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시대’의 키워드는 창의력이다

 
디자인 영재 교육기관 교육 법인 블루닷창의성연구소의 구동조(64) 이사장을 만나기 위해 평소와 다른 교통수단을 선택하기로 했다. 이유는 〈다섯 살 두뇌력이 평생 학습을 결정한다〉의 제안에 따른 것. 많은 것을 보고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고 늘 하던 평소의 습관 대신 다른 시도를 해보는 것이 두뇌의 시냅스 형성을 활발하게 한다고 책은 권한다. 시도는 가상했으나 결과는 당혹스러웠다. 버스에서 내려 연구소를 찾기까지 잠시 거리를 헤매는 과정에서 두 발이 혹사당했으니 말이다. 평소 잘 신지 않던 뾰족구두까지 신고 고생이 말이 아니다. 역시 두뇌 개발은 아줌마가 넘봐서는 안 되는 영역일까? 이곳의 커리큘럼이 중학생까지인 것도 같은 이유인지 궁금했다.

 

디자인계의 권위자,
창의 교육에 뛰어들다
체신부(현 정보통신부), 한국가스안전공사, 한국도로공사, 서울랜드… 우리에게 친숙한 CI를 제작한 구동조 이사장의 디자인 산물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이 많다. 동덕여대 디자인대학 학장과 대학원장을 역임하기도 한 그는 재임 당시 대학의 특성화 교육을 강조했다. 그 대학만의 능력을 전문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1995년 단과대학을 청담동으로 독립시킨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좋은 디자인이 되려면 시장과 소비자, 업계를 알아야 한다”는 구 이사장의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교수로서, CI 제작자로서 아쉬울 것 없는 인생행로를 걷던 그가 돌연 학교를 떠나 창의 교육에 뛰어든 이유가 궁금했다.

“총장이 특1호봉을 받을 때 특3호봉을 받았으니 많은 편이었지요.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 대학교수가 된 것은 아닙니다. 훌륭한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 교수직을 택했지요. 디자인을 통한 결과물을 내는 것은 나 혼자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교육을 하면 나처럼 할 수 있는 인재가 많아지니까요. 생각의 깊이와 크기를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그것은 어린이 창의 교육을 통해 가능한 일이라 판단했습니다.”

구 이사장이 교수직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그의 장모가 “학교를 그만두면 다시는 안 보겠다”고 했을 정도다.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터. 그러나 그는 “머리를 잘 쓰는 사람을 많이 생산하는 게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믿었다. 대학 대신 어린이 창의 교육을 택한 것도 창의적인 뇌를 확장할 수 있는 시기를 중학생까지로 보기 때문.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 역시 같은 이유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IQ가 제일 높아요. 유대인보다 높죠. 공부 또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합니다. 하지만 유대인이 노벨상을 170번 이상 받는 동안 우리가 그렇지 못한 것은 머리를 쓰는 법을 가르치지 않아서입니다. 지금껏 결과 중심의 교육에만 치중해왔기 때문이죠.”

산업화 시대에 100점을 맞도록 하는 교육이 경쟁력이 있었다면, 꿈과 감성이 지배하는 21세기는 창의력을 키워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스마트폰을 쓰는 요즘도 수첩에 지인들의 연락처를 적는다. 단순한 것은 편리할 수 있지만 뇌 발달에는 치명적이라 믿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창의력이다
‘예쁘게, 아름답게, 멋지게’ 하는 것이 디자인이라는 생각은 디자인을 잘못 이해한 결과다. 많은 사람들이 외관을 좋게 하는 것으로 디자인을 인식하는 데는 우리나라에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을 당시 학과명에 영어를 쓰지 못하도록 한 것도 한몫했다.

‘응용미술’ ‘상업미술’이라는 생소한 신조어가 나온 것도 그 때문. 구 이사장은 “디자인은 미술 실기가 아닌 아이디어”라고 말한다. 자동차 디자인을 한다면 문을 여닫을 때의 소리가 인간을 위한 것인지, 운전석에 앉았을 때의 시야는 어떤지 등을 고려하는 것이 디자인의 영역이다. 인문, 자연, 사회, 과학이 융합되어 모양, 색채, 형태를 제대로 끄집어냈을 때 조화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컴퓨터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게 디자인입니다. 기술적인 것들은 컴퓨터가 하면 되거든요. 가위를 예로 들면 예전에는 오른손잡이용 가위만 있었지요. 왼손잡이는 얼마나 불편합니까? 그래서 요즘은 오른손잡이든 왼손잡이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가위가 나왔죠. 그런 게 바로 서비스 디자인입니다. 도시 디자인이나 행정 업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을 위한 편의성을 고려한 것이 디자인입니다.”

