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가 산이고, 어디가 강이며, 또 어디부터 마을인지…
팔각정 전망대인 회룡포에 앉아 눈앞에 펼쳐진 풍광을 마주하는 순간, 두 눈을 의심했다.
이어 머릿속에는 ‘경이롭다’는 탄성만 가득해지니, 하늘과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한
최고의 유산이다. 가히 대한민국 여행 작가가 추천한 가장 아름다운 여행지로 손꼽힐 만하다.
이곳은 옛 정취 가득한 물돌이 마을, 경북 예천의 회룡포 마을이다.

 

회룡포 마을을 잇는 뿅뿅다리.
폭이 좁아 일렬로 줄 지어 건너야 한다.

서울에서 용궁마을까지
안동의 하회마을, 홍천의 살둔, 예천의 회룡포 마을의 공통점은? 딩동! 모두 흐르는 물이 돌아 나가며 만들어낸 물돌이 마을이다. 그중에서도 소백산 끄트머리에 막힌 내성천(낙동강의 지류)이 용처럼 휘감아 나갔다는 회룡포 마을은 강물이 350도 돌아 나가는 지형으로 유명하다. 350도만 돌았으니 망정이지 나머지 10도까지 돌았으면 정녕 섬이 될 뻔한 지형이다. 회룡포 마을을 얼추 한 바퀴 돈 강물은 다시 낙동강과 금천을 만나 하나가 되는데, 예부터 그 지형이 남달라 물이 돌아 나가는 정도로만 따진다면 회룡포는 호박, 하회마을은 버선발이라 불렀단다. 지금은 회룡포지만 본래 지명은 의성포로, 조선시대 의성 사람들이 들어와 만든 마을이라고.

천혜의 자연을 갖춘 마을답게 회룡포 마을로 가는 길은 쉽지 않다. 마을에 대중교통이 없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으로 회룡포 마을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마을 앞산인 비룡산 전망대(회룡대)를 거쳐 다시 마을까지 도보로 가는 법, 둘째 육지와 마을을 이어주는 뿅뿅다리 앞까지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회룡포의 멋진 물돌이 풍광을 감상하고 싶다면 비룡산 등반이 필수인 회룡대 코스를 추천한다. 자가용은 개포면사무소로 우회해 마을에 진입할 수 있지만, 천혜의 자연에 대한 예의도 지킬 겸 다소 힘들어도 도보를 권하고 싶다. 모든 일에는 기회비용이 따르게 마련. 40여 분 도보 끝에 회룡포에 서면 눈부신 풍광이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

 

회룡대에서 내려다본 회룡포 마을의 전경.

장안사에서 회룡대까지
회룡포의 멋진 물돌이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버스에서 내려 약 40분간 비룡산 중턱의 장안사를 따라 전망대로 올라야 한다. 산책이라 하기에는 다소 힘들고, 등반이라 하기에는 짧은 코스지만 운동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해왔다면 “이러다 진짜 죽겠다~”를 몇 번 되뇌며 숨이 턱에 차기 쉽다. 그래 봤자 해발 200m, 총 1.5km도 안 되는 거리지만 등산로 초입부터 오르막길이라 쉽지 않다. 하지만 마음을 조금만 차분히 먹으면 보다 즐거운 산행이 될 수 있다. 등산로 곳곳에 옛 선인들의 시가 적혀 있고, 등산로 중간에 마주하는 장안사도 잠시 쉬어가기 좋다. 소박하면서도 산 중턱에 나지막이 자리 잡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장안사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국가의 부흥을 염원하며 금강산과 양산, 비룡산에 세운 사찰 중 하나로, 의상대사의 제자인 운명대사가 세웠다 한다. 고려의 문인 이규보가 머물며 글을 지었던 곳으로도 유명해 그의 글 ‘장안사에 머물다’가 걸려 있다.

장안사에 머물다 / 산에 오르니 번뇌가 쉬어지는구나 / 더구나 고명하신 지도림 스님을 친견했음이라 / 긴 칼 치고 멀리 떠날 때는 / 외로운 나그네 마음이더니 / 한잔 차로 서로 웃으니 / 오래된 친구의 마음이라 / 맑은 날 북쪽 개울에 구름이 흩어지고 / 달이 지는 서쪽 성에는 안개가 깊구려 / 병으로 오랜 세월 보내니 / 부질없이 졸음만 오고 / 옛 동산 솔과 국화는 꿈속에서 찾아드네

장안사에서 사림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걸으면 연인끼리는 사랑이, 가족끼리는 화목이 더욱 다져진다고 하니, 결혼을 앞둔 이나 소원해진 부부라면 반드시 손잡고 걸어볼 일이다. 회룡대 표지판을 따라 400m만 더 오르면 드디어 팔각 정자인 회룡대에 도착한다. 회룡포 마을을 돌아온 시원한 강바람이 송송 맺힌 땀방울을 금세 털어낸다. 그제야 펼쳐지는 회룡포 마을, 과연 오지 중의 오지라 불릴 만하다.

