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햇살과 차갑지 않은 바람… 반나절쯤 머리를 비우고 천천히 동네 한 바퀴 걷기 좋은 계절이다. 빽빽한 아파트 숲을 벗어나 색다른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최근 주목받는‘서촌’을 소개한다. 경북궁의 서쪽에 위치해 이름 붙었다는 서촌, 그곳의 봄날은 더없이 따사롭다.

 
경복궁 북쪽과 서쪽, 두 공간의 차이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 내린다. 어느 쪽으로 갈까? 나가는 방면에 따라 당신의 시간은 달리 흐를 것이다. 5번 출구로 나가 왼쪽에 광화문을 지나 직진하면 삼청동 길에 이를 것이며, 2번이나 3번 출구로 나가 길을 따라 걸으면 통인동과 청운효자동에 닿을 것이다. 그 사이에 경복궁이 자리 잡고 있다. 서울의 대표 명소가 된 삼청동과 가회동, 계동으로 이어지는 북촌 산책이 식상하다면 과감히 경복궁 건너편의 서촌으로 향해보자. 북촌과 사뭇 다른 시공간이 느껴진다.

인왕산의 동쪽과 경복궁의 서쪽 사이에 서촌은 청운효자동과 사직동 일대를 아우르는 지역으로 효자동부터 청운동, 통인동, 옥인동, 체부동, 누상동, 누하동, 신교동, 궁정동이 모두 속한다. 북촌의 시간이 옛것을 세련되게 꾸민 현대라면, 서촌은 투박하게 남아 있는 옛것과 세련된 현대가 스스럼없이 공존한다. 유난히 골목골목 길이 이어진 것도 서촌의 특징이다. 특히 골목마다 작은 갤러리가 자리 잡고 있는 것도 특별하다.

서촌은 조선 시대부터 유명한 예술가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추사 김정희, 겸재 정선에 이어 근대에는 화가 이중섭, 시인 윤동주, 이상 등이 서촌 주민이었다. 골목 사이사이에 예술가들이 살던 집을 마주할 수 있는 것도 서촌만의 매력이리라. 골목골목 길을 헤맬 수도 있으니 종로구청 홈페이지에서 지도부터 확인하고 출발하는 게 낫다.

미즈내일 문영애 리포터 happymoon30@naver.com

 

서촌에서 즐길 것

서촌의 브런치!‘메밀꽃필무렵’
효자동길 중간쯤 위치한 이곳은 ‘메밀꽃필무렵’이라는 간판처럼 메밀 전문 음식점이다. 세련된 골목 사이에 떡하니 버틴 1970년대풍의 복고풍 간판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메뉴도 메밀부침(7천 원), 메밀만둣국(7천 원), 메밀칼국수(6천 원), 만두칼국수(7천 원), 도토리묵(8천 원)이 전부다. 메밀로 만든 칼국수 하나에 도토리묵 하나를 주문했다. 들깨 가루에 무친 도토리묵이 개운하면서도 맛깔스럽고, 메밀 반죽으로 만든 칼국수는 어찌 그리 부드러운지 마치 국물을 마시는 양 후루룩 넘어간다.

알고 보면 경복궁 일대의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다. 양도 푸짐해 셋이 가면 반드시 2인분만 시킬 일이다. (문의 02-734-0367)

창성동의 카페‘고희’
서촌이 뜨기 전부터 커피 마니아들 사이에서 입소문 난 이곳은 갤러리 카페다. 노란색 출입문에 여기저기 자리한 다양한 작품들, 커피 잔부터 컵받침까지 허투루 볼 일이 아니다.

커피를 뜻하는 일본어를 상호로 사용했지만, 독특한 작품과 벽 색깔에서 남미의 분위기가 풍긴다. 이곳에서는 커피 외에도 맛난 메뉴가 많은데, 특히 컵케이크가 소문났다. 커피 메뉴는 5천~8천 원대.