구동조 이사장은 21세기를 ‘3D 시대’라고 정의한다. 3D란 ‘DNA, Digital, Design’으로 이것이 세계를 읽어내는 능력이라는 주장이다. 여기서 디자인은 꿈과 감성을 의미한다.

영국의 국가 교육과정에 디자인이 영어(국어), 수학, 과학과 더불어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필수교과인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에 디자인 과목이 신설된 것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다. 뇌를 확장하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뇌에 집어넣는 교육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으로 가능하다. 어린이에게 너무 일찍 문자 교육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글을 깨우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한눈을 팔아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 수학 또한 정답을 빨리 알아내는 것보다 수식을 통해 이미지화하는 훈련이 중요하다.

“9×9를 예로 들어볼까요? 구구단을 외우면 생각할 여지도 없이 81이 나오지만, 구구단을 모르면 머릿속으로 9를 아홉 번 더하는 과정을 떠올립니다. 9를 한 번 더하고 두 번 더하는 과정을 통해 뇌는 재고를 파악해야 하고, 그걸 머릿속에 이미지화하거든요. 흔히 부모와 대화가 많은 가정의 아이들이 공부도 잘한다고 하잖아요? 대화하면 이미지를 자꾸 떠올리는 원리입니다. 그림일기를 쓰는 것이 뇌 발달에 좋은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50세가 된 것을 기념해 자신에게 선물한 모터사이클을 탄 구동조 이사장. 심장박동 소리를 닮은 모터 소리와 함께 전국을 여행하며 새롭게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즐긴다.
다르게 생각하고, 새롭게 시도하라
똑같은 패턴으로 반복하는 것, 단순화된 것은 뇌의 시냅스 형성을 저해한다. 휴대폰의 단축키를 사용하는 것,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에 의존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구동조 이사장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지금도 수첩에 지인들의 연락처를 수기로 기록한다며 나달나달해진 수첩을 보여준다. ‘50세에 모터사이클과 사랑에 빠진 사나이’로 유명세를 탄 것도 같은 이유다. 쉰 살이 된 것을 기념해 자신에게 선물하기로 작정했지만 면허도, 돈도 없었다. 동덕여대 교수 시절이던 당시 아내가 월급 통장을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느 아내가 위험천만한 도전에 찬성하겠는가? 하지만 구 이사장은 10년 넘게 모터사이클을 타고 있다. 그가 건넨 오래된 지도에는 모터사이클과 함께 달린 구불구불한 형광펜 자국이 화려하다.

“자유로움 속에서 영혼이 맑아지는 경험이 필요했습니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고 싶었지요. 모터사이클은 자동차로 달리는 것과 다른 바람의 맛이 있어요. 하지만 모터사이클을 타면서 만난 사람들과 경험한 것은 더 색달랐어요. 독특한 옷차림만큼이나 독특한 생각, 다른 발상을 하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것이 새롭게 사고하는 계기가 되었죠.”

창의적 사고는 새로운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얘기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는 게 구 이사장의 조언이다. 여기서 “엄마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선택을 통해 아이 스스로 사고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창의적 사고란 새로운 생각을 지어내는 힘인 만큼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한다.

“아이들은 학습 노동자가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의 경쟁 상대는 옆집 아이나 대치동 아이가 아니에요. 저 멀리 영국이나 미국의 아이가 경쟁 상대죠. 엄마는 아이가 다섯 마디로 물어볼 때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해’라고 말할 게 아니라 500마디로 대답해줘야 합니다. 에디슨이 알을 품을 때 함께 닭장에 들어간 에디슨의 어머니처럼 말이죠.”

구동조 이사장과 인터뷰하는 내내 아이에게 미안함과 함께 ‘조금만 더 일찍 그를 만났다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세상은 늘 빠르게 변해왔고, 성공은 언제나 세상의 변화와 함께 손잡고 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졌다. 변하지 않는 것은 성적을 향한 엄마들의 마음이 아닌지 생각하게 한 시간이었다.

 

미즈내일 최원실 리포터 goody23@naver.com 
사진 박경섭


구동조 이사장은 
동덕여자대학교 디자인대학 학장과 대학원장,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VIDAK)와 한국출판미술협회(KPIA) 회장, 한국예술영재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교육 법인 블루닷창의성연구소와 사단법인 한국디자인창의력개발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제6회 대한민국디자인브랜드대상에서 은탑산업훈장 수훈, 평생교육 진흥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교육부 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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