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빛이 무르익는 바다를 본 적이 있나요?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물빛과 그만큼 파란 하늘이 따스한 기운을 나누고 흰색과 파란색, 오렌지색으로 예쁘게 칠한 집들이 바닷가 산자락에 그림같이 앉아 있는 곳, 그곳에 바다같이 푸르른 사람이 있답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영웅, 이순신

대한민국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인물은 아마도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아닐까싶다. 몇 년 전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방영될 때 온 국민이 열광했다. 아들놈 역시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드라마를 챙겨 보았고, 시간만 나면 ‘이순신 칼’을 차고 집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이제 봄바람이 살랑대니 그 바람만큼이나 바다가 예쁜 통영으로 이순신 장군을 뵈러 가야겠다.

통영 시내와 근처에도 볼 것이 많지만, 이순신 장군을 뵈러 왔으니 일단 한산도로 향했다. 뱃길로 20여 분 거리의 한산도는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승전지’로 불리는 곳이다.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 본영으로 삼았고, 임진왜란이 언급되는 국사 교과서나 사극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섬이다.

“엄마, 임진왜란은 왜 일어났어요?”

“이순신 장군이 없었으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됐을까요?”

배를 타고 들어가면서 흥분이 되는지 조잘조잘 질문이 많다. 전쟁 이야기는 남자아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니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해주자. 이야기는 조선 침략의 기회를 엿보던 일본이 명나라를 정벌하러 가도록 길을 비켜달라고 요구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를 거절하자 조선 땅으로 쳐들어왔는데, 임진년에 왜군이 일으킨 전쟁이라 해서 ‘임진왜란(壬辰倭亂)’, 7년간 이어졌기에 ‘7년 전쟁’이라고도 한다.

 

극적인 반전과 스릴 만점의 한산대첩!

한산도는 거제시에 딸린 작은 섬으로, 거제도와 통영 미륵도 사이에 있다. 두억리 선착장에 도착하면 통영 앞바다와 맞닿아 있는 제승당 앞쪽 해안선이 말발굽 같기도 하고, 하트 모양 같기도 하다. 두억리(頭億理), 당시 바다에 떨어진 왜군 목이 1억 개가 넘었다 해서 두억리란 이름이 붙었으니 치열한 한산대첩의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임진년에 쳐들어온 일본은 한양, 개성, 평양 등을 파죽지세로 공격해 순식간에 조선 땅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고, 전라도는 수륙병진으로 함락할 예정이었다. 하여 일본 수군이 군함 100여 척을 이끌고 가덕도와 거제 부근에 전진 배치되면서 통영 쪽으로 접근해오고 있었다.

미륵도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통영
선조 25년 7월 8일! 조선과 왜군의 군함 130여 척이 몰려든 한산 앞바다는 강한 동풍이 불며 격랑이 일었다. 일본 수군이 조선 수군을 쫓아 쏜살같이 휘몰아오고 있었다. 한산도와 미륵도 중간쯤, 이순신의 사령선에서 “전 선단은 즉각 대회전하라”는 진군의 고각과 함께 북소리가 울렸다.

“학익진(鶴翼陣)을 펴 적의 선봉선을 격파하라!”신호에 따라 조선 군선단은 함성을 지르며 뱃머리를 180도 전환해 적을 V자로 포위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왜선들이 당황하기 시작했고, 유황과 염초를 태운 연기를 토해내며 철갑을 두른 거북선이 학의 머리 부분에서 나와 전광석화처럼 왜군을 무찔렀다. 하루 종일을 싸워 왜선 73척 중 59척을 수장했고, 왜군 9천 명이 한산도에서 사망한 것으로 일본의 사료(兵糧調發件記)에 기록되었다. 이순신의 한산도대첩은 일본 수군에 대한 조선 수군의 승리뿐만 아니라 7년 전쟁의 흐름을 바꿔놓은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해전사에 빛나는 세계 3대 해전 중 하나가 되었다.