 

비룡산 중턱에 자리 잡은 장안사.
뿅뿅다리를 건너라!
회룡대에서 350도 물이 돌아가는 풍광을 감상했다면 이제 회룡포 마을을 향해 발길을 내디딜 때다. 회룡포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뿅뿅다리 앞까지 가야 한다. 회룡대에서 산길이 있어 쭉 따라 내려오면 된다. 내려오는 길도 만만치 않지만 뿅뿅다리에 앉아 눈부시게 맑은 내성천을 바라보면 고단함이 싹 가신다. 물속 피라미 떼는 기본, 강바닥의 모래까지 투명하게 반짝인다.

공사장 철판을 이어 붙인 뿅뿅다리는 약 2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철판 구멍 사이로 물길이 보이는 게 특징. 일렬로 줄지어 건너다 보면 다리도 흔들흔들, 슬쩍 물에 빠질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뿅뿅다리가 생기기 전에 회룡포 마을 사람들은 모두 바지를 걷고 이 강을 건넜다 하니 괜히 겁먹을 필요 없다.

아이와 함께 찾았다면 뿅뿅다리를 건너 백사장처럼 펼쳐진 모래밭에 짐을 풀고 잠시 물놀이를 즐기는 것도 좋겠다. 바닷물과 달리 짠 기도 없을뿐더러 물이 맑디맑아 따로 몸 닦을 필요 없이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 버스를 타고 왔다면 용궁 버스정류소에서 용궁면의 특산품이기도 한 용궁막걸리를 사다가 시원한 강바람 맞으며 한잔 걸치는 것도 추천한다. 달짝지근한 막걸리가 더없이 맛나다.

 

장안사를 지나 50m 정도 오르면 탁 트인 평지에 측면으로 세워진 불상이 보인다.
시간이 멈춘 마을에 오다
모래밭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면 시간을 잊은 듯 고즈넉함에 마음까지 차분해진다. 일단 마을로 들어서면 드넓은 평지에 선 느낌이 든다. 안으로 들어서면 식당이 보이니 등반하느라 주린 배를 채울 시간이다. 강된장에 마을에서 기른 채소를 가득 넣은 비빔밥을 양푼에 비벼 먹으니 꿀맛이 따로 없다. 배를 채우고 난 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니 커다란 감나무에 논밭이 펼쳐진다. 얼핏 봐도 가구 수는 꽤나 적어 보이는데, 회룡포 마을에 사는 가구는 총 10가구 미만이란다. 주민은 모두 경주 김씨라는데, 여기에는 회룡포 마을의 유래와 관련이 깊다.

회룡포 마을에 처음 사람이 들어가 산 것은 조선 고종 때로 알려진다. 예천군과 이웃한 의성군 일대의 경주 김씨 일가가 오지 마을인 이곳에 들어와 농지를 개척하면서 의성포 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후 이곳이 물돌이 마을로 유명해지면서 사람들이 의성군에 가 의성포를 찾으면서 마을 이름을 아예 회룡포 마을로 바꾸었다는데, 이때부터 행정구역상 애초 회룡포 마을이라 할 수 있는 대은2리를 포함해 향석1리, 향석2리, 대은1리까지 회룡포 마을로 불렸다. 하지만 지금까지 흔히 우리가 말하는 회룡포 마을은 대은2리를 뜻한다. 대은1리는 파평 윤씨 집성촌, 대은2리는 경주 김씨 집성촌으로 알려진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았으면 발길을 돌려 용궁면 주변 볼거리를 찾아 나서보자. 용궁면에는 무례한 명나라 장수를 혼냈다는 용궁향교를 비롯해 낙동강 700리 길의 마지막에 자리했다는 삼강주막, 7~8월이면 활짝 피어오르는 자생꽃 공원인 산택연꽃공원, 500년 된 황목근 등 관광 명소가 많다.

하지만 볼거리 여행보다 고즈넉한 여행을 하고 싶다면 시간을 잊은 회룡포 마을에서 잠시 하루를 보내다 느지막이 발길을 돌려도 좋겠다. 회룡포 마을의 시간처럼 천천히.


미즈내일 문영애 리포터 happymoon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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