 목소리 하나만 주고 다른 복은 주지 않았다’고도 했다.
 
허구지만 실제 같은 여인 춘향과 실제지만 허구 같은 여인 이화중선, 미색이 뛰어난 춘향과 박색 이화중선,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춘향과 눈물 나도록 고단하게 산 이화중선, 기생의 딸 춘향과 기생 이화중선, 사또의 아들이자 암행어사의 연인인 춘향과 남편 복이 없는 이화중선, 해피엔드의 주인공 춘향과 그 반대의 이화중선, 끝없이 사람들에게 불린 <춘향가>의 주인공 춘향과 〈춘향가〉를 끝없이 부르던 이화중선…. 같은 듯 다른, 다른 듯 같은 두 여인이 그렇게 남원 광한루와 연을 잇고 있다.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잎과 여류 작가
 
여인들의 이야기가 바람결에 흩날리는 봄날의 남원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특히 남원 요천변은 6킬로미터 구간에 벚나무 1천300여 그루가 있어, 해마다 봄이면 이몽룡을 바라보던 성춘향의 뺨처럼 분홍빛 수줍음을 뽐낸다. 하지만 벚꽃의 매력은 만개할 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연하디연한 연둣빛 새싹이 나오기 시작하면 하나 둘 꽃잎이 떨어지는데, 때마침 바람이라도 불면 청순하고 가녀린 벚꽃 잎은 함박눈이 쏟아지듯 날리다 바닥에 흩뿌려진다. 
 
저도 모르게 문학소녀가 되어 ‘혼불문학관’으로 발길이 향한다. 〈혼불〉은 여류 작가 최명희가 1980년 4월부터 1996년 12월까지 17년 동안 혼신을 바친 대하소설로, 20세기 말 한국 문학의 새 지평을 연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문학관은 ‘혼불마을’로 지정된 사매면 서도리에 있는데, 〈혼불〉의 배경이자 소설에 등장하는 청암 부인의 생가가 있는 곳으로 문학관에는 작가의 집필실과 취재 수첩, 육필 원고 등이 전시되었다. 문학관 주위에는 소설의 배경이 된 종가, 청호저수지, 노적봉 등이 있어 〈혼불〉의 감흥을 느낄 수 있으며, 특히 벚꽃이 만개한 서도역은 고즈넉한 분위기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곳이다. 
 
소설가 김동리 선생은 “옛 고을 봄 늦어 찾아드니 / 광한루 숲 속에 있고 오작교 물 위에 떴네… 이별의 오리정이 한에 겨워 흐느낀다”고 남원을 회고했다. 춘향과 이화중선, 최명희 작가까지 남원에 깊은 방점을 찍은 여인들의 숨소리에 남원의 봄날이 더욱 짙어진다.  
 
글·사진 이동미(여행 작가)
저작권자 © 넥스트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