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들의 오페라 도전기를 다룬 케이블 TV 프로그램 <오페라스타 2011>이 열띤 관심 속에서 종영됐다.
과연 <오페라스타 2011>이 낳은 최고의 스타는 누구일까? 1위를 차지한 테이? 아깝게 2위를 기록한 JK김동욱? 아니다.
‘제2의 앙드레김’이라 불리며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멘토 서정학(성악가ㆍ서울종합예술학교 음악예술학부 교수)씨야말로 최고의 스타다. 지금 인터넷에는‘서정학 나이’‘서정학 결혼’‘서정학 목소리’등의 검색어가 등장하고 있다.
자, 지금이야말로 <미즈내일>이 그를 만날 때다. 그를 만나 궁금증을 하나씩 풀기로 작정했다.

 

 
인터뷰 문의 차 그에게 전화를 건다. “네~ 서정학입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굵고 감미로운 목소리에 순간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오페라스타 2011>에서 “고마워~요”라는 말 한마디로 제2의 앙드레김으로 등극한 그의 목소리는 마치 노래를 부르듯 밝고 호의적이다.

약 일주일 뒤, 스튜디오에서 만난 그는 데님 팬츠에 흰 셔츠, 블랙 재킷 차림이었다. TV에서 본 모습보다 훨씬 젊고 멋스럽다. 하지만 무대 위의 연주복 준비도 부탁한 터라 ‘혹시 다른 의상은 없냐’ 물으니, 그의 대답이 심플하다. “의상은 충분해요. 항상 차에 의상 몇 벌은 가지고 다니죠. 혼자 사는 남자의 기본이죠!” 첫째 궁금증, ‘서정학 결혼’에 대한 궁금증이 풀린 셈이다.

궁금증 ❶“결혼은 하셨나요?”
인터뷰를 앞두고 자료 검색 차 통합 검색창에 그의 이름 세 글자를 쳐본다. 곧장 쏟아지는 수많은 검색어들, ‘서정학 나이’ ‘오페라스타 테이 듀엣’ ‘조수미’ ‘서정학 결혼’ ‘바리톤 서정학’ ‘서정학 목소리’ ‘서정학 고마워요’ ‘서정학 교수’… 모두 그를 풀어내는 키워드다. 리포터도 여성인지라 ‘서정학 결혼’이라는 키워드부터 클릭해본다. 하지만 별 소용이 없다. 그의 결혼 여부에 대한 얘기는 한 줄도 찾을 수 없다.

“당연하죠. 왜? 아직 와이프가 없으니까요! 부모님은 분당에 사시고, 저는 서초동에 혼자 삽니다.”

그의 말마따나 차에 가보니 트레이닝팬츠부터 연주복까지 뒷좌석 손잡이에 조르르 걸렸다. 트렁크를 여니 이번엔 신발. 패셔너블한 구두부터 스니커즈, 정장 구두까지 단정하게 놓였다. 평소 그는 트레이닝복 차림을 즐기는데, 행여 곧장 자리를 이동하거나 옷차림을 바꿔야 할 때를 대비해 항상 차에 옷 몇 벌을 싣고 다닌단다. “혼자 사는 남자의 차 안이 이렇습니다.” 그가 친절히 부연 설명을 해준다. 그렇다면 능력 있고(그의 화려한 프로필을 확인하시길), 핸섬하고, 매너까지 갖춘 그가 싱글인 이유는?

“지금은 때가 아닌 거 같아요. 누군가를 사랑해 결혼까지 해서 챙겨줄 여력이 없다고 할까요? 게다가 한번 누구한테 빠지면 푹 빠지는 타입이라 더더욱 안 돼요. 결혼은 좀 나중에….”

궁금증 ❷“목소리는 어릴 때부터 그랬나요?”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중저음의 목소리. 호흡법부터 발성법까지 다른 성악가라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평상시 그의 목소리는 여느 성악가들과 사뭇 다르다. 그의 목소리에는 바리톤답게 소리의 공명이 느껴진다. 마치 노래를 부르듯, 리듬을 타는 듯한 말투는 또 어떤가.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목소리가 변했죠. 그런데 그때부터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나이 들고 10년 넘게 외국 생활도 하면서 목소리가 달라진 거 같아요. 또 성악가라는 직업상 3~4가지 외국어로 연주하면서 입 안 구조도 조금씩 바뀌더라고요.”

세월이 흐르면 외모가 바뀌듯 목소리도 나이를 먹는다는 게 그의 말. 30대 중반에 목소리가 가장 좋다면 40대에는 그 목소리를 유지하는 기간이고, 이후는 스스로 얼마나 컨트롤하고 아끼느냐에 따라 목소리가 달라진단다.

하지만 그는 이 매력적인 목소리 때문에 어릴 적 친구들에게 꽤나 놀림을 받았단다. 중학교 3학년 때는 한창 유행하던 밴드를 결성해 기타 연주를 하기도 했다고. 정작 그가 자기 목소리에 귀 기울인 것은 고등학생 때부터란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우연히 첫 무대에 오르면서 그는 음파의 울림이 라는 매력에 빠져들었단다. 결국 목소리가 그를 성악가의 길에 올려놓은 셈이다.