빵과 소시지, 베이컨 등으로 만든 브런치 메뉴도 인기다. 초행길이라면 찾기가 쉽지 않으니 길을 찾다 잘 모르겠다 싶으면 반드시 전화로 확인해볼 일이다. 참고로 수년 전부터 이곳을 찾은 리포터 역시 찾을 때마다 길을 헤매고 있다.(문의 02-734-4907)

 
서촌 전망을 한눈에! 청운공원
고희에서 나와 다시 창의문길로 들어서 걷다 보면 한적한 언덕길이 나오는데, 그 길을 따라 걷다 왼쪽 자하문로 35길로 들어서면 100미터도 못 가 청운공원이 있다.

청풍계곡과 백운동의 이름을 따 만들었다는 청운공원은 윤동주 시인의 언덕으로도 유명하다. 뒤로는 부암동, 앞으로는 서촌 일대가 펼쳐져 풍광은 물론 서촌 전망대로 찾기 더없이 좋은 곳. 날씨가 좋은 날에는 서울 일대가 눈앞에 펼쳐질 만큼 전망이 그만이다. 인왕산 산책로 아래에 위치해 맘만 먹으면 언제고 쉽게 인왕산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것도 특징. 걷기에 자신이 없다면 아예 처음부터 버스(0212, 1020, 7022번)를 이용하는 게 낫다. 자하문고개를 지나 청운공원 진입로에 내리면 된다.

소문난 효자동 떡볶이 맛‘통인시장’
청운공원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오면 다시 자하문길과 마주한다. 그 길을 따라 쭉 내려오다 보면 오른편에 통인시장과 맞닿는다. 대로변에 자리 잡은 통인시장은 ‘효자동 기름 떡볶이집’이 있는 곳으로 잘 알려진 시장. 정확한 이름은 ‘효자동 옛날떡볶이’(02-735-7289)로, 1인분 3천 원. 시장 떡볶이로는 비싼 편이지만 항상 손님들로 북적인다.

떡볶이는 매운맛과 간장 맛 두 가지가 있으며, 매운맛은 먹을수록 더 매우니 마음을 단단히 먹는 게 좋다. 인심도 좋아 종종 서비스도 맛볼 수 있다고. 떡볶이 외에 녹두빈대떡(4천 원), 전(7천 원)도 있다.

 
사직동의 커피 집‘커피한잔’
통인시장을 지나 필운동 배화여자대학 앞까지 골목을 따라 올라보자. 다시 배화여고에서 매동초등학교로 향하다 보면 초등학교 맞은편에 영화 세트장을 연상시키는 복고풍 가게들이 있다. 왼쪽에 자리 잡은 곳이 ‘커피한잔’이다. 애초 문방구였던 곳을 2년 전 카페로 개조한 것.

오래된 LP판부터 고물상에서도 보기 힘들 것 같은 소품들까지, 카페 안은 정겹다. 한참을 둘러본 뒤에야 숯불로 커피 볶는 집이라는 푯말이 눈에 띈다. 푯말 안쪽에 정말 숯불로 커피를 볶는다는 로스팅 기계가 떡하니 놓였다. 매일 이 기계로 커피를 볶아 골목 안이 커피 향이 가득하다는데. 소문처럼 커피 맛도 일품이다. 최근엔 리포터처럼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오는 손님들도 늘었다고.(문의 02-764-6621)

특별한 공간‘사직동 그 가게’
커피한잔 바로 옆에 위치한 ‘사직동 그 가게’는 티베트를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운영하는 카페다. 대표 메뉴는 인도식 밀크티 ‘짜이’. 안쪽으로 들어서면 작은 공간 가득 놓인 수공예품들이 눈길을 모으는데, 모두 티베트 난민여성작업장에서 만든 것이다. 수공예품 가격대도 그리 높지 않으니 한번쯤 구경 삼아 들를 만한 곳이다. 카페답게 커피부터 디저트까지 여러 메뉴를 판매하지만, 역시 이곳을 찾았다면 짜이 한잔을 맛보자. 부드러운 밀크티와 알싸한 생강 향이 어우러진 짜이는 3천500원, 차가운 짜이는 4천500원이다. 사직동주민센터에서 배화여대 쪽으로 향해 걸어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월요일은 정기 휴무.(문의 070-4045-6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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