 

생즉사 사즉생을 되뇌며 절대 고독을 감내하던 곳

영화의 클라이맥스처럼 스릴 넘치는 상황에 아이는 손에 땀을 쥐고, 긴장된 볼은 발갛게 달아오른다. 드디어 제승당(制勝堂)이다. 한산도 유적지에는 제승당을 비롯해 영정을 모신 충무사, 수루, 한산정을 비롯해 유허비와 송덕비, 비각 5동과 5개 문(충무문, 대첩문, 홍살문, 외삼문, 내삼문)이 있다. 이순신 장군이 삼도 수군을 지휘하던 제승당은 ‘승리를 만든다’는 뜻이니 너무나 적절한 이름이다.

“한산(閑山)셤 달 밝은 밤의 수루(戍樓)에 혼자 안자 큰 칼 녑희 차고 깁흔 시름 하는 적의 어듸셔 일성호가(一聲胡茄)는 남의 애를 긋는이”

이순신 장군의 시에 등장하는 수루는 제승당 바로 옆에 있다. 흔히 수루(水樓)로 짐작하는데, 지킬 수를 쓰는 수루(戍樓)임을 염두에 두자. 물 맑은 통영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오지만, 밖에서는 보이지 않으니 이 또한 이순신 장군의 혜안이 아닐 수 없다. 이곳 한산도에서 선조 26년부터 30년까지(1593~1597년) 지내며 <난중일기> 의 총 1천491일 중 1천8일의 일기와 여러 편의 시를 썼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도 자존을 지키던 장군의 모습에 더욱 숙연해진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을 고뇌하고 시름하며 혼자 감내해야 하는 극한 상황, 장수의 절대 고독과 소리 없이 싸웠으리라.

 

이순신 밥상으로 이순신 체험하기

이번엔 미륵도로 가보자. 미륵도는 통영대교와 충무교로 이어졌는데, 미륵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한려수도의 풍광은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답다. 산 정상에 오른다고 해서 겁먹을 필요는 없다.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를 이용해 상부 정류장에서 내리면 정상까지는 10분 거리. 길목에 한산대첩, 당포해전 전망대가 있어 해전의 현장을 조망할 수 있고, 정상에 오르면 통영항과 시내, 망망대해와 올망졸망 떠 있는 섬들의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이제 슬슬 출출해지기 시작했다. 이곳까지 왔으니 이왕이면 이순신 장군과 연관된 먹을거리는 없을까? 그런 때 통선재에 가보자. 이순신 장군을 비롯해 조선 수군들이 즐겨 먹은 음식 7종 77가지 중 이순신 밥상, 통제사 밥상, 장국밥, 통영골동반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수군이 훈련할 때 먹은 음식과 백의종군할 때 먹은 음식, 이순신 장군이 모친상을 당했을 때의 소상 등 <난중일기>와 조선 중기 문헌을 근거로 차려졌는데 고추와 감자, 고구마, 양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눈길을 끈다. 임진왜란 당시 고추 등이 아직 조선 땅에 아직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파, 산초, 마늘, 된장, 통영의 신선한 제철 해산물과 해조류 등 천연 재료를 이용해 맛을 내니 그야말로 ‘참살이 건강식’이다.

이중 놓쳐서는 안 되는 음식이 좁쌀죽이다.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 장군이 곽란(藿亂)을 겪거나 몸의 불편함을 언급하는 내용이 자주 나오는데, 곽란은 급성위장병이다. 임진왜란과 백의종군을 겪으면서 신체적·정신적으로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생긴 병이다. 곽란이 일어나면 밤새 구토에 시달리며 인사불성이 되었다 한다. 이때 먹은 음식이 좁쌀죽이니 장군의 고뇌와 아픔을 되새길 수 있는 음식이다.

이순신 장군은 전쟁터에서 칼을 들고 호령하며 싸움만 잘한 사람이 아니다. 한산섬 수루에서 죽음을 생각하며 시를 짓고, 좁쌀죽으로 몸과 마음을 달래며 시기와 불신, 열악한 환경에 굳건히 버텨냈다. 처절하면서도 강단 있고 부드러우면서도 소신을 지킨 아름다운 사람, 이순신을 통영 앞바다에서 만났다. 우리의 아들들 또한 단단하고 아름답게 자라길 바라며 작고 통통한 손을 꼭 쥐어본다. 


글·사진 미즈내일 이동미(여행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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