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방송가 시상식장에선 작은 가십거리가 있었다. SBS 윤영미(48) 아나운서가 후배 아나운서의 수상 소감에 이별 멘트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는데, 그것이 대중의 입방아에 올랐다. 즉 프리랜서 선언. 사실 요즘 아나운서의 프리랜서 선언이야 그리 주목 받을 일도 아니다. 어느 정도 대중의 인기를 끈다 싶으면 하나 둘 독립해 케이블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지 않은가. 그다지 화젯거리도 아니건만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인사이동에 불만을 품고 사퇴한 것이라는 둥 이러쿵저러쿵 수군거렸던 것. 그러고 보니 그의 나이가 꽤 많다. 1962년생, 한국 나이로 쉰이다. 분명 한창 주가를 올리는 시기는 아니다. 
 
“아나운서 정년이 58세니까 앞으로 10년이 남았죠. 그런데 남은 기간 관리직에 머문다는 게 너무 싫었어요. 심지어 사장이 된다 해도 말이죠. 현장을 떠난다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하거든요.”
 
사실 고민은 5년 전부터 했고, 내린 결론은 2011년을 기념하자는 것. 일단 50세, 거기다 아나운서로 입성한 1985년부터는 25년이 흘렀고, 처음으로 방송반 활동을 시작한 초등학교 3학년 이후론 40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인생에 한 획을 긋는 해랄까, 요모조모 의미가 풍부했다. 그렇게 새롭게 도전장을 내민 곳이 홈쇼핑 MC. 다소 색다른 분야다. 
 
“제 목소리가 하이 톤인데다 속도가 빠른 편이에요. 아시다시피 공중파에선 연예 뉴스나 영화 정보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했잖아요. 거기서 선보인 위트 있는 말솜씨가 홈쇼핑 진행자로서 점수를 얻은 겁니다.”
 
출발부터 의욕이 대단하다. 단순한 스튜디오 방송은 거부. 상품 소개 전 산지로 뛰어가 소비자의 눈으로 생산 과정을 확인하고 충분히 경험해본 다음 보다 진솔하게 프로그램을 이끌겠다는 포부다. 그래서 내일은 안동 간고등어와 풍기 사과를 직접 취재하러 경상도로 뜬단다. 
 
도전은 나의 힘,
하고 싶은 것 겁내지 않는다!
 
여기서 잠깐! 그의 변신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남다른 열정, 샘솟는 도전 정신을 뒷받침하는 선행 정보가 필요할 듯싶다. 우선 이력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인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야구 중계 캐스터라는 명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때만 해도 아나운서의 고유 영역은 뉴스 진행과 스포츠 중계가 전부였는데 그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방송, 남들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희소성 있는 분야를 찾았다. 
 
그러다 돌연 야구 캐스터에 도전하기로 결심, 맹렬히 뛰기 시작했다. 투수가 뭔지 포수가 뭔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고군분투한 눈물겨운 준비 과정은 생략하자. 이후 그는 ‘최초의 여자 프로야구 캐스터’라는 타이틀로 1990년대 후반 유명세를 떨쳤다.
 
두 번째 주목할 사례는 고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3학년 이후 쭉 방송반 활동을 해온 꿈 많은 소녀가 어느 날 무심코 청량리역을 지나다 지하철 안내 방송을 하겠다고 역장을 찾아가 떼를 쓰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리고 한 달간의 구내방송. 1980년대 초반의 일이었다. 기록에는 없더라도 국내에서 지하철 역내 방송을 시도한 최초의 여성이지 싶다.
 
마지막으로 이 감수성 풍부한 여성은 대학 진학 사연도 로맨틱하다. 지금은 가톨릭대로 통합된 성심여대 국문과를 나왔는데 그 이유가 오롯이 피천득의 수필 ‘인연’ 때문이란다. 주인공 아사코가 다닌 학교라는 게 전부다. 
 
“사실 저는 지금도 가끔 비현실적이고 감상적인 꿈을 꿀때가 많아요. 하지만 중요한 건 가슴속 울림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하고 싶은 건 겁내지 않고 부딪치는 스타일이에요. 마음이 향하는 대로 움직여야 행복하기 때문이죠.”
 
감성적인 그를 당시 성심여대의 소재지인 춘천이 가만히 내버려둘 리 없었다. 춘천 MBC 아나운서에 응시한 것도 대학 입시와 비슷한 이유. 춘천이란 도시가 선물한 대학 1학년 시절 추억 때문이다. 이처럼 그의 과거는 순간 순간 통통 튀는 낭만과 열정으로 가득했다. 1991년 SBS 개국과 함께 서울로 옮긴 이후론 야구 중계뿐 아니라 각종 오락 프로그램에서 끼를 발산했는가 하면, 드라마에도 종종 출연했다.
 
결혼은 1996년, 30대 중반 넘어 늦은 나이에 했다. 현재 중1·중2 연년생 아들을 두고 있는데, 교육관 역시 자신의 삶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강요가 없는 대신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적극 지원한다는 원칙이다.
 
곧 스피치 전문 컨설팅 회사를 설립할 예정이다. 홈쇼핑 진행과 아울러 오랜 꿈이던 연기에도 도전해볼 생각. 이 모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나 둘 깨달아가기 때문에 가능한 꿈의 목록. 타인의 시선에 갇히지 않고 두려움 없이 미래를 개척해간다는 면에서 그는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바람직한 롤모델이 되고 싶다고 했다.
미즈내일 조미나(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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