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햇살 속을 거닐며 행복을 맛보다

 
“도대체 왜 갑자기 중남미야?”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중남미로 떠나겠다는 필자에게 날아든 공통적인 질문이다. 엉뚱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사실 1년짜리 중남미 여행은 나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오늘’이 지겨워 하루에도 몇 번씩 지도를 보며 의지를 불태우던 나날들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던 갖은 잡념을 길 위에 내려놓으니 벌써부터 행복하다.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 숨쉬는 듯 이 알싸한 짜릿함이란! 일상에 찌들어 무감각해진 꿈들이 조금씩 살아나는 느낌이다. 무모해 보이지만, 그래서 더 즐거운 중남미 대장정이 시작된다.

 

Co동맹? 낯설지만 가까운 ‘콜롬비아’
“콜롬비아를 아세요?”라는 질문에 혹시 스포츠 웨어를 떠올리나요, 아니면 커피의 나라 콜롬비아를 떠올리나요?  KBS -2TV <해피선데이> ‘1박 2일’ 코너 중 잠자리 복불복에서 나PD가 “콜롬비아의 수도는?”이라고 외쳤다면 망설임 없이 보고타라고 답할 수 있나요?  

인천공항을 출발해 로스앤젤레스와 마이애미를 거쳐 33시간 만에 1년짜리 중남미 대장정의 시작점인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 도착했다. 보고타의 하늘은 유난히 가깝게 느껴졌다. 하지만 서울과 다른 자연에 대한 감격도 잠시일 뿐, 2천600m의 고도에 몸은 즉각적으로 괴로움을 호소(?)했다. 우리나라 산으로 치면 백두산 꼭대기 높이다. 고산병에 걸리면 고도에 적응하는 데 3일은 걸린다고 하더니…. 딱 3일을 고생하고 나니 두통과 가슴의 통증이 말끔히 사라졌다. 아, 나도 적응의 동물인가 보다. 

알고 보면 콜롬비아는 우리와 꽤 가까운 나라다. 부모 세대는 남미 유일의 한국전쟁 참전국으로 기억할 테지만, 현지에서 만난 콜롬비아는 그보다 사뭇 친근했다. 보고타의 길거리에는 현대차와 기아차가 넘쳐나고, 젊은이들은 K-pop에 열광한다. 한 택시 기사는 한국인이라는 필자의 소개에 본인 택시가 기아자동차 제품이라며 연신 ‘Muy bien!’(매우 좋다)을 외친다. 우연히 얘기를 나눈 콜롬비안은 Colombia와 Corea(스페인어로는 C로 시작한다)가 함께 ‘Co’로 시작한다며 ‘Co동맹’이라고 친근감을 표한다. 내심 반갑고 따듯한 그들이 좋다.

빨리 현지 친구들도 만들고 싶고, 정보도 얻고 싶은 마음에 숙소를 유스호스텔로 잡았다. 그런데 아뿔싸!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1년간 중남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페인어를 속성으로 습득해야 했다. 해서 3주간 보고타에 머물며 ‘BeSeTo’라는 아시아 문화원에서 스페인어를 배우기로 했다. 낫 놓고 ‘ㄱ’자는 알고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행히 마음씨 착한 콜롬비아 사람들 덕분에 예상 외로 빨리 습득할 수 있었다.

 

사라진 수첩, 하마터면 미아가 될 뻔하다! 
언어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으니, 드디어 본격적으로 여행길에 오를 차례다. 콜롬비아 하면 가장 생각나는 것은? 바로 커피! 커피 생산량 세계 2위인 콜롬비아는 그 맛으로 1위인 브라질을 제치고 남미 최고를 자랑한다. 콜롬비아에서 커피로 유명한 지역은 친치나(Chinchina), 살렌토(Salento), 아르메니아(Armenia) 다. 서로 가까운 지역에 삼각형을 이루고 자리해 ‘Cafe triangulo’(커피 삼각형)로 불린다. 유네스코는 이 커피 농장의 아름다운 경치를 놓치지 않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

커피로 유명한 콜롬비아까지 왔으니 어찌 커피 농장을 지나칠 수 있겠는가. 맛과 멋이 함께하는 친치나의 ‘Hacienda Guayabal’ 농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친치나에 가기 위해서는 일단 안데스 산맥을 넘어 마니샬레스(Manizales)에 가야 한다. 안데스 산맥… 이름만으로도 멋지지만 험난한 여행길은 불 보듯 뻔했다. 버스 회사에서는 4시간, 배낭 여행자들의 바이블 <론리플레닛>에서는 7시간이 걸린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9시간 반이나 걸렸다.

그런데 안데스 산맥을 넘어가는 이 버스에 안전벨트가 없다. 보고타 시내에서는 안전벨트가 철저하게 생활화되었는데 시외버스에는 안전벨트가 없다니…. 다행히 콜롬비아 시외버스는 소문대로 편했다. 의자는 넓고 거의 눕듯이 젖혀졌다.