궁금증 ❸“성악은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그가 자기 목소리에 귀 기울인 건 고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다. 여느 고교 시절이 그러하듯 그 역시 고교 때 첫사랑에 빠졌는데, 그 대상은 음악 선생님이었단다. 그의 남다른 음성을 눈여겨본 음악 선생님은 합창경연대회를 앞두고 그에게 솔로 곡을 제의했고, 그리하여 그는 생에 첫 무대에 오른다.

“당시 노래가 ‘농부가’였어요. 그때 노래를 부르며 무언가가 나를 감싼다는 느낌을 받았죠. 그 음악의 울림이 나를 꽤 매혹한 거 같아요. 그 울림 속에 맴도는 강함과 즐거움, 애통함이 참 좋았어요.”

그의 무대는 대성공이었고, 합창경연대회 직후 음악 선생님은 그의 아버지를 찾아가 ‘성악을 전공시키면 어떻겠냐’고 제의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가 성악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은 건 입시를 코앞에 둔 고등학교 3학년 가을 무렵부터다. 그 역시 성악가의 길을 걸으리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는 성악가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고고학자가 되었을 거라 말한다). 그해 9월에 성악과 진학을 결심한 그는 달랑 두 달 간 레슨을 받고 서울대학교 성악과에 입학한다. 타고난 목소리와 성량이 그의 재산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목소리를 놓고 ‘천 명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라 평했다.

 
궁금증 ❹“화려한 세계무대를 뒤로하고 국내로 돌아온 이유가 뭐죠?”
“전 가방 끈이 짧아요. 대학교 2학년 때 데뷔해 서너 달 해외에서 연주하고, 한두 달 들어와 수업 듣고 하면서 학교를 다녔죠. 그러다 보니 어릴 때는 책도 많이 못 읽었어요.” 그의 겸손한 멘트다. 그로 말하자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과 오스트리아 빈 국립극장 무대에 선 최초의 한국인 남자 성악가이자 세계적인 바리톤.

대학교 2학년 무렵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에서 후원하는 아시아 오디션에 나선 그는 당당히 한국 대표로 뽑힌다. 3차까지 치러진 오디션에서 그만 살아남은 것이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물한 살이었다. 이후 그랜드파이널에서 1등을 거머쥔 그는 세계적인 클래시컬 매니지먼트사인 콜롬비아 매니지먼트와 계약을 하며 1997년 세계무대에 데뷔한다. 그의 무대를 두고 뉴욕 타임스는 ‘관객을 사로잡는 강렬하고 세련된 음색으로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무대를 선사하는 성악가’라고 평했다. 이후 그는 세계무대를 주름잡으며 세계적인 성악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스물다섯 살 무렵 그의 1회 연주비가 무려 1만 달러였다니, 무대에서 그의 입지를 가늠케 한다. 하지만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는 게 그의 얘기.

“문득문득 혼자 외줄 타기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죠. 이번 연주를 못하면 다음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는 무언의 압력을 느꼈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2004년 돌연 귀국한다. 느닷없는 친형의 사망 소식과 자식을 잃고 몸져 누우신 부모님 걱정에 그는 3년간의 선 계약 스케줄의 페널티까지 물어가며 귀국길에 올랐다. 하지만 한국에서 활동은 보다 힘들었단다. 9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연주 시즌인 외국과 달리 국내에서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는 1년에 4회 미만. 결국 그는 성악 레슨을 해가며 가족을 부양하고, 무대 컴백을 준비했단다. 언제가 무대에 오를 날을 위해 써놓은 레퍼토리만 해도 150여 장.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낸 뒤, 그는 다시 무대에 올랐다.

궁금증 ❺“<오페라스타 2011> 이후 달라진 점 없나요?”
“많이 알아보고 궁금해하시더라고요~.”
‘앙~교수’라는 별명도 생기고, 최근 들어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도 달라진 일상이다. 잡힌 인터뷰만 해도 10곳이 넘는다니, 그는 단연 핫 피플이다. 하지만 그가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것은 6주간 대중가요와 오페라의 교집합을 찾아내듯 그동안 오페라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 오페라의 ‘희로애락’을 함께 느끼게 했다는 점이다.

“제가 무대에 오를 때마다 첫인사를 드리며 생각하는 게 관객과 연주자의 교집합이죠. 사랑이 합집합이 아닌 교집합으로 이루어지듯, 관객과 연주자 역시 서로 느끼는 교집합이 중요해요. 책이나 영화에서 본 것과 다른, 직접 체험한 감성을 나누는 거죠. 그것이 노래라는 연주로 관객들과 이심전심이 되는 것 같아요.” 그사이 또 다른 욕심도 생겼다. 행여 <오페라스타 2011> 시즌 2가 시작된다면 이번엔 20대 스타들이 오페라에 도전해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음악이 함께 나누고 교감하듯, 누구와도 교감이라는 교집합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미즈내일 문영애 리포터 happymoon30@naver.com
사진 김재윤

 

성악가 서정학은
서울대학교 성악과ㆍ미국 커티스 음악대학 졸업. 꿈의 무대라 불리는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과 유럽 5최고의 무대로 불리는 빈 국립 극장 무대에 오른 한국 최초의 남자 성악가다. 1996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콩쿠르 우승에 이어 1997년에는 미국음악협회 콩쿠르 대상, 올해의 음악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즐겨 듣는 대중음악은 1930~1950년대 올드 팝. 프랭크 시나트라, 퀸, 비틀스를 비롯해 배호 선생의 음악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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