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왁자지껄한 명동 거리, 고막을 찢을 듯 강렬한 록 음악이 영원히 내 벗일 거라는 확신 말이다. 하지만 사십 줄을 넘기면서 조용한 공간과 나지막한 음악을 찾는 나를 발견했다. 카페에서 시시콜콜한 수다보다 음악을 느끼고 싶을 즈음 만난 곳, ‘카메라타’는 문화에 결핍된 중년 아줌마의 ‘비타민’이었다.
통일전망대를 지나 자유로를 달리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과연 토요일 오전 이 먼 곳까지 찾아와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남편과 아이들까지 대동하고 오전 11시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한 곳은 파주 헤이리에 자리한 클래식 카페 ‘카메라타’. 방송인 황인용(71)씨가 운영해 이름난 곳이지만, 클래식 마니아들에게는 귀를 호강(?)시키는 곳으로 더 유명하단다. 외관부터 예사롭지 않다. 큐브 형태의 콘크리트 건물은 클래식 카페라기보다 모던한 재즈 카페에 더 가깝다고나 할까?
무거운 철문을 열고 들어서니 예상대로 아무도 없다. 그런데 입구에서 멀찍이 떨어진 테이블 쪽, 누군가 “어서 오세요”라며 우리 가족을 맞는다. 황인용씨다. 온전히 음악을 듣기 위해 이곳을 찾았지만 뜻하지 않게 TV에서 보던 유명인을 만나니 횡재한 기분이다. 고교 시절부터 그가 진행한 <밤을 잊은 그대에게> 광청취자였다는 남편은 홍조 띤 얼굴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나지막이 흐르는 첼로 선율에 이내 안정을 찾고 음악을 잘 감상할 수 있는 자리를 물색, 카페 중앙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일반적인 카페라면 창가나 구석, 파티션이 적당히 가려주는 안락한 자리를 선호하지만 클래식 카페는 자리 선정 포인트부터 다르다. 섬세한 악기의 흐름을 귀에 담기 위해서는 스피커를 정면에 두는 것은 물론 사방이 시원하게 뚫린 곳이 명당. 그러다 보니 일행이 있어도 마주 앉아 대화하기보다는 나란히 앉아 음악을 듣는 경우가 많다고. 남매를 대동안 우리 가족이 나란히 앉는 것은 민폐일 것 같고, 남편과 리포터만 스피커를 바라보는 것으로 자리 정리 끝.
대화하지 않기, 느낀 대로 감동하기
귀를 호강시키는 클래식 카페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넓은 카페에 우리 가족만 덩그러니 앉아 있으려니 어색 그 자체. 테이블에 신청곡을 적을 수 있는 메모지와 돌에 묶인 연필, 연필깎이가 놓여 있지만 클래식에 문외한인지라 들려주는 음악에 만족할 수밖에. 목마르다는 아이를 위해 음료를 주문하려는데 주문을 받는 사람이 없다. 알고 보니 이곳은 들어설 때 입구에서 어른 1만 원, 초등학생 이상 5천 원의 입장료를 내는 셀프 방식. 음료를 주문하면 달달한 머핀이 함께 제공되는데 무한 리필되고, 처음에 주문한 음료와 상관없이 따뜻한 커피도 계속 마실 수 있다.
과일 주스와 커피, 머핀을 맛보는데 두 번째 손님이 들어선다. 중년 여성 두 명과 모자 커플이 입장해 각자 생각하는 명당에 앉는다. 중년 여성 두 명은 수다를 떨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준비해온 책을 읽는다. 엄마와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모자 커플도 말이 없다. 엄마는 책을 읽고 아들은 문제집을 푼다. 그리고 속속 찾아드는 손님들. 분명 모두 커플이지만 나란히 앉아 각자의 일에 열중이다. 남편은 책을 읽고 아내는 컴퓨터로 워드작업을 하며, 남자 친구는 눈을 감고 여자 친구는 뜨개질을 한다. 음악 감상을 위한 클래식 카페다운 광경이다. 대화하지 않고 각자의 느낌대로 음악을 귀와 가슴에 담는 것이다. 카페에 어느 정도 손님이 들어서니 신문을 보던 황인용씨가 조용히 오디오 부스로 자리를 옮긴다. 화이트보드에 ‘베토벤 심포니 No. 8’이라 적고 나니 이내 웅장한 음악이 카페에 가득 찬다. 억대를 호가하는 오디오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이라고 할까. 클래식과 담을 쌓은 아이들도 집중하게 하는 음향 시스템의 힘은 감동 그 자체. 그렇게 두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 ‘징글벨 합창곡’을 신청했나 보다. 웅장함은 자취를 감추고 경쾌한 캐럴이 여름 한낮의 더위를 식힌다.
이때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애처롭게 묻는다. “엄마, 우리 언제 탈출해요?” 두 시간이 마지노선이었던 것. 지루함을 참지 못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아이, 비단 우리 아들만은 아닌 듯하다. 집중과 평온으로 음악에 심취하던 시간들이 서서히 깨지고 있다. 처음으로 찾은 클래식 카페, 진정한 음악을 느끼고 싶다면 주말보다 자녀 동반 고객이 적은 평일이 좋겠다.
미즈내일 심정민 리포터 request0863@naver.com
Plus Info.
위치 경기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52-129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
문의 031-957-3369
(http://blog.naver.com/h_camer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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