하지만 소문대로 춥기도 했다. 담요를 덮고 그 위에 침낭까지 덮고야 잘 수 있었다. 밤 11시에 출발한 야간 버스는 오전 8시 30분에야 마니샬레스에 도착했다. 다시 마니샬레스에서 친치나행 버스를 타고 느긋하게 앉아 있는데…. 아뿔싸! 가방에 꽂혀 있어야 할 수첩이 보이지 않았다. 자면서 가방을 떨어뜨렸는데 그때 수첩이 빠진 모양이다.

순간 완전 패닉 상태에 빠졌다. 농장 주소와 전화번호, 집에 돌아갈 때 필요한 숙소 주소까지 깨알 같은 정보로 가득 찬 수첩이 아닌가. 하지만 어느새 터미널은 멀어져간다. 아, 친치나에서 미아가 되는 가. 버스는 이런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40여 분을 달려 친치나에 도착했다.

커피 투어에 관한 정보를 다시 얻기 위해 친치나 시내를 기웃거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10시간을 달려온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하는가’ 망연자실한 상태에서 구아야발(Guayabal)이라고 쓰인 콜렉티보를 발견했다. 농장 이름에 구아야발이 들어갔던 것 같아 무작정 구아야발행 콜렉티보에 탔다. 한참을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서더니 버스 기사가 나에게 뭐라고 소리를 지른다. 어리둥절한 채로 가만히 있자, 버스가 다시 출발한다. 그러자 버스 승객들이 몸짓 언어로 ‘여기서 내리라’며 자신들의 일인 양 버스를 세워줬다. 아, 역시 친절한 콜롬비아 사람들….

 

커피농장 전경
환상적인 경치와 맛 좋은 커피, 간만의 호사
버스에서 내리자 사방이 커피나무다. 아, 미아는 안 됐구나. 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커다란 커피 농장 간판 앞에 이르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간판에는 ‘Tour de cafe’(커피 투어)라고 또박또박 적혀 있다. 마음을 안정시키며 표지판을 따라 커피 농장을 찾아갔다. 작은 마을을 지나 산길을 따라 30분 정도 올라가니 커피 농장에서 운영하는 유스호스텔이 있었다.

직원은 물론 손님들까지 모두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동양인인 나에게 관심이 많고 친절했다. 커피 농장의 손자로 보이는 어린아이는 로마 역사를 알려준다며 본인의 동화책을 열심히 읽어줬고, 한 아저씨는 먹이를 줘서 각종 새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나중에 유스호스텔에 있는 책자를 보니 커피 농장이 있는 산에는 60종이 넘는 새들이 살고, 그중에는 희귀종도 여럿 있었다.

커피 투어는 커피 농장을 돌아보며 재배, 수확, 가공 과정을 보여주고, 마지막에 농장에서 수확한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우리나라의 녹차 밭 투어가 연상된다. 투어를 하면서 가장 마음에 와 닿은 것은 콜롬비아 사람들의 커피에 대한 자부심과 그 자부심에 걸맞게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것. 철저한 관리 하에 생산된 커피는 커피 재배자 연합에 의해 다른 나라의 커피가 섞이지 않도록 유통된다. 이렇게 탄생한 커피는 최근 우리나라에도 들어온 ‘Juan Valdez’(후안 발데스)다.

콜롬비아 커피는 커피 열매를 기계로 따는 브라질 커피와 달리 사람이 손으로 일일이 딴다. 사람이 눈으로 확인하며 따기 때문에 병들지 않고 잘 익은 커피만 수확할 수 있다. 이 농장의 넓이는 5억2천600만~6억4천700만m2나 된다. 평지뿐 아니라 가파른 산등성이에도 커피나무가 심어져 있다. 서 있기도 쉽지 않은 경사면에서 사람들이 바구니를 들고 커피를 딴다. 우리가 습관처럼 마셔대는 커피가 이런 땀방울이 배어 있는 노동 집약적 생산품이라는 생각에 왠지 미안해진다. 

커피 열매
각고의 노력 끝에 수확된 커피 열매는 여러 가공 과정을 거쳐 ‘Green Bean’이 된다. 다행히 이 가공 과정에도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물을 적게 쓰고, 폐기물을 비료로 재활용하는 등 친환경적인 노력이 계속되었다. 환경을 보호하며 지속적으로 커피를 생산하려는 커피에 대한 자부심이 이를 가능하게 하지 않았을까? 그들의 선택이 아름답다.

투어는 커피에 대해 듣는 것도 재미있지만 커피 농장의 경치도 환상적이었다. 파란 하늘과 끝없이 펼쳐진 산과 커피나무, 거기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딱히 커피 투어가 아니더라도 경치를 보는 것만으로 나의 눈은 호사를 누린다.


글·사진 써니(여행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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